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은 대중교통 타면 안되나요?" 수미씨의 기나긴 출근길
2022.03.06 15:16
수정 : 2022.03.06 15:35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장애인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안 되나요?"
전동휠체어에 앉아 출근 준비를 하던 이수미씨(60)가 말했다. 지체1급 소아마비 장애인 이씨는 장애인 단체에서 활동가로 근무하며 주 5일을 출근한다. 이동수단은 비장애인과 같은 대중교통이다.
■'돌아가고 기다리고…' 휠체어 이용자의 기나긴 출근길
이날 이씨의 출근 장소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이었다. 노원구 하계동에 거주하는 이씨는 지하철 7호선 하계역에서 9호선 국회의사당역까지 이동해야 했다.
스마트폰 지도앱이 안내하는 최단 경로는 7호선 하계역에서 고속터미널역으로 이동한 뒤 9호선으로 1번 갈아타는 코스였다. 하지만 이씨는 하계역에서 군자역으로 이동해 5호선으로 갈아탄 뒤, 여의도역에서 9호선으로 한번 더 갈아타는 길을 택했다. 고속터미널역 7호선에서 9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선 리프트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리프트는 경사가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진동이 심해 위험성이 높다. 지난 2017년에는 지하철 1·5호선 신길역에서 리프트를 타다가 추락한 장애인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없는 이씨는 지지대조차 잡을 수 없어 리프트를 피하고 있다.
이씨는 1시간이 걸리는 길도 2시간 이상을 소요시간으로 잡아야 한다. 비장애인보다 이동상의 변수가 많아 일찍 출발해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씨는 이날도 오후 3시까지 국회의사당역에 도착하기 위해 오후 1시에 출발했다.
하계역에 도착한 이씨는 바로 엘리베이터부터 찾았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하계역 출입구는 2번이지만 계단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림의 떡'이다. 비장애인에게 다양하게 주어지는 선택지는 장애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경사로를 찾고, 엘리베이터를 찾아 수없이 우회해야 하는 게 그의 출근길이다.
승강장에 선 이씨는 열차에 오르려 했으나 전동휠체어 앞바퀴가 열차와 승강장 사이에 걸렸다. 이에 동행하던 장애인 활동지원사가 전동휠체어를 밀어 큰 탈 없이 승차할 수 있었다. 만약 활동지원사가 없었다면 열차에 오르지 못할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실제로 휠체어 이용자 사이에선 열차 틈에 대한 트라우마가 커서 지하철을 이용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이씨 역시 활동지원사가 동행하지 않는다면 지하철을 이용할 수 없다.
■동정·비아냥에도 '웃음'…"예전에는 더 심했어"
승차한 열차 안은 장애인 휠체어석이 없었다. 열차 안에서 전동휠체어가 많은 공간을 차지하자 일부 시민들은 이씨에게 '노골적인'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취재진에겐 다소 눈치 보이고 낯선 상황이었으나 이씨는 오히려 덤덤했다. 그는 지하철을 타면서 동정의 시선을 받거나 비아냥을 듣는 일이 많아 단련됐다며 웃었다. 다만 이용객이 많은 시간대 지하철은 탈 수 없다고 부연했다.
7호선에서 5호선으로, 5호선에서 9호선으로 환승하는 일은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전동휠체어 부피가 큰 탓에 다른 사람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기를 기다렸다가 다음 엘리베이터를 타야 했다. 이날 이씨가 집을 나선 순간부터 한번에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여의도역에서 9호선을 갈아타는 과정에서 엘리베이터를 찾지 못해 헤매기도 했지만 이씨는 당황하지 않았다. 일부 역은 엘리베이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지상으로 나가야만 환승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어 더 힘든 경우도 있어서다.
이날 이씨가 우여곡절끝에 국회의사당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56분이었다. 자택에서부터 1시간56분이 걸렸다.
이씨는 "시설이 많이 좋아져서 그나마 2시간 걸린 것"이라며 "대중교통을 엄두도 못내던 시절도 있었다"고 돌이켰다. 그는 "장애인이라고 해도 보호시설에 고립된 채 살아갈 수는 없지 않나"라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상생하며 살아가는 게 나의 꿈"이라고 말했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