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檢 출신·0선… 적폐청산 칼잡이서 8개월 만에 대권

      2022.03.10 18:17   수정 : 2022.03.10 20:39기사원문

#. 2013년 10월 국회 국정감사 현장. 박근혜 정권 초기, 국가정보원의 댓글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았던 윤석열 당선인은 "국정원 수사 초기부터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당황한 당시 여당 의원이 이유를 묻자 윤 당선인은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드린다"고 답했다. 이 발언 이후 윤 당선인은 좌천됐다.



#. 2016년 12월 '박근혜·최순실(최서원) 특별검사팀'을 맡은 박영수 특별검사가 영입 1호 대상자로 윤석열 당선인을 지명, 고심 끝에 합류했다. 삼성 수사를 지휘하며 삼성물산 합병 찬성 압력을 넣은 혐의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3일 만에 구속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일가에 430억원 상당의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기소하는 등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문재인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열렬한 지지와 신임을 받았고, 2019년 검찰총장으로 임명됐다.

#. 2020년 10월, 국회 국감 현장. 검찰총장이 된 윤석열 당선인은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과의 갈등에 대해 "법리적으로 보면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1960년 출생의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됐다. 헌정사상 최조의 검사 출신 대통령의 탄생이다. 10일 자정을 훌쩍 넘긴 오전 3시20분께, 개표를 시작한 지 무려 7시간이 지나서야 선거 승리가 확실시되면서 파란만장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이날 찍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4년 대구지방검찰청에서 초임 검사로 시작해 20여년간 무난하게 검사 인생을 살아오던 인간 윤석열이 대중에게 각인되는 사건은 이 세 가지로 나뉜다. 그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어록과 '박근혜 특검'으로 대중에게 인식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정점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의 극한 대치로 공정과 상식의 아이콘으로 부각되면서다. 문재인정부와는 '애증'의 관계가 됐다.

'권력에 굴하지 않는 공정검사' 이미지를 쌓았고 '반(反)문재인 대표성'을 지닌 인물로 정권교체의 선봉자가 됐다. 특히 총장직 사퇴 전부터 국민의힘에서 러브콜을 받으며 '야권 유력주자'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지난해 3월 검찰총장직을 사퇴하고 같은 해 6월 정계 입문을 선언한다.

지난해 7월 30일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한 윤 당선인은 보수정당 터줏대감인 홍준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전 제주지사 등과 수차례 토론회 등을 통해 경쟁을 벌였다. 제1야당의 최종 후보가 된 후에는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선후보와 지지율 선두 자리를 주고받으며 치열한 대치구도를 형성했다. '국민이 키운 윤석열, 내일을 바꾸는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정치신인을 정권교체의 상징적 인물로 세워준 데 대한 감사함과 국가의 미래를 희망으로 바꾸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윤 당선인은 원내 정당으로선 사상 첫 30대 당대표인 이준석 대표를 만나 아슬아슬한 '케미'를 보였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다양한 정치적 이벤트를 마련한 이 대표의 지원에 힘입어 2030 지지세를 바짝 끌어왔다. 대선을 6일 앞두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극적 단일화를 이뤄내며 공동정부 구성을 약속했다.

윤 당선인은 자타공인 소문난 애처가다.
2012년 다소 늦은 나이인 52세에 띠동갑의 김건희씨와 결혼했다. 사업가 기질이 뛰어난 것으로 전해진 김씨는 전시기획자로, 문화예술 콘텐츠업체 코바나컨텐츠의 대표다.
앤디 워홀, 샤갈, 고흐, 고갱 등 해외 유명 예술가들의 굵직한 국내 전시를 기획했다.

ming@fnnews.com 전민경 김학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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