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굿 윌 헌팅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2022.03.10 15:43   수정 : 2022.03.10 15:43기사원문
쉬이 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믿는 것 중 한 가지는 한국 사회의 '결과중심주의' 풍조다. 이제는 전통이 되어버린 '빨리빨리' 문화와 대안없는 하나의 결승점을 놓고 무한경쟁을 펼치는 토너먼트 시스템이 결합된 사회 구조의 폐해는 결국 1등을 향해 한발 더 앞서 나가야만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만들었다.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으나 여전히 사회안전망은 허술한 가운데 안전하게 살아가려면 누구보다 답을 빨리 찾아야 한다.

답을 찾는 지난한 과정은 관념상으로만 중요할 뿐 실상에서는 낭비일 뿐이다. 수십년째 사회의 구성원 대다수가 알고 있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직까지 유토피아는 요원하다. 하지만 그렇다해서 생각을 멈추면 그동안의 사회적 노력도 퇴보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 계속해서 경종을 울리는 예술이 필요한 이유다.

지난 9일 개봉한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감독 박동훈)는 그러한 경종을 다시금 울리는 작품이다.
천문학적인 금액이 투입된 스펙터클한 대작도 아니고 어찌보면 뻔한 드라마이지만 경쟁으로 점철된 이 사회를 다시 한 번 돌아보고 꿈꾸게 하는 환상동화다.이야기는 두 사람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학문의 자유를 갈망하며 탈북한 천재 수학자 이학성(최민식 역)은 자신의 신분과 사연을 숨긴 채 상위 1%의 영재들이 모인 자사고의 경비원으로 살아간다. 차갑고 무뚝뚝한 성격에 자연스레 묻어나오는 북한 말씨에 학생들은 그를 '인민군'이라 부르지만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어느 날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 학생 한지우(김동휘 역)가 수학을 가르쳐 달라 조르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정답만을 찾는 세상에서 방황하던 한지우에게 이학성은 "정답보다 중요한 건 답을 찾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깨우쳐 준다. 그 과정에서 이학성 또한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OTT와 메가 블록버스터 영화가 아니면 흥행하기 어려운 요즘 영화판에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 최민식이 3년만에 선택한 작품이 소위 말하는 대작이 아니라 소박한 학원물이라는 사실이 특별하다. 할리우드 영화 '굿 윌 헌팅'을 비롯해 수많은 소설과 영화, 드라마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구조의 이야기이지만 그가 함께함으로 특별해졌다.
세파에 지치고 찌든 마음에 잔잔한 위로와 초심을 생각하게 하는 이상한 수작이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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