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총수 지정 혼선, 재벌정책 시효 다했다
2021.04.29 18:04
수정 : 2021.04.29 18:07기사원문
공정위는 쿠팡 총수 지정에 고민을 거듭했다. 미 국적을 가진 김 의장을 총수로 지정하지 않을 것이란 소식에 외국인 특혜 시비가 일었다. 지난 2017년 네이버 창업주 이해진을 우격다짐으로 총수로 지정한 사례도 다시 소환됐다. 당시 네이버는 이해진의 지분이 4%밖에 안 된다며 총수 지정에 반대했으나 공정위는 밀어붙였다. 그러나 결국 공정위는 '총수 김범석' 안을 포기했다. 그러면서 총수 지정제 전반에 대한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둘러댔다.
공시대상기업집단은 한국 정부가 공인한 재벌이다. 재벌 총수가 되면 공시·신고 의무화, 총수일가 사익편취 제한 등 온갖 규제를 받는다. 한마디로 그룹 안에서 말썽이 나면 최종 책임은 총수가 지라는 뜻이다.
예전엔 총수 지정제가 나름 정당성을 지녔다. 국가주도 성장정책 아래서 재벌은 특혜를 누렸다. 문어발 확장이 성행했고, 소유구조는 순환·상호출자로 뒤엉켰다. 특혜를 받았으니 정부가 간섭해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재벌 특혜는 꿈도 꾸지 못한다. 네이버, 카카오, 쿠팡 같은 혁신기업은 정부 지원 없이 홀로 일어섰다. 이런 기업에 재벌 딱지를 붙이는 순간 숨막히는 규제가 시작된다. 재벌·총수 지정은 쭉쭉 뻗어가야 할 기업의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매다는 격이다.
공정거래법은 올해로 꼭 40년 됐다. 자산 기준으로 그룹에 순위를 매기고 총수를 지정하는 재벌정책은 누가 봐도 구닥다리다. 올해는 1위 삼성부터 71위 중앙까지 일렬로 세웠다. 군대식 서열문화의 잔재다. 미국에선 포천(포천 500) 또는 포브스(포브스 글로벌 2000) 같은 경제잡지가 할 일을 한국에선 국가기관인 공정위가 한다.
쿠팡 사례는 재벌정책이 근본적인 한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쿠팡 외에 뉴욕증시에 상장하려는 국내 혁신기업이 줄을 서 있다. 공정위는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개선안은 정부가 기업 간섭에서 점차 손을 터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