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상만큼 푸짐한 영화 상차림, 나흘이 짧네
2020.01.23 14:43
수정 : 2020.01.23 15:38기사원문
신작 외화는 윌 스미스와 톰 홀랜드가 목소리 연기한 애니메이션 '스파이 지니어스'가 주목된다. 지난해 칸영화제 각본상 수상작인 '타오르는 여인들의 초상'은 개봉관이 적은데도 입소문이 뜨겁다.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실시간 예매율 톱6에 올랐다. 김형호 영화산업분석가는 "설 연휴 시장의 일평균 관객수는 예년 수준으로 예상된다"며 "'겨울왕국'과 '백두산'의 주관객층이 아니었던 30대 관객의 선택이 이들 영화의 흥행을 좌우할 것으로 본다"고 예측했다.
■실화 소재 '남산의 부장들'
10·26사건에 정통한 중장년층 관객도, 당시 기억이 없는 10~20대 관객도 흥미롭게 볼 수 있다. 마치 스파이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이 실화라는 사실이 놀랍다. 이병헌, 이성민, 곽도원, 이희준 등 '연기 고수'들의 밀도 높은 연기가 영화에 확 몰입시킨다. 순제작비 170억원이 든 이 영화는 촌스러운 시대적 풍경 대신 미국·프랑스 로케이션을 통해 이국적인 영상도 담았다. 한국 근현대사의 변곡점이 된 민감한 사건이라 인물에 대한 해석이 제한적이라는 점은 아쉽지만, 이야기의 힘에 연기·연출이 더해져 세련된 정치드라마로 완성됐다. 중앙정보부 18년을 통해 박정희정권을 조망한 김충식 기자의 동명 논픽션에서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까지 40일간의 이야기를 다뤘다. 영화는 국가원수를 사이에 두고 2인자끼리 '충성 경쟁'을 벌이는 구도다. 박용각(실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버림받은 2인자라면 김규평(실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지는 해, 곽상천(실제 차지철) 경호실장은 뜨는 해다. 1997년 군 제대 후 우연히 '남산의 부장들'을 읽고 미처 몰랐던 현대사에 흥미를 느낀 우민호 감독이 몇 년 전 원작자에게 판권을 직접 구입했다. 그는 "도대체 왜 이런 사건이 벌어졌는지 쫓다보니 어느새 사건 속 인물에 더 관심이 갔다"고 말했다. 영화는 미국으로 망명한 박용각이 미 하원 청문회에 출석해 박정희정권의 치부를 증언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한·미 관계에 영향을 준 코리안게이트는 1976년 발생했으나 영화 속으로 끌어들였다. 친구 사이로 나오는 박용각과 김규평은 실제 선후배 사이다. 박용각의 최후와 관련해서는 여러 설 중 하나를 택했다. CGV 예매율 기준 30대와 남녀 모두가 선호했다.
■코믹 '히트맨', '미스터 주', '해치지않아'
'히트맨'은 코믹연기와 액션이 주특기인 권상우가 이를 결합한 B급 감성의 코믹액션 영화를 선보인다는 점이 기대요소다. 정준호, 황우슬혜, 이이경이 출연한 '히트맨'은 웹툰 작가가 되고 싶어 국정원을 탈출한 전설의 암살요원 준(권상우)의 이야기다. 술김에 1급 기밀을 웹툰으로 그려 국정원과 테러리스트의 더블 타깃이 된다는 내용이다. 준이 국정원과 테러리스트 사이에서 쫓고 쫓기는 과정을 유쾌하면서도 박진감 넘치는 액션 장면으로 구성했다. 전설의 국정원 악마 교관 덕규(정준호), '준 덕후' 막내 암살요원 철(이이경) 등 캐릭터의 매력도 살렸다. 용두사미 전개라는 평이 있는데 권상우는 이 영화를 "가족영화"라고 말했다. CGV 예매율 기준 30~40대·여성이 선호했다. '남산의 부장들'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연기한 이성민 주연의 '미스터 주'는 신선한 설정으로 출발한다. 우연한 사고로 동물 목소리를 듣게 된 국가정보국 에이스 요원 주태주(이성민)가 중국 특사인 판다 밍밍의 경호를 자처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뤘다. 김수미부터 이선균까지 동물 목소리 카메오들이 웃음을 안겨주나 미덕은 그뿐, 코미디치곤 웃음 타율이 낮고, 평이한 연출이 배우들의 연기를 무색하게 만든다. 이성민은 이 영화를 "코미디보다 가족영화"로 봤다. 저학년 학생을 둔 가족이 함께 보기 적당한데, 실제로 40대와 여성 예매율이 높다. 동명 웹툰 원작인 '해치지않아'는 망한 동물원을 살리기 위해 동물로 위장근무하는 직원들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렸다. 기발한 설정에 사실적인 동물 탈이 관람 욕구를 자극한다. 피식 웃다 나온 사람도 있지만 박장대소하며 스트레스 날렸다는 평도 눈에 띈다. 20대와 40대, 여성의 예매율이 높다.
■애니 '스파이 지니어스' 예술 '타오르는 여인들의 초상'
'스파이 지니어스'는 디즈니의 올해 첫 애니메이션이다. 한순간에 '새'가 된 슈퍼 스파이 랜스(윌 스미스)가 MIT 출신의 엉뚱한 지니어스 월터(톰 홀랜드)와 세상을 구하기 위해 팀플레이를 펼치는 스파이 액션물이다.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어떻게 보면 '더 뛰어난 것'일 수도 있다고 영화는 말한다. 여성·40대 관객의 예매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개봉 4일 만에 3만명을 모은 '타오르는 여인들의 초상'은 벌써부터 '올해의 영화' '분위기와 감정만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압도적 미장센, 완벽한 각본' 등 호평일색이다. 정략결혼을 앞둔 귀족 아가씨의 초상화를 몰래 그리기 위해 '이야기 친구'로 접근한 화가가 휘몰아치는 격정에 휩싸인다는 내용. 여성이 정물화처럼 수동적인 존재로 그려지던 시대, 신분을 초월한 은밀한 사랑과 여성 간 깊은 연대를 보여준다는 평을 받고 있다. 여성 감독 셀린 시아마는 이 영화로 지난해 칸영화제 각본상·퀴어종려상을 수상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