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못 하는 상담쌤에 가슴이 턱"

      2021.09.25 09:00   수정 : 2021.09.25 08:59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청소년 상담 복지센터 쌤(선생님)들은 제 정체성을 이해 못 하는 데 그냥 들어주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위클래스 자체를 불신해요. 일단 부모님한테 (상담 내용 관련) 연락 가는 경우도 있어서 퀴어(성소수자)면 위클래스는 추천하지 않아요"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을 찾은 청소년 성소수자가 털어놓은 상담 내용이다.

띵동이 발표한 탈가정 고민과 경험 기초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청소년 소수자들은 제도권 청소년 상담 복지체계를 알고 있음에도 이용하지 않는 이유로 '나의 정체성과 관련된 고민이나 어려움을 이해할 것 같지 않아서', '비밀이 보장되리라고 신뢰할 수 없어서'라고 응답했다.


■ "청소년 성소수자 인식이 첫걸음"
지난 2016년 레즈비언 청소년 A씨는 여성가족부와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이 함께 운영하는 '헬프콜 청소년전화 1388'에 상담을 요청했다가 "아직 청소년이니까 (동성애) 치료를 받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답을 들어 논란이 됐다.



청소년기 탈가정을 경험한 트랜스젠더 B씨는 "(개별학교 단위로 운영되는 상담시설인) 위(Wee)클래스 선생님한테 몇 번 정체성 고민을 얘기해본 적이 있는데 다 비웃고 해서 몇 번 나가고 그냥 그만뒀어요"라고 밝혔다.

띵동의 정용림(아델) 활동가는 위기에 놓인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청소년 지원 기관에 선뜻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이유로 '지원 기관 종사자들의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를 꼽았다.
정 활동가는 "성소수자에 대한 기본 정보뿐만 아니라 청소년 성소수자가 경험하는 위기에 대한 대응과 개입 방법 등 구체적이고 심층적인 청소년 지원기관 종사자 대상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정 활동가는 서울시교육청 '제2기 학생인권종합계획(2021~2023)'처럼 공적영역에서 청소년 성소수자의 존재를 인식하는 움직임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4월 발표한 2기 계획안에 성소수자 학생이 차별·혐오 등 인권침해를 당했을 때 서울시교육청이 상담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현재 일부 학부모 등으로 구성된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에 부딪힌 상태다.


"결국은 정부가 나서야"
해외와 달리 정부가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한 조사조차 배제하는 등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점도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여성가족부가 위기청소년 실태 관련 예비조사를 실시했는데 조사대상에 청소년 성소수자가 빠졌다"고 꼬집었다. 허 조사관은 "해외 홈리스(노숙인) 청소년 중 성소수자는 20~40%으로 추산된다"며 "국내 위기청소년 중 상당수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성소수자를 의도하고 보지 않으려는 태도"라고 지적했다.

실제 국내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한 국가기관의 연구는 지난 2006년이 마지막이다. 이 밖에 청소년 성소수자의 가정폭력 피해와 탈가정 실태는 구체적으로 조사된 바가 없다.

민지희 활동가는 "위기지원을 하다보면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라며 "국가기관에서 탈가정 청소년 성소수자 문제를 다루는 메뉴얼이 구축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 활동가는 "기존 청소년 통계조사부터 시작해 기존 모든 청소년 관련 제도들이 이성애자 청소년만을 상정하고 있는데 위기 청소년 중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청소년 성소수자 당사자의 목소리를 이젠 정부가 귀담아 들을 때"라고 강조했다.


허 조사관도 "최소한 국가가 나서서 탈가정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혐오나 배척 없이 쉼터에서 만큼은 편하게 머물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정비하고 쉼터 종사자 대상 성소수자 관련 교육도 병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김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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