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녀 요구에 친딸 살해 혐의' 중국인 2심서 무죄

      2020.12.29 13:26   수정 : 2020.12.29 13:26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자신의 친딸을 한국에서 살해한 혐의를 받는 중국인 남성 사건이 2심에서 극적인 감형을 받았다. 1심은 피고인과 동거녀가 주고받은 메시지, 법의학자들의 의견 등을 토대로 살인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지만 2심은 사고사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29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5부(윤강열 부장판사)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중국인 장모씨(41)에게 징역 22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장씨는 지난해 8월 서울 강서구의 한 호텔 욕실에서 자신의 딸(당시 7세)을 목 졸라 사망(경부압박 질식사 및 익사)하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장씨는 2017년 자신의 전 부인과 이혼했고, 두 달 뒤부터 여자친구인 A씨와 중국에서 동거해왔다.
A씨는 장씨의 딸 때문에 장씨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다고 여겼고 장씨의 딸을 '마귀'라고 부르기도 했다.

특히 A씨는 장씨와 동거하면서 장씨의 아이를 2번 유산했는데, 그 이유도 장씨의 딸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장씨의 딸을 극도로 증오하기에 이르렀다.

검찰은 A씨가 극단적 선택까지 시도하자 결국 장씨가 자신의 딸을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지난해 8월 자신의 딸과 함께 한국에 입국한 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했다.

사건 발생 뒤 장씨는 "외출 뒤 돌아와 보니 딸이 욕조 안에 떠있었다"며 관련 혐의를 극구 부인했다. 한국어를 전혀 못 하는 자신이 중국이 아닌 한국에서, 그것도 다른 사람이 출입한 흔적이 없어 범인으로 의심받기 쉬운 호텔 객실에서 딸을 살해할 이유도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은 살인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오상용)는 "사건이 아니었더라면 피해자 앞에 펼쳐졌을 무한한 삶의 가능성이 송두리째 상실됐다"며 "의문의 죽음으로 묻힐 뻔했지만 수사기관의 적극적 수사에 의해 재판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장씨는 2심에서도 정신질환을 앓는 A씨를 진정시키기 위해 호응하는 척을 했을 뿐 실제 딸을 살해하기로 A씨와 공모한 일도, 딸을 살해한 일도 없다고 재차 주장했다.

2심은 1심의 판단을 완전히 뒤집고 장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우선 장씨가 딸을 살해할만한 뚜렷한 동기가 발견되지 않는다고 봤다.

장씨의 전처이자 피해자의 친모는 "장씨는 바쁜 업무 와중에도 딸을 정성스레 돌봤고, 양육하는 데 모든 노력을 다했다"며 "딸의 죽음은 완전히 예상 밖의 일이었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A씨와의 공모 여부에 대해서는 "상당한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장씨가 사건 당일 A씨에게 '오늘 호텔 도착 전에 필히 성공한다' '중요한 몇 군데는 카메라가 있어' 등의 메시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모는 없었다고 판단됐다. 장씨는 문제의 메시지 직후 A씨에게 '우리 이런 얘기하지말자. 진정하자'라는 메시지도 보냈고, 평소에도 A씨에게 '내가 걔(딸)를 버릴 수는 없다'는 등 딸에 대해 부모로서의 책임이 있다는 점을 거듭 말했다.

사건 직후 현장에서 보인 장씨의 모습도 사고로 딸을 잃은 전형적인 모습이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당시 현장에 출동한 구급대원은 "장씨는 계속해서 벽을 치고 크게 울면서 통곡했다. 통상적으로 사고를 당한 딸을 봤을 때 부모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처럼 보였다"고 진술했다.

장씨가 전처의 반대에도 딸의 부검을 주장한 것에 대해서는 "딸을 살해하고 사고사로 위장한 것이라면, 자신의 살해 범행이 드러날 수 있는 부검 절차에 적극적으로 동의하지 않았을 여지가 많다"고 판단했다.

핵심 쟁점인 '장씨가 딸의 목을 조르면서 욕조 물 안으로 눌러 피해자가 사망했는지'에 대해서도 의심은 가지만 유죄로 단언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사건 당일 장씨는 딸과 함께 방에 들어갔다가 홀로 방을 나왔고, 음주와 흡연을 하다 약 1시간 뒤 다시 방으로 돌아갔는데 그때까지 객실에 출입한 사람은 없었다. 법의학자 몇몇이 "타인의 개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등의 소견을 제시한 점까지 종합해보면 살해 의심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한 법의학자는 "피해자가 질식으로 사망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또 다른 법의학자는 "피해자 경부에는 삭흔(끈으로 목을 조른 흐적)이 보이지 않는다. 목을 손으로 조른 경우에는 손톱자국이나 손가락 끝이 누른 자국이 남는 경우가 많은데 피해자 사체에는 그런 명확한 자국이 없었다"고 진술했다.

피해자의 사망이 장씨가 손으로 피해자의 목을 조른 행위에서 비롯됐다고, 즉 '액사'(扼死)라고 인정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경부압박으로 인한 질식사의 소견이 관찰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외 '액사'에서만 특유하게 발생되는 소견이 확인돼야 한다.

그런데 피해자의 양쪽 눈부위, 눈꺼풀결막, 입안 점막에 나타난 점출혈은 액사 특유의 소견으로 보기 어려웠다. 재판부는 "심폐소생술로 인해 일시적으로 갑자기 혈압이 상승하거나 혈류가 쌓이면서 점출혈이 나타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적으로 부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밝혔다.


결국 "피해자가 욕조 안에서 미끄러져 쓰러지면서 욕조 물에 코와 입이 잠기고, 피해자의 목이 접혀 경정맥(목에 분포하는 정맥)이 막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jasonchoi@fnnews.com 최재성 기자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