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최고인재들 세계 곳곳 파견… 당시엔 누구도 상상못한 일"

      2020.10.26 18:37   수정 : 2020.10.26 20:16기사원문
'불세출의 경영인' '승부사' '애국경영인'.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을 측근에서 지켜본 이들은 이 회장을 이렇게 불렀다. 각자 표현에 차이가 있어도 '지금의 글로벌 삼성을 만든 최고의 경영자'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통찰력이 글로벌 삼성 만들어

삼성그룹 비서실 차장 출신인 이금룡 코글로닷컴 회장은 26일 이 회장을 '불세출의 경영자이자 예지자'라고 표현했다.



이금룡 회장은 1992년부터 약 4년반 동안 삼성의 컨트롤타워인 비서실 차장으로 근무하며 이 회장을 최측근에서 보좌했다. 이금룡 회장은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는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강조했다"며 "개발 지연의 이유가 구매과정의 문제라고 지적하고, 반도체 강당에 관련 부서를 한자리에 모았다.
이후 결제가 일사천리로 됐다"고 회상했다.

최고 인재를 세계 곳곳으로 파견해 견문을 넓히는 지역전문가 제도도 이 회장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이금룡 회장은 "앞으로 글로벌 시대에 엄청나게 많은 글로벌 인재가 삼성에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각 부서에서 제일 뛰어난 인재를 1년간 지역전문가로 파견하라는 엄명을 내렸는데 나도 할 수 없이 우리 부서 에이스 차장을 중국 지역전문가로 파견했다. 당시 현업 직원을 차출 파견해 어학과 문화를 익히게 한다는 정책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일찍부터 사람이 먼저였다


이 같은 이 회장의 인재경영은 갑자기 던진 화두가 아니었다. 청년 때부터 이 회장은 사람에 관심이 많았다. 서울대 사대부고 동창으로 60년 지기였던 고 홍사덕 전 의원(지난 6월 별세)은 이 회장이 고교 때부터 사람공부를 했다고 기억한 바 있다. "말수가 적은 이건희였지만 사람을 보는 눈은 어릴 적부터 남달랐다"는 게 친구 홍 전 의원의 전언이다.

경영인들에게 이 회장은 '전설' 그 자체로 다가온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GS건설 회장)은 이 회장을 "당신은 영원한 1등"이라고 추모했다. 허 회장은 전날 경제단체 수장으로서는 유일하게 별도로 7쪽 분량의 추도사를 썼다. 그는 이 회장을 '승부사' '개혁가' '완벽주의자' '애국경영인' 등으로 묘사했다.

허 회장은 "반도체 산업을 이 땅에 뿌리내리고, 대한민국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 사업보국을 실천하신 기업인"이라며 "영원한 적과 동지도 없으며 나날이 강화되는 세계 각국의 보호무역주의는 우리 수출경제가 나아가야 할 길을 헤매게 한다. 위기경영의 선구자이셨던 이 회장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진다. 그가 걸었던 길은 불굴의 개척정신으로 초일류기업을 넘어 초일류국가를 향한 쉼 없는 여정이었다"고 평가했다.

구글 전에 '관리의 삼성' 있었다


삼성전관 사장, 농심 회장 등을 지낸 손욱 전 삼성종합기술원 원장은 빠른 의사결정 구조가 특징인 '관리의 삼성'의 기틀을 닦았다고 평가했다. 손 원장은 이날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이 회장은 수평적이고 창의적 조직문화를 도입해 삼성의 꽃을 피웠다"며 "지금의 구글이 강조하고 있는 자율경영 개념을 이미 1980년대에 그리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정·관계 인사에게 미친 영향도 적지 않다. 기자 출신인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1980년대 말 제주도 전경련 세미나에서 한 시간가량 '반도체의 미래'에 대해서 출입기자들과 강의 겸 긴 대화를 나누신 적이 있다"며 "당시 이 회장이 '난 지금 반도체에 미쳐 있다'고 말씀하신 기억이 또렷하다"고 했다.

카리스마, 그러나 천진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도 이 회장을 만났을 때의 느낌에 대해 '이건희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내가 열마디 할 때 이 회장은 한마디를 하지만 그 한마디가 내 열마디를 누른다.
나는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분의 옆얼굴에서 기업인이 아닌 외롭고 깊은 침묵 속에서 끝없이 무엇인가를 창조해 가는 과학자나 예술가의 한 단면을 보았다"고 회고했다.

같은 책에서 고 박경리 작가도 "깊은 곳에 가라앉아서 세상을 응시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웃는 모습은 스스러워하듯, 그러나 천진했다"고 했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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