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세대의 분노에 대하여

      2021.07.01 18:05   수정 : 2021.07.01 18:05기사원문
얼마 전 친구와 함께 현충원 참배 후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노량진에 들렀다. 예전 노량진과는 겉모습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무질서하던 포장마차 노점들이 컵밥 전문점(?)으로 거듭나 질서 있게 자리 잡은 풍경이 우선 눈에 들어왔다.

거리를 둘러보던 중 한 컵밥집에 붙은 사진에서 낯익은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대선 후보 시절 노량진에 들렀던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문 후보가 공시생들과 컵밥을 함께 먹은 것은 2012년이었고, 2017년에는 수험생과 소주를 나누며 공시생의 애환을 듣고 공무원 학원을 찾아 특강을 하기도 했다. 공무원 17만4000명 증원 대선 공약도 공시생 등 젊은 층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런 노력의 결과일까. 출구조사에 따르면 문재인 후보는 18대 대선에서 20대 65.8%, 30대 66.5%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고 19대 대선에서는 20대 47.6%, 30대 56.9%의 지지로 다른 후보들을 압도할 수 있었다.

그에 비하면 지난 4·7 보궐선거 결과는 경천동지할 변화였다.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 서울시장 선거에서 20대는 55.6%, 30대는 56.5%가 오세훈 시장에게 표를 몰아줬다. 특히 20대 남성의 오 시장 지지율은 72.5%로 가장 높았다. 박성민 전 민주당 청년 최고위원을 청년비서관에 임명한 것은 놀란 정부·여당의 청년층 구애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25세 1급 공무원' 비판 여론에 대해 '36세의 야당 대표'와 비교하는 걸 보면 야당에 쏠리는 젊은 층의 관심을 돌리려는 것일 수도 있다. 가상하기는 하지만 그런 노력은 젊은이들의 호응 대신 역풍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의 말처럼 "단호하게 배격"해야 할 "의도를 가지고 하는 공세"가 아니다. 하루 10시간 이상 공부에 몰두해도 합격의 희망을 갖기 어려운 게 노량진 공시생들의 현실이다. 지난해 국가직 9급 공채시험 평균 경쟁률은 37.2대 1, 전국 일반행정은 126.1대 1, 지역 일반행정은 113.7대 1을 기록했다. 그런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9개월짜리 정무직"이란 말로 일축하기에는 너무 크다. 오죽하면 현 정권에 우호적인 시사평론가 김용민씨가 "컵밥 먹어가며 공시 준비하는 청년에게 무상 '빅엿'"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겠는가.

더 큰 문제는 2030세대가 느끼는 분노의 본질이다. 청년층의 의식 근저에는 미래 세대에게 비전과 희망을 주지 못하는 정부·여당의 무능에 대한 실망감이 자리하고 있다. 청년비서관을 포함한 태스크포스에서 내놓을 몇 가지 정책을 보고 이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한마디로 역부족이다. 입학-졸업-취업-결혼으로 이어지는 인생 사이클과 월세-전세-자가로 이어지는 주거 사다리 모두가 붕괴된 형편이다. 사라지는 좋은 일자리와 폭등하는 부동산 값 때문에 주거 마련 기회마저 박탈당한 젊은이들의 분노는 지극히 당연하다.

선거 때만 되면 많은 정치인들이 노량진을 찾는다. 대부분 문 대통령처럼 학생들과 함께 컵밥을 먹거나 고시원 혹은 강의실을 찾아 수험생들을 격려한다.
하지만 정치인의 발길은 선거와 함께 끝나고 관심도 사라진다. 기왕 임명되었으니 청와대 청년비서관과 청년 태스크포스는 평소에 노량진을 찾아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면 어떨까. 그동안 해오던 것처럼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방문이 아니어야 한다.
선거공약 개발 목적이 아니라 진정한 청년관련 정책을, 그것도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 입장에서 마련하기 위한 목적이어야 한다. 금지와 단속, 처벌 위주의 노점상 대책에서 양성화와 제도화로 깔끔하고 세련되게 탈바꿈한 컵밥 거리를 보며 획기적인 발상의 청년정책이 나올 수 있을지 누가 아는가.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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