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세 히키코모리 딸, 엄마를 따라 그렇게 생을 내려놨다...日 동시 고립사 '8050 비극'
2021.12.12 18:35
수정 : 2021.12.12 18:35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도쿄=조은효 특파원】 2018년 1월 6일,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시의 한 아파트에서 82세의 어머니와 52세의 딸이 한 방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모녀의 사인은 영양실조와 저체온증이었다.
노모는 이웃과 접촉을 피했고,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며 정부의 생활보호 신청도 완강히 거부했다고 한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이들이 사망할 당시, 실내에 현금 9만엔(약 91만원)이 있던 것이다. 딸로선 당장의 허기를 채우고도 남는 돈이었으나 혼자 남았던 그는 고립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아사했다.
2020년 5월에는 일본 중부 아이치현에서 87세의 아버지와 55세의 아들의 시신이 발견됐고, 같은 해 12월 도쿄의 아파트에서는 91세 어머니와 66세 아들에게 같은 형태의 비극이 확인됐다. 유일한 의지였던 부모의 죽음 이후 함께 생의 끊을 놓아버리는 '동시 고립사', 또는 부모의 연금이 끊기면서 생활고로 인해 굶어죽는 중년의 히키코모리 문제가 최근 수년간 일본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른바 '8050(하치마루 고마루)'문제다. 80대 고령의 부모가 50대 중년 히키코모리 자녀를 부양한다는 뜻이다.
은둔형 외톨이의 장기화가 초고령사회 현상과 맞물린 결과다. 8050 문제는 이미 9060문제로 진화하고 있다. 90대 부모가 60대를 부양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히키코모리 8050문제는 결국 생애 전체를 가로지르는 비극이자, 부모와 자녀의 죽음과 맞닿은 문제라는 인식이 일본 사회에 확산되고 있다.
■늙어가는 히키코모리…200만명 이상 추산
한국에서 은둔형 외톨이로 불리는 히키코모리는 일본어로 '(방에)틀어박히다'는 동사의 명사형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히키코모리에 대해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취업, 취학 등)사회활동을 회피하고, 6개월 이상 대체로 집에서 머무르고 있는 상태'라고 정의하고 있다. 현재 일본 내각부 추산으로는 전 세대에 걸친 히키코모리는 대략 115만명으로 파악된다. 지난 2015년과 2018년 두 차례에 걸친 내각부 조사에 따른 것이다. 2015년 당시 조사 대상은 15~39세로, 54만1000명으로 추산됐다. 하지만 중년 히키코모리들이 제외됐다는 지적이 제시됐고 곧이어 2018년 40~64세를 대상으로 현황 조사가 이뤄졌고, 이를 토대로 이 연령대에서 무려 61만3000명이라는 추산치가 나왔다. 두 조사를 단순 합산하면 대략 일본 내 '광의의' 히키코모리는 115만4000명 정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보통,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려 하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를 중증 또는 협의의 히키코모리라고 부른다면, 광의의 히키코모리는 편의점 정도는 다닐 수 있거나 정규직 등의 활동은 간신히 하고 있지만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증자까지 포함한 수치다. 2018년 일본 내각부 조사에서 주목할 점은 4060대의 히키코모리가 1030대보다 더 많다는 점이다. '히키코모리=1030대 젊은층의 문제' 라는 공식이 깨진 것이다. 히키코모리 문제는 1980~90년대에는 등교 거부 정도로만 인식됐는데 1990년~2000년 대들어서는 일본의 거품경제 붕괴(1991년)와 맞물리면서 더욱 심화됐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30년'과 궤를 함께하는 이른바 '취업 빙하기 세대(버블붕괴 직후 고교·대학을 졸업해 안정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경우)가 여기서 잉태된 것이다.
이들은 1970년 전후에 태어나 40세 전후란 점에서 7040세대, 불황 정점에서 기회를 잃었다는 뜻에서 '로스트제너레이션(lost generation)'이라고도 불린다. 2000년대 초반부터 사회문제가 된 니트족(NEET, 일하거나 교육·훈련을 받을 의지가 없는 사람) 현상이 가세했고, 이런 흐름이 현재의 8050문제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내각부는 "히키코모리 상태가 되고 나서 7년이 경과한 사람이 50% 이상을 차지했다"면서 이 문제가 장기화되고 있는 경향이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현실은 더 심각하다. 전문가들은 '115만명'이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사회적 히키코모리: 끝나지 않는 사춘기'(1998년 저) 등에서 히키코모리 문제를 본격 제기한 정신 의학자인 사이토 다카시 쓰쿠바대 교수는 지난 2019년 일본 외국인기자센터(FPCJ)에서 각국 특파원 대상 브리핑에서 "내각부의 115만명 추산치는 히키코모리 현실을 과소평가한 것일지 모른다"면서 "히키코모리를 전체 인구의 3~5%라고 본다면 (일본 내에) 약 200만명 정도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독 담당 장관까지 신설했지만
일본 정부가 마냥 손을 놓은 것은 아니었다. 1991년 등교 거부에 대응하기 위해 '등교거부아동 복지대책'을 개시했으며 2003년부터는 '1020대 중심'의 히키코모리를 지원하기 위해 지자체별로 정신보건복지센터 등 상담센터를 운영했다. 2009년에는 히키코모리 대책을 정비해 당사자의 자립을 지원하기 위한 '히키코모리 지역 지원센터' 설립을 추진했다. 2015년에는 히키코모리 생활곤란자 자립지원법을 시행, 거주·취업활동 등 생활 전반을 아우르는 포괄적 지원이 제도화됐다. 실제로 파이낸셜뉴스가 일본 정부, 도쿄도 등의 히키코모리 관련 시책을 취재한 결과 일본 전역에 지자체 차원의 담당과는 물론이고, 지원센터와 각종 민간지원단체들이 설치돼 '제도상'으로는 정책 노력이 일정 수준 반영된 것으로 파악됐다. 내년도 히키코모리 예산도 7개 분야로 구체화됐다. 후생노동성, 내각부 등 히키코모리 대응 관계부처 합동회의는 지난 10월 1일 △아동 및 젊은층 히키코모리 지원제도 정비 △등교 거부 △소비활동 △취업활동 △농림수산분야 취업연계 7개 분야에 걸쳐 예산사업 범위를 확정했다.
아베 정권 당시인 2019년에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 30대 후반~40대 후반인 취업 빙하기 세대들을 정규직 공무원 등으로 채용하겠다며 약 6000억원의 예산을 책정했으며 올해 2월에는 영국(2018년 신설)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고독·고립 대책 담당상(장관)직을 신설했다.
정부가 사회적 단절로 인한 고독의 문제에 적극 나서겠다는 일련의 노력이 엿보이지만, 일본의 히키코모리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것은 정책이 상당 부분 겉돌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고독의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에 한계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연 히키코모리의 '자립과 취업활동'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느냐는 근본 물음에 봉착한 것이다. 이를 해소하지 않고선 인구 감소에도 등교 거부 학생은 되레 증가하고, 중년의 히키코모리들의 비극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별취재팀 김도우 팀장 이환주 이진혁 기자 조은효 도쿄특파원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