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개입하라고 낸 돈 아닌데… 연기금 쥐고 기업 옥죄는 與

      2021.02.16 18:17   수정 : 2021.02.16 18:17기사원문
집권 여당이 연일 국민연금을 내세워 기업 옥죄기에 나서자 산업계가 '과도한 경영간섭'이라는 말을 차마 내뱉지 못하고 바짝 자세를 낮추고 있다. 자칫 반대 목소리를 내며 반기를 들었다가 더 큰 화살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가 산업계 화두로 떠오르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지만 이를 정치권의 직접적 개입을 통해 해결하려는 움직임은 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들이 시대 변화에 맞춰 자연스럽게 적응해가는 과정에서 정치권의 개입이 경영에 악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걱정이다.

■연기금 빼든 집권 여당

16일 산업계에 따르면 전날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포스코와 CJ대한통운을 콕 집어 국민연금에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를 요구하면서 산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가 기업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으로, 2018년 7월 도입됐다. 국민연금이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온 연금을 운용하는 조직인 터라 국민들 대신 '집사(스튜어드)' 역할을 맡아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도록 만든다는 개념이다.

앞서 지난달 29일 열린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포스코, CJ대한통운, KB금융, 우리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삼성물산 등 7개 회사에 주주제안을 통해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안건을 내놓으면서 신호탄을 쐈다. 이들 기업이 중대재해 발생, 사모펀드 소비자 피해, 지배구조 문제 등과 관련된 ESG 문제 기업이라는 이유다. 위원회 결정 전날에도 이낙연 대표는 국민연금 외 연기금 투자도 ESG 도입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발언한 바 있다.

■재계 불만 많아도 더 찍힐까 '냉가슴'

하지만 이를 두고 정치권의 과도한 경영간섭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ESG가 이제 막 기업가치 평가의 주요 잣대로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기업들은 자연스럽게 변화에 적응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의 개입이 기업 경영에 급작스러운 변화를 불러오고, 이는 기업체질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권혁민 한국경제연구원 산업전략팀장은 "이미 기업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에 빠진 계층을 위한 사회공헌 사업을 다양하게 진행하고 있다"며 "자발적 움직임이 있는 데도 강제성을 부여하는 것은 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계는 정치권의 과도한 경영개입 시도에 불만을 가지면서도 속앓이만 하고 있다. 집권 여당의 대표가 직접 나선 상황에서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가 된서리를 맞을까 두려워서다. 앞서 언급된 회사들은 정치권의 화살을 피하고자 각종 경제단체를 접촉, 의견을 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지만 아직 직접적 의견이 나오지는 않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다양한 소통창구를 통해 의견을 전하고 있지만 다들 나서길 꺼리는 분위기"라며 "(단체들이) 직접 나섰다가 되레 찍힐까 봐 몸을 사리고 있다"고 전했다.

■"경영 개입하라고 낸 돈 아니야"

국민연금이 본래 취지와 다르게 정치권의 무기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국민이 노후를 대비해 낸 돈을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1차 목표여야 하는데, 본질에서 한참 벗어났다는 지적이다.

인터뷰에 응한 산업계 관계자들은 과도한 경영개입이라는 데 동의하면서 국민연금을 내는 일반인의 관점에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산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을 낸 국민들은 우리가 낸 돈을 안정적으로 운용하길 원한다"며 "기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건 국민연금의 존재 목적과 큰 차이가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한편 정치권은 오는 22일 9개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을 증인으로 불러 산재 청문회를 열고 압박에 나선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을 비롯해 한성희 포스코건설 대표이사, 한영석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등이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됐다.

eco@fnnews.com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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