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고 먹지 않으면 먹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2021.03.20 09:16   수정 : 2021.03.20 09:15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분업화된 세상은 쉽게 공범을 만든다. 그 과정이 너무나 교묘해서 내가 어떤 잘못에 가담하는지를 알아차리기조차 어렵다.

예를 들어보자. 마트에서 새우 몇 마리를 산다.

대형마트에서 '오늘의 특가'니 '국민가격' 따위로 홍보해 무심코 집었다. 실하게 살이 차서 소금구이를 해먹으면 맛이 없으려야 없을 수가 없다.
동남아 여행을 해봤다면 접한 적 있을 법한, 블랙타이거니 킹블랙타이거니 하는 그 새우다.

내 돈으로 사서 먹는 건데 무슨 잘못이 있느냐고? 있다. 이산화탄소 흡수와 산소 배출에 지대한 역할을 하는 맹그로브(mangrove) 숲이 새우 양식장으로 파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태국과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들은 키우기만 하면 날개돋힌 듯 팔려나가는 새우를 더 많이 키워내기 위해 맹그로브 숲을 밀어버렸다. 양식장을 새로 세우기 위해 공간이 필요해서다.



새우 양식을 위해 사라지는 숲

벌써 수십 년 전부터 이어온 사업으로 맹그로브 숲 절반 이상이 새우 양식장으로 대체됐다. 통계에 따라 다르지만 심각한 곳은 100년 전에 비해 80% 이상 맹그로브 숲이 파괴됐다고 한다. 주범이 새우양식장이라는 데 이견은 없다.

그뿐인가. 새우양식장은 노예들에 의해 운영된다는 외신 보도도 수두룩하다. 필로폰 등 마약으로 잡아온 노예들을 장악한다는 충격적 내용이 수차례 보도됐다. 그런 양식장에서 제조한 새우라고 수입하지 않을 것 같나. 국제노동기구(ILO)가 태국을 노예노동 방치국가라며 비난해도 태국은 어느 양식장이 노예노동을 하고 있는지 공개하지 않는다. 그렇게 시장에 풀린 새우를 한국은 열심히 사오는 나라로 분류된다.

한국은 일본과 미국과 함께 맹그로브 숲을 민 자리에서 키운 새우를 주로 수입하는 국가다. 피자 한 판만 시켜도 칵테일 새우가 여러 마리 올라가 있고, 조미료와 각종 요리 재료로 널리 활용된다. 요즘엔 타이거새우처럼 동남아산 새우를 그대로 구워먹는 것도 인기다.

새우 수입과 유통은 돈이 되는 사업이다. 마트에서 전보다 더 쉽게 동남아산 새우를 만날 수 있게 된 배경이다.

한국에서 동남아산 새우를 구입해 먹는 건 어떤 의미일까. 적어도 환경과 노동문제에 관심이 없거나, 알면서도 개의치 않는다는 뜻이다.


무지한 소비로부터 소비자를 구하는 일

알고 나면 끔찍한 것 투성이다. 맥도날드에서 빅맥을 먹는 것이나 양식된 광어며 우럭을 먹는 일, 마트에서 새우를 고르거나 내 어머니가 좋아하는 아보카도를 사는 것이 모두 그렇다. 동의한 적 없는 불쾌한 생산이 소비를 두렵게 하는 세상이다. 분업화를 껴안은 자본주의의 필연적 결과다.

무지한 소비에서 자유로울 방도는 마땅치 않다. 팍팍한 제 삶 하나 지키기도 어려운데 무얼 먹고 무얼 사는지 일일이 알아보는 건 피곤할뿐더러 사치스럽기까지 하다. 공정무역이니 동물복지니, 친환경어업과 유기농 등 의식 있어 보이는 이름이 붙은 상품을 사는 건 불편하고 돈과 시간까지 더 든다. 그마저도 선택지가 있는 건 극히 일부다.

결국 원칙이 필요하다. 어디까지 허락하고 어디서부터는 받아들이지 않을지를 소비자 각자가 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조차 없이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폴 부르제가 말했듯이, 사는 대로 생각하는 걸 피할 수 없다.

먹거리에 한정하자면 나도 몇 가지 원칙이 있다. 개중 하나는 내가 먹는 모든 것을 직접 죽일 수 있는지 따져보고 직접 죽일 수 있는 것만 먹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직접 잡아본 일이 있는 광어와 우럭 따위의 커다란 생선이나 닭과 오리 정도는 죽일 때의 마음이 어떤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죽여본 일 없는 소와 돼지, 말이나 개 따위의 동물과 마주하면 내가 그것을 죽일 수 있을지를 상상해봐야 한다. 그 선한 눈이나 사람을 잘 따르는 태도, 똑똑한 움직임을 보고서도 목덜미에 칼을 찔러 넣을 수 있을까. 그저 배를 채우고, 맛을 느끼기 위해서?
내 경우엔 그렇다.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먹기 전에 소와 돼지를 죽이는 장면을 최대한 생생히 떠올리는 것, 그건 내 나름의 의식이다. 이런 의식은 나라는 인간이 어떤 희생 위에 살아가고 있는지 더 명확히 인식하도록 한다. "어차피 먹을 건데 편히 먹자"는 이들은 가끔 불쾌하다는 표시를 하기도 하지만, 어쩌겠나. 이게 내가 살아가는 방식인 것을.


채식주의를 선택하고 달라진 일상

채식주의자는 존경스런 사람들이다. 고기가 맛이 없어 먹지 않는다는 이들이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폭력적으로 사육되고 죽임당하며 해체되고 유통되는 시스템에 반대해 고기를 거부하는 태도는 얼마나 용감한가. 나는 정말이지 그런 귀찮음과 불편을 감수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섭식일기>는 채식주의자가 쓴 에세이다. 어류는 먹는다지만 육류는 거부하는 페스토 베지테리안으로, 경향신문 기자로 일하는 최미랑이 저자다.

책엔 그가 채식을 선택하기까지의 고민, 주위에 알린 뒤 겪게 된 경험들이 고스란히 담겼다. 대체로 시시콜콜한 이야기지만 채식을 선택한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겪었을법한 내용이다.

저자와 나는 알고지낸지 6년이 됐다. 친구라고 부르기 좀 저어되는 건 내가 그를 충분히 잘 알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이따금 자리를 함께 하며 알게 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 책 한 권으로 알았다. 그건 이 에세이가 그의 성격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내가 아는 그는 예민하고 불편해하는 게 많은 사람이다. 이따금은 그런 예민함을 피곤함으로 받아들인 때도 있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그 예민함과 불편함이 어디서 출발하는지 조금쯤 알게 되었다. 아마도 그 예민함과 불편함이 그로하여금 동물의 권리를 묻고, 채식을 이야기하도록 이끌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얼마나 고마운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알려고 하지 않는 순간, 남은 건 그대로 늙는 일 뿐이다.
우리가 먹는 동물들이 어디서 어떻게 길러지고 도축되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다면, 이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책을 집어 봐도 좋겠다.


■김성호 기자의 브런치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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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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