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지상의 낙원'을 그린 화가 '포 킴'

      2022.05.16 16:44   수정 : 2022.05.16 17:59기사원문
미술의 세계를 오랜 기간 탐구한 노화백의 마지막 캔버스는 동심의 세계로 회귀했다. 지난날의 고통과 외로움, 슬픔도 모두 기억에서 흐려지는 나이가 되면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 같다.

재미화가 포 킴(김보현, 1917~2014)은 그가 말년에 남긴 그림을 통해 세상을 용서한 것 같았다.

일제강점기였던 1917년 태어나 일본에서 그림을 배운 그는 6·25 한국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았던 1955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서 활동을 시작한 제1세대 한인 화가다.

그가 다른 어느 누구보다 빠르게 미국으로 이주하게 된 것은 역사적인 이유가 크다.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전라도 광주 조선대에서 후학을 양성해왔던 그는 해방 전후 여러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이념이 인간의 생사를 가르던 시기, 한쪽에서는 좌익 혐의로 고문을 당했고 이후엔 친미 반동분자로 몰려 죽음의 문턱 앞에 섰다. 지긋지긋하고 끔찍한 고통의 기억이 가득한 한반도에 그의 마음이 더이상 머무를 수 없었다. 이념의 족쇄에서 탈출하기 위해 미국행을 선택했다. 한국에서 사용했던 본명 '김보현'을 버리고 '포 킴'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출발을 했다. 자유를 찾았지만 외로운 디아스포라의 삶이 시작됐다. 한국 미술계에서는 잊혀졌지만 그는 뉴욕에서 쿠사마 야요이, 아그네스 마틴 등 현지의 작가들과 교류하며 작품세계를 펼쳤고 1960년대 뉴욕을 찾은 김환기, 김창열 등의 정착을 도왔다. 그리고 뉴욕에서 60년의 화업을 마치고 눈을 감았다.

그의 예술세계가 다시 한국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들어서다. 예술의전당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대형 개인전을 열며 말년이 되어서야 그의 삶이 재조명됐다. 그의 사후 2017년 환기미술관에서 개인전 이후 5년만에 학고재에서 진행중인 이번 전시에는 그가 노인이 되었을 때 그려낸 작품 23점이 공개됐다.
'지상의 낙원'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알록달록하고 화면을 둥둥 떠다니는 동·식물의 모습들이 유아기적이기도 한데 관람객들의 동심을 자극한다. 젊은 시절 방문했던 여행지의 풍경을 머릿속에서 불러와 캔버스에 재현해냈다.
여유로운 오후의 백일몽 속 간간이 악몽이 서려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는 낙원에 도달했다. 전시는 6월 12일까지.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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