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갈량 마저… 프로야구 감독은 '극한직업'

      2020.06.30 18:02   수정 : 2020.06.30 18:02기사원문
1990년도 중반 LG 담당 야구기자들은 경기를 마치고 늘 가던 곳이 있었다. 잠실야구장에서 가까운 '뚜X'라는 카페였다. 기사 마감을 하고 그곳에 가면 어김없이 이광환 LG감독(1992~1996년)을 만날 수 있었다.



때로는 단장이나 홍보담당자, 코치들도 합석했다. 내일 기사를 위해선 빠지면 안 되는 자리였다.
그날 야구경기는 물론 온갖 화제들을 안주 삼아 술을 마셨다. 기자가 기억하는 1996년의 이광환 감독은 유달리 힘들어보였다.

이 감독은 1994년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듬해엔 정규리그 2위. 1996년은 최악의 해였다. 우승권에 있던 팀이 7위로 내려앉았다. 당시엔 8개 구단 체제. 기자들 앞이라 최대한 감정 노출을 자제했지만 날로 푸석푸석해지는 얼굴에서 스트레스의 강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결국 시즌 도중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다.

야구감독이라는 자리는 독이 든 성배다. 누구나 탐을 내지만 잘 못 마시면 탈이 난다. 염경엽 SK감독(52)이 지난 6월 25일 경기 도중 쓰러진 후 아직 복귀를 못하고 있다. 염 감독은 29일 혈관과 신경 쪽 추가 검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SK구단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여전히 거동이 불편한 상태다.

염경엽 감독은 2013년 넥센(현 키움) 사령탑에 취임한 후 늘 좋은 성적을 거두어왔다. 지난해 SK까지 5시즌을 치르며 단 한 번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는 시즌 초 10연패 포함 바닥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쓰러지기 전까지 12승31패로 9위였다. 이날 더블헤더 1차전서 패해 8연패까지 몰렸다. 염경엽 감독은 원래 잘 먹지 않는다. 최근엔 수면 부족까지 겹쳤다. 결국 경기 도중 더그아웃에서 쓰러져 급히 병원으로 이송됐다.

프로야구 감독은 극한직업이다. 겉으로 보기엔 돈도 많이 벌고 화려한 조명을 즐기는 듯하다. 그러나 가까이서 지켜보면 접전지역의 소대장처럼 늘 위태위태하다. 그동안 염경엽 감독뿐 아니라 많은 감독들이 현장에서 쓰러졌다.

백인천 감독은 삼성 사령탑 시절인 1997년 뇌출혈로 도중 사퇴했다. 침술 치료가 효과를 봐 거의 정상으로 회복됐지만 김인식 전 한화 감독은 여전히 불편한 상태다. 김 전 감독은 2004년 뇌경색으로 현장에서 물러났다.

일본 야구의 살아 있는 전설 나가시마 시게오도 그해 뇌출혈로 국가대표팀 감독에서 사임했다. 나가시마 감독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일본 야구대표팀을 맡고 있었다. 예선 통과 후 발병으로 인해 나카하타 키요시에게 감독 자리를 물려주었다.

2001년 김명성 전 롯데 감독은 시즌 도중 심장마미로 유명을 달리하기도 했다. 김경문 국가대표팀 감독은 NC 시절인 2017년 7월 갑자기 어지럼을 느껴 병원으로 옮겨졌다. 뇌하수체에 선종이 발견돼 한동안 벤치를 떠나야 했다. 다행히 악성이 아니어서 8월엔 팀에 복귀했다.

그런 일을 겪어봐서인지 김경문 감독은 염경엽 감독의 입원을 더 안타까워했다. 김경문 감독은 "좋아하는 후배 감독인데 너무 마음이 아프다. 감독은 감독 마음을 잘 안다.
성적이 안 좋을 땐 정말 힘들다. 더구나 염 감독은 이런 부진을 처음 겪어본다.
더 어려울 것이다"며 빠른 쾌유를 빌었다. texan509@fnnews.com 성일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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