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매질이 능사 아니다

      2021.04.19 18:09   수정 : 2021.04.19 18:09기사원문
꼭 삼촌팬이라서가 아니라 새로 나온 아이유 앨범 5집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타이틀곡 '라일락'도 좋지만 난 '코인'에 눈길이 간다. 카지노에서 한판 붙는다는 내용인데, 뮤비를 보니 언뜻 비트코인 닮은 코인이 보인다.

상대방은 영화 '타짜'에서 '아귀'로 나온 김윤석. 도박의 신을 당할 도리가 있나. 아귀가 칩을 다 딴다. 마지막 장면이 반전. 아귀가 떠나면서 코인을 툭 던져준다.
돈을 다 잃었지만 만족한 표정의 아이유. 코인 하나면 됐지 뭐, 이런 모습이다.

가상자산(암호화폐)이 아이유 노래에까지 침투했다. 증시의 동학개미 자금은 가상자산 거래소로 이동 중이다. 미국에서 들려온 소식은 더 극적이다. 미국 최대 규모의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베이스가 지난주 나스닥에 직상장했다. 주당 300달러를 웃도는 높은 가격에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창업자 브라이언 암스트롱(38)은 단박에 세계 100대 부자 클럽으로 직행했다.

주요국 중앙은행은 여전히 가상자산에 부정적이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비트코인이 달러화를 대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주 "암호자산 투자가 과도해지면 금융안정 리스크가 커진다"고 말했다. 중앙은행의 우려는 당연하다. 미국은 달러제국을 구축했다. 누가 이걸 허물고 싶겠는가. 중앙은행은 화폐 기득권자들이다. 신사임당 5만원권을 펴보라. 한국은행 총재 도장이 찍혀 있다. 종이에 도장 꾹 찍고 5만원에 판다. 원가 대비 이렇게 수지 맞는 장사가 또 있을까.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지폐 또한 신기루다. 예전처럼 금으로 바꿔준다는 보장도 없다. 오로지 중앙은행과 정부가 가치를 보증한다는 말만 믿고 서로 주고받는다. 그러다 가끔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김광균 '추일서정')처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휴지 조각이 될 수도 있지만 말이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이스라엘 히브리대)는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에서 푸조 신화를 말한다. 사자 문양 상표를 붙인 그 푸조자동차 말이다. 하라리는 "푸조는 우리의 집단적 상상력이 만들어낸 환상"이라고 잘라말한다. 잘 와닿지 않는다고? 그럼 루이비통이나 구찌를 떠올려보자. 왜 우리는 명품 브랜드에 말도 안 되는 돈을 지불하는가. 그만 한 가치가 있다고 집단으로 믿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구두 한 켤레를 몇 천만원 주고 산다. 그리곤 그 비싼 구두를 자랑하지 못해 안달한다. 그게 인간이다.

지난 주말에 비트코인 가격이 널뛰기를 했다. 미국 재무부가 암호화폐를 활용한 돈세탁을 조사할 것이란 루머가 퍼진 탓이다. 19일 한국 정부도 오는 6월까지 특별단속에 나섰다. 이런 일은 앞으로도 한동안 되풀이될 것 같다. 장차 비트코인이 거품처럼 폭삭 꺼질지, 또는 천하의 명품 브랜드가 될지, 또는 기존 화폐를 대체하는 디지털화폐로 거듭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실 내가 봐도 가상자산 광풍은 아슬아슬하다. 경험치 높은 기성세대가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 사례를 소환해 경고음을 울리는 것은 적절하다. 다만 긴 시야에서 정부나 중앙은행이 비트코인을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대했으면 한다. 꼭 아이유가 '코인'을 불러서가 아니다. 청년들이 비트코인에 열광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혁신에 눈 감고 그저 회초리만 들면 꼰대다. 매질할 시간에 가상자산 부작용을 제도권 안에서 풀 방도는 없는지 살펴보는 게 낫다.
우린 이미 전기차 테슬라를 비트코인으로 사는 세상에 살고 있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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