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그까짓 검찰총장'과 이회창의 '허수아비 총리'
2021.03.03 14:51
수정 : 2021.03.03 16:39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자리 그까짓게 뭐가 중요한가."
윤석열 검찰총장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여권의 검찰개혁을 비판하며 한 말이다. 검찰총장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윤 총장은 또한 여권을 향해 "나를 내쫓고 싶을 수 있다"며 "다만 내가 밉다고 해서 국민들의 안전과 이익을 인질 삼아서는 안 된다"고 일갈했다.
그가 쏟아낸 발언들은 '검찰총장 맞나'라며 의아할 정도로 강하다. 윤 총장은 "검찰은 힘없는 서민들을 괴롭히는 세도가들의 갑질과 반칙을 벌해서 힘없는 사람들이 숨 쉴 수 있게 해주는 영역만 남아있다"며 "국민은 '개돼지'가 아니라는 뜻이다. 힘 있는 어떤 사람이 법을 지키겠나"라고 강조했다.
자신을 임명한 현직 대통령과 맞서며 대권 주자에 오른 인물은 윤석열이 처음이 아니다
대법관, 중앙선거관리위원장, 감사원장, 국무총리 등 '대통령 빼고 다 해본'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이다.
1993년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감사원장에 임명돼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추진한 평화의 댐, 율곡사업 감사를 진행했고 수많은 전현직 장성들과 고위 관료들이 구속됐다. 중앙정보부 창설 이래 처음으로 무소불위의 권력기관 국가안전기획부에 대한 감사까지 진행하기도 했다.
결국 같은 해 12월 국무총리로 임명됐다. 대통령의 방탄 역할에 지나지 않았던 국무총리의 이미지에서 탈피해 소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대쪽 총리'라는 별명을 얻으며 국민적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과 마찰을 빚고 "법적 권한도 행사하지 못하는 허수아비 총리는 안 한다"고 일갈하며 총리직에서 내려 왔다.
"허수아비 총리는 안 한다"는 일갈은 공직자의 발언이 아니라, 정치인의 발언이다. 1993년 말 임명돼 2년 가까이 헌법에 보장된 총리의 권한을 행사하고자 노력했지만, 자신의 뜻과 맞지 않기 때문에 '허수아비 총리는 안 하겠다며 사퇴한 것이다.
그가 총리직에서 사퇴하자마자 바로 대선에 뛰어든 것도 아니다. 총리직에서 사퇴한 이회창은 휴지기를 갖다가 1996년 초 신한국당에 입당해 15대 총선에서 전국구(비례대표 전신)로 국회에 입성했다. 이듬해인 1997년 15대 대선에서 신한국당의 대선 후보가 됐다.
최근 쏟아내고 있는 윤석열 총장의 일갈도 더 이상 검찰총장의 발언이 아니다. 누가 봐도 정치인의 발언이다. 이 때문에 정세균 국무총리도 윤 총장을 두고 "공직자가 아닌 정치인 같다"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인 검사 윤석열이 가고, "국민은 개돼지가 아니다"라고 일갈하는 '정치인 윤석열'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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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r@fnnews.com 한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