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죽음 얼마나 더 봐야하나… '악플' 명예훼손 증가세
2020.08.03 17:56
수정 : 2020.08.03 20:20기사원문
악성댓글(악플)과 루머에 시달리던 유명인들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하고 있지만 악플 관련 사건 처리가 일선 수사기관의 의지에 따라 극명하게 달라진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유명인이 아닌 일반인의 경우엔 수사기관이 의지를 보이지 않아 처벌까지 가기 어렵다는 불만도 줄을 잇고 있다. 인터넷실명제 위헌 판결 이후 급증한 악플 관련 신고는 올해 역대 최대치를 갱신할 것으로 전망된다.
■수사관마다 천차만별 악플수사
3일 수사기관에 따르면 악플 관련 형사사건은 매년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2009년 4752건에 불과했던 것이 지난해 1만6633건으로 10년 만에 4배 가까이 늘었다. 하루에 45건 꼴이다. 악플 사건 특성상 사건화 되는 경우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피해사례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만 해도 현대건설 프로배구선수로 활약한 고(故) 고유민, 아프리카TV BJ로 활동한 고 박소은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고 최진실씨, 고 설리(최진리), 고 구하라 등도 세상을 등지기 전 악플과 각종 루머로 피해를 호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도 다수 유명인이 악플과의 전쟁을 진행 중에 있다. 아이유(이지은), 김희철 등이 대표적으로 대리인을 통해 정도가 심한 가해자 수명을 특정해 고발조치에 돌입한 상태다.
문제는 악플 사건 처리가 지지부진한 경우가 많다는 점에 있다. 연간 18만건이 넘는 사이버범죄를 불과 1000여명의 사이버 관련 수사인력으로 처리하기 때문이다. 특히 사이버범죄 중 해킹과 각종 대규모 피싱범죄 등에 비해 악플 사건이 피해가 가볍게 여겨지는 경우가 많아 수사인력을 적극 투입하기도 쉽지 않은 형편이다.
유명 연예인 악플사건을 대리하는 한 변호사는 "악플사건은 우리가 다 자료를 캡처해서 가도 가해자 특정부터 어려운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며 "수사관이 의지가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끝없이 기다리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한 수사관이 피고소인이 포털에서 탈퇴해 추적이 안 된다고 했는데 다른 서로 이관되니 그 아이디가 추적이 되더라"며 "수사관의 의지와 능력에 따라서 한 곳에선 사건이 되는 게 다른 곳에선 증거불충분으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주장했다.
■피해사례 많지만 직접 고발 어려워
일선 경찰서에서 사이버수사 업무를 맡고 있는 경찰 관계자도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N번방'처럼 큰 사건이 터지면 아무래도 부족한 인력으로 수사를 하는 입장에서 작은 문제는 미뤄두는 경우가 있다"며 "한명이 사건 수십 개씩 하다 보니 피해를 보신 분이 꼼꼼히 자료를 캡처하고 정리해주는 게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유명인이 아니고 대리인을 고용하기도 쉽지 않은 시민들은 더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온라인 동호회 카페에서 스토킹과 명예훼손 피해를 입었다는 A씨(28·여)는 "경찰에 이런 일이 있다고 딱 말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악플을 아이디랑 시간대별로 일일이 정리해줘야 해서 시간이랑 노력이 많이 들어간다"며 "나는 모욕감을 많이 느꼈는데도 경찰이 '모욕으로 보기 어렵다'거나 '범죄가 안 된다'고 해서 다 그만두고 싶더라"고 털어놨다.
악플로 피해를 입는 이들 중 절대다수는 일반 시민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2017년 사이버폭력 가해 경험이 있는 시민 1000여명에게 물은 결과, 평소 알고 있는 사이나 실제 누구인지 모르는 일반 시민에게 악플을 단 경우가 유명인에 비해 훨씬 더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신고는 이뤄지는 경우는 드물다.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101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 악플 피해자가 경찰·노동부·국가인권위원회 등에 관련 신고를 접수한 사례는 10건 중 1건도 되지 않았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