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의지가 없다" 가족들조차 비난... 결국 방문을 잠갔다
2021.12.08 10:57
수정 : 2021.12.08 10:57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어떤 청년들은 방 밖으로 나가는 게 쉬울 수 있겠지만 아닌 사람들도 있습니다. 안전망을 나가 상처에 직면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도 있습니다. 폭력적인 사회 분위기 탓일 수 있습니다.
낭만고양이 날다 프로젝트의 서다희 코치는 지난 2일 청년재단 사무실에서 열린 '도란도란 라운드테이블'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 자리는 청년재단이 지난 3년간 은둔형 외톨이와 관련해 추진한 사업들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결국은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의지로 해결할 수 있다.'
은둔형 외톨이 현상을 바라보며 수많은 사람들이 해결책으로 내세운 말들이다. 외톨이들은 '의지'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오히려 방문을 걸어 잠갔다. 어쩌면 가족, 친구들조차 외톨이들의 문제를 손쉽게 해결하려 했다. 은둔형 외톨이는 의지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은둔형 외톨이들은 당사자의 시선에서 대안이 나와야 한다.
■'의지박약' 주홍글씨
7일 은둔형 외톨이 당사자 모임인 '은둔고수'의 내부 설문 자료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17명 중 70.6%인 12명이 '은둔 시절 가족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고 응답했다.
은둔형 외톨이들의 사연은 모두 제각각이다. 혹자는 학창 시절 왕따를 경험했고, 다른 이는 취업실패 후 방문을 걸어 잠갔다. 그런데 이들에게 내리는 평가는 모두 비슷했다. '의지 박약'이다.
8년간 5급 공무원 공채시험을 준비하다 현재는 은둔형 외톨이가 된 김신씨(33)는 "오랜 시험기간을 마치고 고향에 내려가 처음 들은 말은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난이었다"며 "나 역시 마음의 병이 생겨 찾아간 본가인데,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실제 은둔고수에 따르면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인식은 '의지 박약' '게으르다' '예민하다' 등으로 나타났다.
초기 은둔 과정에서 가족의 역할이 중요하다. 은둔고수에 따르면 은둔형 외톨이 당사자 12명(70.6%)은 가족의 태도가 달랐다면 은둔 상태를 더 빨리 극복할 수 있었다고 답했다.
유승규 K2인터내셔널코리아 프로젝트 매니저는 "많은 은둔형 외톨이들이 정서적인 불안을 가족과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며 "어떤 은둔형 외톨이는 자살 시도를 한 뒤에야 가족과 소통이 가능했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유정 AND심리상담센터 심리상담사는 "은둔형 외톨이들의 부모 세대는 정말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고 '노력하면 된다'는 사고가 삶에 체득됐다"며 "삶의 긴장만큼이나 본인에게 해결되지 않은 상처가 있다"고 진단했다. 이 상담사는 "이러한 상처 때문에 자녀의 상처가 보이지 않게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은둔형 외톨이를 자녀로 두고 있는 부모도 이들에 대한 이해를 원했다. 한국은둔형외톨이부모협회가 지난해 7월 실시한 은둔형 외톨이 부모 대상(총 27명) 설문조사에 따르면 부모들이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되는 서비스(중복투표 가능)에서 자녀 문제로 인한 고민 등 개인상담이 70.4%로 가장 높았다. 고립 은둔에 대한 이해 및 교육 프로그램이 63%로 그 뒤를 이었다. 아울러 유사 문제를 갖고 있는 부모 간 자조모임의 비율은 44.4%로 나타났다. 또 유사 문제를 갖고 있는 부모들에 대한 상담은 29.6%로 집계됐다.
도란도란 라운드테이블에 나온 한 부모는 "자녀의 문제를 가족 안에서만 공유하고 밖으로 알리지 않았다"며 "나중에 사태가 심각해져 어디에 물어봐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은둔형 외톨이 "장기 프로젝트 필요"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몰이해는 정책에서도 벌어졌다. 현재 일부 지자체를 제외한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은둔형 외톨이 문제를 청년 문제로만 보고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소위 청년 무직자인 니트족과 은둔형 외톨이가 혼재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김옥란 리커버리센터장은 "많은 지자체에서 은둔형 외톨이 문제를 접근할 때 단순 '일 경험'에 초점을 두고 있다"며 "은둔형 외톨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관계 회복을 위한 사회화 과정"이라고 말했다.
실제 한 지자체에서는 은둔형 외톨이 정책에 대한 몰이해가 벌어지기도 했다. 해당 지자체에서는 은둔형 외톨이를 발굴했지만 이후 상담 등 해결책 마련에는 미비한 모습을 보였다. 한 관계자는 "은둔형 외톨이들은 용기를 내서 지자체 발굴에 적극 참석했지만 돌아온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며 "오히려 이들에게 가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은둔형 외톨이를 오래 관찰한 이들은 단순히 주기적인 상담과 같은 수동적인 정책으로는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남기웅 청년재단 매니저는 "은둔형 외톨이 문제는 오랜 기간 쌓여온 마음의 상처 때문에 장기간에 걸쳐 관계 형성에 공을 들여야 한다"며 "단기간에 성과가 없을지 몰라도 장기 프로젝트로 지원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만큼 은둔 경험이 있는 전문가들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유승규 매니저는 "은둔형 외톨이들이 평소에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며 "은둔생활을 경험한 전문가들을 대거 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미 서울시 미래청년기획단 청년사업반장은 "은둔형 외톨이에 정통한 전문가가 매우 소수"라면서 "은둔생활을 극복하고 사회에 복귀한 이들을 발굴해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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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형 외톨이 출신 유승규씨
"사회적기업 통해 전문가 발굴"
"은둔형 외톨이들의 목소리가 담긴 대안이 나와야 합니다."
5년 넘게 은둔생활을 하다 세상에 나온 K2인터내셔널코리아 은둔고수 프로젝트 매니저 유승규씨(사진)는 이같이 말했다. 유씨는 현재 은둔형 외톨이를 돕는 사회적기업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소위 '인싸'였던 유씨가 집 밖에 나오지 못한 배경은 가족과의 갈등이었다. 유씨는 "중·고등학교부터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꿈이었지만 가족과 제대로 소통을 하지 못했다"며 "주위 친구마저도 '정신차려라'라는 이야기가 계속 되자 은둔생활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유씨는 우연히 친구에게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문 밖을 나오게 됐다. 그는 "어느날 친구들이 벌레와 쓰레기가 쌓인 집에 방문한 적이 있다"며 "그들에게 모든 걸 다 털어놓고 나서 후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이후 그는 상담센터 등을 찾아가며 K2인터내셔널코리아를 만나게 됐다.
유씨는 K2인터내셔널코리아의 합숙 프로그램에 참석하며 세상 밖으로 나섰다. 그는 "은둔생활을 하면서 무너진 생활습관을 다시금 회복할 수 있게 됐다"며 "단체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근무하며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유씨는 '은둔고수'라 불리는 은둔형 외톨이 출신 전문가들을 양성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올해 활동을 마감하는 K2인터내셔널코리아에 이어 은둔형 외톨이들을 위한 사회적기업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으로 패스트캠퍼스에서 진행한 '자기계발 어워즈'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유씨는 지금의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접근이 '당사자'가 제외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들어 관련 연구나 포럼이 열리는데, 당사자 없이 진행되고 있다"며 "당사자의 의견이 반영되는 형태로 같이 연구하거나 토론하는 자리가 많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례로 유씨는 은둔형 외톨이의 발굴 경로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은둔형 외톨이들이 가장 자주 접하는 사람은 '음식배달원'이라고 밝혔다. 유씨는 "수많은 은둔형 외톨이들은 아르바이트 구인 사이트에서 머뭇대고 배달원들을 자주 만난다"며 "당사자가 아니라면 파악할 수 없는 동선이다"라고 지적했다. 유씨는 더 많은 은둔형 외톨이와 소통을 하기 위해 SK텔레콤과 같이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상담을 진행할 예정이다.
유씨는 은둔형 외톨이를 이해할 수 있는 전문가 양성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은둔형 외톨이 발굴 이후에 그들을 치유할 수 있는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기존 전문가들이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라면서 "당사자들로 이루어진 전문가 집단이 양성돼야 정책이 단순 발굴에서 그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도움을 요청했을 때 제때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씨는 "은둔형 외톨이들이 아침에 일어나기 위해 침대에서 한 발 빼보는 연습도 해보고, 집 밖에 나가기 위해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산책을 하는 연습을 했으면 좋겠어요. 이들이 혹여나 실패하더라도 '그럴 수 있다'고 응원해주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