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감 정말 없구나

      2022.02.12 22:51   수정 : 2022.02.12 22:51기사원문


요점

·2차 TV토론은 토론이라 부르기도 부끄럽다
·1984년 레이건은 유머로 좌중을 압도했다
·왜 우리에겐 대인배 대통령 후보가 없을까

[파이낸셜뉴스] 대선 후보 2차 TV 토론을 봤더니 왜 사람들이 "대통령감이 없다"고 혀를 차는지 알겠다. 그렇다, 대통령감이 없다. 대통령은 나라의 운명을 쥔 사람이다.

그런데 1차에 이어 2차까지 두 번을 봤는데도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을 찾지 못했다. 최선, 차선은 진작에 물건너갔다.
유권자가 손에 쥔 패는 차악인데 그마저도 차차악으로 굴러떨어질 판이다.

한가지 위안은 있다. 유튜브에서 2020년 미국 바이든-트럼프 대선 토론을 봤다. 1차 토론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트럼프는 수시로 바이든 말을 끊었다. 몇 번 참던 바이든도 반격에 나섰다. 둘이 동시다발로 말을 쏟아내는 바람에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아예 들리지도 않았다. 둘은 토론이 아니라 악다구니를 쓰는 것처럼 보였다. 분열된 미국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미국은 대선 토론의 선구자다. 1960년 케네디와 닉슨이 세계 최초로 테이프를 끊었다. 그로부터 60년 뒤에 만난 트럼프와 바이든은 선배 대통령들이 쌓은 공든탑을 일거에 무너뜨렸다.

2022년 한국 대선 토론은 2020년 미국을 따라가는 것 같다. 상대에 대한 비웃음 속에 거짓말, 허위 주장, 엉터리, 어이없다, 꼰대 따위의 험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다. 상대 의견을 존중하기는커녕 잘 모르고 하시는 말씀이라며 대놓고 면박을 준다. 토론이란 단어가 무색하다. 애당초 대통령급 토론은 바라지도 않았다. 그래도 이 정도로 수준 이하가 될 줄은 몰랐다.

미국 대선 토론이 다 엉망은 아니다. 우리 후보 4인에게 1984년 레이건-먼데일 2차 TV토론 시청을 권한다. 재선에 도전한 레이건의 대인배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패널이 물었다. "당신은 미국 역사상 가장 나이 많은 대통령이다. 위기시 나라를 이끌어가는데 문제가 없겠는가?" 당시 레이건은 73세였다. 레이건이 답했다. "나는 나이를 이번 대선의 이슈로 삼지 않겠다. 나는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상대방(먼데일)의 젊음과 얕은 경험을 이용하지 않겠다." 부통령 출신 먼데일은 56세였다. 역공도 이 정도면 예술급이다. 토론회장에선 폭소가 터졌다. 먼데일도 껄껄 웃었다. 이 장면은 미국 대선 토론의 백미로 꼽힌다. 레이건은 유머로 좌중을 압도했고, 동시에 어떤 위기도 능수능란하게 헤쳐나갈 수 있을 거란 믿음을 시청자들에게 심었다.


먼데일도 대선 후보다운 풍모를 보였다. 패널이 물었다. "레이건의 나이를 문제 삼겠는가?" 먼데일이 말했다. "아니다, 문제 삼지 않겠다. 중요한 건 (나이가 몇이든) 대통령이 알아야 할 것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이 해 대선에서 레이건은 역대급 대승을 거뒀다. 먼데일은 비록 졌지만 품위를 잃지 않았다.

올해 한국 대선을 한마디로 총평하면 잘다. 사람도 잘고 공약도 잘다. 나라는 둘로 쪼개졌고 후보들은 오직 자기쪽 논리만 고수한다. 좌우를 넘어 나라를 이끌어 갈 큰 그림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숫자와 전문용어, 정파적 고집, 다그치는 듯한 질문,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네거티브를 앞세워 상대를 찍어 누르지 못해 안달한다.

레이건은 소통의 달인이란 명성을 얻었다. 위대한 미국 대통령 순위에서도 늘 수위를 다툰다.
통이 큰 레이건은 대통령다움의 모델이다. 우리 대선 토론에선 정녕 레이건 같은 유머와 여유를 맛볼 수 없는 걸까. 3.9 투표일까지 선관위가 주최하는 공식 토론이 세 번 더 남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국민의힘, 안철수 국민의당,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새로운 모습을 기대한다.

paulk@fnnews.com 곽인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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