마른 체격에 원인 모를 혈뇨…‘호두까기병’ 의심해 보세요
2019.11.15 04:00
수정 : 2019.11.14 20:30기사원문
김성권 서울K내과 원장(전 서울대학교병원 신장내과 교수)은 14일 "일정 기준 이상의 단백뇨가 3개월 이상 지속되면 만성콩팥병인데 이 때 단백뇨 수치의 변폭 폭이 20% 이내를 유지한다"며 "만성콩팥병에서 단백뇨가 많이 나왔다가 적게 나왔다가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환자의 콩팥 구조 이상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김모씨의 신장 구조 이상을 진단하기 위해 영상의학과 교수인 김승협 세계초음파학회 회장(K영상클리닉 원장)이 진단했다. 그 결과 환자는 '호두까기병(Nutcraker syndrome)'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콩팥 정맥, 두 동맥 사이에 눌려 발생
콩팥은 좌우에 두 개가 있다. 각각의 콩팥에는 동맥과 정맥이 연결돼 있다. 이 때 왼쪽 콩팥에서 걸러진 혈액을 대정맥으로 보내주는 콩팥 정맥은 대동맥과 상장간막동맥의 사이를 지나 장(腸)에 혈액을 공급하는 장동맥이 거꾸로 된 Y자 모양으로 갈라진 사이의 좁은 공간을 지나가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은 별 문제가 없지만 간혹 거꾸로 된 Y자 사이를 지나는 콩팥 정맥이 대동맥과 장동맥에 눌려 혈액이 잘 흐르지 못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왼쪽 콩팥에서 피가 잘 빠져나가지 못해 콩팥이 부어오르고 이로 인해 단백뇨, 배부통(등 아래 통증), 혈뇨, 난소 부종 등의 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 통증이 없는 경우도 있다.
호두까기 연장을 살펴보면 가운데 호두를 넣고 손잡이를 눌러 호두를 깨서 알맹이만 꺼내도록 만들어져 있다. 이 질환은 정맥이 두 동맥 사이에서 눌리는 현상이 마치 호두까는 연장과 비슷하다고 해서 호두까기병 또는 호두까기 증후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대동맥 사이를 지나가는 좌측콩팥정맥이 두 동맥 사이에서 눌리면 정맥의 압력이 올라가면서 좌측 콩팥 속의 작은 정맥이 터지면서 혈뇨를 발생시킨다. 흔히 육안으로 혈뇨가 관찰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현미경적 혈뇨나 단백뇨가 나타나기도 한다.
■도플러초음파로 혈류 속도 진단
호두까기병은 도플러초음파나 컴퓨터단층촬영(CT)에서 눌린 혈관 부위를 확인할 수 있다. 왼쪽 콩팥 동맥이 정상인 경우에도 왼쪽 콩팥 정맥은 살짝 눌린다. 이 경우 혈류 속도가 초당 40~50cm 정도다. 하지만 호두까기병 환자의 경우 초당 100cm가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이 때 도플러초음파로 확인하면 눌린 혈관의 경우 피가 흐르는 혈류 속도가 빨라서 뿜는 현상이 나타난다. 혈뇨가 발생하는 이유다.
이 병은 주로 날씬한 사람에게 많이 발생한다. 마른 사람은 뱃 속에 쿠션역할을 하는 지방이 적기 때문에 혈관이 쉽게 눌릴 수 있다. 하지만 혈관 변형으로 인해 비만한 사람에게 발생하기도 한다.
김 회장은 "호두까기병은 콩팥의 구조 이상을 진단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최근에야 진단되는 질환이지만 생각보다 환자들이 많다"며 "정확한 진단을 하면 질환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갖지 않아도 되므로 환자가 편하게 생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호두까기병, 자세 교정으로 증상완화
'호두까기 증후군'은 만성콩팥병이 아니므로 약물치료를 하지 않는다. 콩팥 구조의 이상이므로 특별한 치료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젊고 날씬한 환자의 경우에는 나이가 들면서 체중이 늘면 저절로 증상이 좋아진다.
호두까기병은 네 발로 다니는 동물은 발생하지 않는다. 동물들은 장의 무게가 아랫쪽으로 작용한다. 이 때문에 두 동맥 사이의 신장 정맥이 눌리는 경우가 없다.
김 회장은 "신장이 눌리지 않으면 괜찮아지므로 누워서 쉬거나 잘 때 똑바로 눕는 것보다는 왼쪽 옆으로 눕거나 엎드리는 자세를 취하면 정맥이 덜 눌리게 된다"며 "자세를 통해 증상을 교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오래 서 있는 자세는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아주 드문 경우 혈뇨가 심하다면 수술이 필요할 수 있다. 이 때는 왼쪽 콩팥을 떼서 오른쪽 복부 쪽으로 옮기는 수술이 진행된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