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치 10배 넘게 피 흘렸지만 '혈액 요청도 없었다' [김기자의 토요일]
2020.06.27 05:00
수정 : 2020.06.27 13:51기사원문
수술 중에만 최소 3500cc의 피를 흘린 권씨는 상급병원으로 이송된 지 49일 만에 과다출혈로 인한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숨졌다.
수혈할 수 있는 피도 없는 상황에서 통상적인 수술보다 많은 피를 흘리고 그로 인해 지혈시간도 길었던 환자를 간호조무사에게만 맡겨두고 자리를 비운 의료진에게 ‘무면허 의료행위 교사·방조’ 혐의를 불기소 처분한 검찰의 결정에도 비판이 제기된다. 병원 측 변호사와 수사검사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과 사법연수원을 함께 나온 가까운 사이로 확인된 상황에서 재정신청 결론을 앞둔 법원이 이를 바로잡을지 관심이 쏠린다.
■수혈도 전원도 없이 흘러간 골든타임
27일 권씨 유족 측이 공개한 녹취록에 따르면 권씨를 수술한 병원이 수술 전은 물론 수술 후에도 혈액을 요청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 병원이 혈액을 요청한 건 권씨 수술이 종료되고 수 시간이 흐른 야간으로, 병원은 이 혈액조차 권씨에게 수혈하지 않았다.
이 병원 마취과의사 이모씨는 녹취록에서 “혈압이 떨어진 야간 시간에 (권씨 상태가 위중하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저희 병원 입장에서는 피를 준비해서 수술하는 시스템이 아니라서···”라고 언급한다. 병원이 수술 전이나 수술 중, 심지어는 수술 직후에도 혈액을 확보하지 않은 사실을 설명한 것이다.
이씨는 뒤늦게라도 온 혈액을 왜 수혈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남의 피를 공급할 때 필요한 검사가 있다”며 “우리 병원에서 피를 주려고 했으면 시간이 더 오래 걸렸을 것”이라고 변명했다. 혈액을 뒤늦게 준비한 탓에 크로스매칭이라 불리는 수혈 전 교차적합시험(공혈자와 수혈자의 혈액을 섞어 그 반응을 보는 시험)을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말한 것이다.
실제로 수술실CCTV 영상에선 권씨 수술이 종료된 오후 4시 17분으로부터 7시간 이상 지난 11시 29분 혈액이 들어오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혈액은 수술실 뒤편에 방치된 채 사용되지 않는다. 비슷한 시기에 119에 신고를 접수했기 때문이다.
간호조무사가 이씨에게 권씨 위급 상태를 통보한 시각은 10시 16분께로, 이 시각부터 119 신고가 접수된 11시 27분까지 약 70여분 동안 환자는 사실상 방치됐다. 혈액수혈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상급병원으로의 전원까지 늦어져 위험상태에 빠진 것이다.
■각질만 제거해도 '무면허 의료행위'인데
경찰 조사에선 권씨가 회복실로 올라간 이후 간호사가 아닌 간호조무사만 권씨 상태를 파악하고 있었고 집도의인 장모 원장조차 권씨 상태가 호전되지 않은 상태에서 퇴근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권씨가 수술 중 통상적인 경우보다 훨씬 많은 피를 흘렸고, 권씨 수술이 같은 종류 수술에서 걸린 시간보다 훨씬 길었으며, 수술 이후에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3시간 이상 회복실로 올라가지 못하는 등 특별한 주의를 요했지만 이 시간 동안 혈액 공급은 물론 혈액 준비조차 하지 않고 의료진이 퇴근해버린 것이다.
특히 권씨에게 수혈할 수 있는 혈액이 준비되지 않아 많은 피를 흘리도록 해서는 안 되는 상황에서 권씨 수술을 20대 그림자의사에게 맡기고 집도의가 다른 수술실로 간 점, 그림자의사 역시 간호조무사만 남긴 채 다른 수술실을 오간 점 등은 검찰의 무면허 의료행위 교사·방조 불기소 처분이 타당했느냐는 의문을 남긴다.
앞서 대법원은 의사가 피부관리사들에게 환자의 얼굴 각질을 제거하는 피부박피술을 시행하도록 한 사건, 속눈썹이식시술 중 간호조무사에게 이식된 모발의 방향을 수정하도록 지시한 사건 등에서 이들이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낸 바 있다. 수술실에 홀로 남은 간호조무사가 지혈한 행위가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처분한 수사검사의 결정이 부적절한 이유다.
■경찰에게 '핵심혐의 빼라' 압력 의혹도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당시 부장 강지성·현 부장 이창수) 소속 성재호 검사는 문제 병원이 권씨 사망 뒤에도 ‘14년 무사고’ 광고를 버젓이 내걸고 영업해 서초구보건소로부터 고발당한 사건에 대해서도 처벌하지 않아 논란을 샀다. 당초 이 사건은 다른 검사에게 배당됐으나 성 검사가 이를 병합해 수사한 것으로 파악됐다.
성 검사는 당시 광고사건을 수사한 서초경찰서 관계자에게 수차례 지시해 사건을 불기소의견으로 송치하도록 했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수사기관 등에선 성 검사가 형사사건을 수사한 경찰 광역수사대의 사건 송치에 임박해 향후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 의료진의 무면허 의료행위 교사·방조 관련 혐의를 빼도록 지시했다는 증언도 흘러나왔다.
현재 서울고등법원은 유족이 담당검사의 처분에 불복해 낸 재정신청을 접수해 처분이 적절했는지 여부를 살피는 중이다. 권씨 어머니 이나금씨(60·여)는 “담당 검사와 병원 측 변호사가 서울대학교 의대를 같이 나오고 사법연수원도 동기인데 명백한 사건까지 이렇게 처분하니 억울하고 화가 난다”며 법원과 검찰청 등지에서 한 달여 동안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본지 2월 22일. ‘[단독] 법원 '권대희 사건' 불기소 들여다본다... 성재호 검사 녹취록 증거 제출’ 참조>
한편 MBC PD수첩은 오는 30일(화) 밤 10시 50분 '검사와 의사친구' 편을 통해 권대희 사건 담당 검사와 피고인 측 변호사의 관계를 파헤친다고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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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fnnews.com 김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