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과 '브로맨스' 과시하던 시진핑, '우크라 침공' 터지자 미묘한 거리두기

      2022.02.27 19:17   수정 : 2022.02.27 19:17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베이징=정지우 특파원】중국과 러시아는 1949년 10월 신중국 건국 이후 스탈린 소련(옛 러시아)공산당 서기장이 사망한 1953년 3월까지 긴밀한 우호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중국 정부를 승인해준 국가도, 마오쩌둥 전 주석이 건국 2개월 만에 방문한 곳도 소련이다. 장쩌민, 후진타오를 거쳐 시진핑 주석이 취임한 2013년 3월 후부터 양국 우호는 가속화됐다.

시 주석 역시 최초 순방국으로 러시아를 찾았다. 이 때 시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면적인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 심화관계를 협의하고 선린우호협력조약 등 35개 문서에 서명했다.
중·러 수교 70주년을 맞은 2019년엔 '신시대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했다.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선 공식 오찬 하루 전인 지난 4일 시 주석은 푸틴 대통령과 따로 만나 에너지·금융·우주 등 15개 분야 협정을 맺고 준동맹 수준의 공동 성명도 채택했다. 이런 러시아가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이전부터 위기감은 존재했지만 푸틴 대통령은 결국 실행에 옮겼다. 하지만 중국의 반응이 이상했다. 러시아 편을 들면서도 적극적으로 러시아를 옹호하지 않고 있다. 각국에게 자제와 통제, 대화와 협상을 촉구하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확장과 러시아 제재에 대한 반대 입장에 그쳤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규탄 결의안에도 기권표를 던졌다. 그간 보여 왔던 역사적 행보와는 사뭇 다르다.

■미국과 갈등 증폭 우려

중국이 표면적으로 이중적인 태도에 대해선 다양한 해석이 제기된다. 우선 거론되는 것은 미국과 갈등이 증폭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다.

중국은 이미 홍콩·대만 문제, 신장위구르자치구·시짱(티베트) 인권 침해 등을 이유로 미국으로부터 반도체를 비롯한 각종 제재를 받고 있다. 국영기업을 물론 알리바바, 화웨이와 같은 민간 기업들도 미국의 사정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중국은 다른 한편으론 보복 조치를 여러 차례 밝히면서도 미국의 제재와 상응할만한 대응은 실제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휴스턴에 있는 중국 총영사관을 폐쇄하자, 청두 주재 미국 총영사관을 뒤따라 폐쇄하고, 미국이 인민일보 등 중국 매체를 외국사절단(중국공산당 산하)으로 지정한 뒤에는 뉴욕타임스(NYT),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의 중국 특파원을 사실상 추방하는 선에서 그치는 수준이다. 이러한 보복도 대부분 경제 외에서 주로 가동하고 있다.

이는 미국 외에 호주, 리투아니아 등에 대한 국가를 대할 때와는 차이가 나는 모습이다. 중국은 호주가 미국 편에 섰다며 랍스타, 와인, 석탄 등의 수입을 중지시켰고 리투아니아도 대만 대표처를 건설했다며 무역 보복을 실행했다. 한국 또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설치 이후 몇 년째 한한령(한류제한령) 등을 풀지 않고 있다.

중국은 14억 이상 인구를 토대로 막강한 내수 소비력을 자랑한다. 이는 상대 국가와 기업에겐 매력적인 시장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중국에겐 예리한 '칼날'이 될 수 있다. 반면 중국은 미국과 관계에선 의존도가 높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면서도 첨단기술은 약했고 이러한 부족분은 미국으로부터 채웠다.

중국 해관총서(관세청)의 국가(지역별) 수출입 상품 총액표를 보면 중국의 무역(수출입) 규모(달러 기준)에서 부동의 1위는 미국이다. 지난해엔 미국과 7556억 달러(약 910조원)의 무역 거래를 했는데, 미국으로 수출은 5761억 달러이지만 수입은 1795억 달러에 그쳤다.

따라서 만약 중국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놓고 러시아 편에 명확하게 설 경우 미국에 의존하는 경제 시스템은 충격이 더해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러시아와 중국을 묶어서 적대국으로 규정하고 동맹을 끌어 모아 고립전략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중국이 14차5개년 계획(2021~2025년)을 통해 반도체 굴기를 내세우고 중장기 플랜에서 2035년까지 미국 경제를 뛰어넘겠다고 공헌한 것도 미국의 압박 이후에 본격화됐다. 자력갱생이라는 말도 등장했다. 그만큼 미국의 영향력은 크다.

WSJ은 전문가들을 인용, 중국이 대미 관계가 더욱 악화되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당분간 줄타기 외교를 벌일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라이언 하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수석 고문은 트위터를 통해 "미국으로서는 이 위기가 중국의 선택을 확인할 기회가 될 것"이라며 "중국은 서방과 덜 적대적인 관계를 열어갈 길이 열려 있다는 것과 무모한 러시아와의 연계에는 큰 위험이 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EU 관계 '흔들릴' 각오해야

EU 전체를 적으로 돌리면 경제적 타격이 더 커질 것이라는 진단도 제기된다. 중국은 미국의 반중국 동맹 결성을 막고 EU와 경제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 지속적으로 친근감을 표시해왔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를 보면 시 주석은 올림픽 기간이던 지난 16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통화에서 "올해 프랑스가 EU 순회 의장국을 맡은 이후 EU 통합과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을 강화하기 위해 많은 일을 했다"면서 "중국-EU투자 협정 비준 및 발효 과정을 진행해 양국 국민에게 이익이 돼야 한다"고 요청했다.

중국-EU투자협정은 유럽 기업의 중국 시장 진출을 확대하기 위해 '유리한 투자 환경'을 골자로 2020년 12월 체결됐다. 중국은 2014년 1월 협상 개시 후 7년 이상 공을 들였고 △중국 진출시 중국기업과 합작투자사 설립 폐지 △외국기업으로부터 강제 기술이전 금지 △보조금 지급 투명화 △국영기업의 외국인 투자자 차별 금지 등의 당근도 내걸어 체결까지 이끌어냈다. 그러나 2021년 신장 인권문제가 터졌고 양측이 서로 제재하면서 유럽의회는 작년 5월 이 협정 비준을 보류했다.

올 가을 시 주석의 3연임을 위한 당대회가 예고돼 있다는 점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중국 정부는 이 행사를 성공적으로 만들기 위해 부동산 기업 고삐 해제, 빅테크 규제 완화 등 지난해 중요 정책들을 줄줄이 수정하고 있다. 경기위축으로 중국 서민들의 삶을 팍팍하게 되면 불만은 높아진다. 결국 이는 시 주석 정권 3기 출범에 부담이 될 수 있다. 당대회를 위해 최소한 내년 3·4분기까지는 살기 좋은 중국을 만드어야 하는데, 미국과 관계악화는 분명한 걸림돌이 된다. 당대회를 마무리 지은 뒤에도 새로운 지도부가 완전히 안착될 때까지 대내외 안정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

대만을 비롯한 신장위구르, 시짱 등 중국 내 분리독립 세력도 고민거리다. 푸틴 대통령은 침공 직전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의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 세력이 세운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승인했다. 만약 이런 러시아를 적극 지지할 경우 중국 속 분리독립을 통제할 명분도 사라지게 된다. 중국이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주권과 영토 본전 존중'을 꾸준히 밝힌 것도 같은 이유로 풀이된다.

다만 중국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는 반대를 명확히 했다. 먼저 겪은 국가의 고충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화춘잉 외교부 대변인은 23일 브리핑에서 "제재는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이고 효과적인 경로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왕이 외교부장도 25일 EU외교 대표, 영국 외교장관, 프랑스 대통령 보조관 등과 통화를 갖고 "중국은 역사적으로 무력이나 제재를 사용을 승인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조치에 찬성하지 않았다.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물밑 지원 가닥, 에너지·금융·곡물

대신 중국이 선택한 방법은 서방의 제재에도 러시아가 경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 국무원 산하 중국사회과학원 류샹 선임 연구원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국제 관계의 변화에 상관없이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은 지장을 받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처럼 설명했다.

류 연구원은 중국이 러시아 에너지 최대 수입국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러시아의 경제 규모는 세계 12위권으로 국제 경제 시스템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따라서 러시아의 경제 수요·공급망을 전망위로 차단하는 서방의 조치는 확실한 충격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러시아가 이러한 제재에도 다른 통로를 통해 글로벌 경제활동이 가능하면 충격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 류 연구원의 발언은 이 역할을 중국이 맡을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실제 에너지는 중국과 러시아 협력의 주요 분야이며 러시아의 최대 원유 수출국은 중국이다. 중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인 지난 23일에도 러시아 전역에서 밀을 수입할 수 있는 결정을 단행했다.

중국이 서방국가의 대러시아 금융 제재를 기회로 러시아 내 위안화 영향력 확대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SCMP에 따르면 장한후이 주러 중국대사는 지난 23일 러시아 통신사 인테르팍스와 인터뷰에서 "우리는 러시아 정부가 무역 결제에서 위안화 사용을 확대하고 위안화 표시 금융 상품과 준비통화를 구매하는 것을 기쁘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위안화 결제 규모 확대는 중국과 러시아 간 금융 협력을 심화하는 주요 방법 중 하나라고 장 대사는 꼽았다. 2020년 기준 중국과 러시아 간 교역의 약 17.5%가 위안화로 결제됐다. 2014년의 3.1%와 견줘 5배 이상 급증했다. 러시아 당국의 자료에서도 2020년 위안화는 러시아 외환보유고의 12.8%를 차지한 것으로 나온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 강제병합 이후 미국의 제재를 받으면서 달러 의존도를 낮추고 위안화 등 다른 통화 비중을 높이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영국 신문 가디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위기가 중국에 딜레마이지 기회가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지난해 무역 규모는 1468억7000만 달러(약 175조원)로 전년보다 35.9% 증가했다.
중국은 12년 연속 러시아의 최대 교역국 자리를 지켰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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