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 사태'에 韓가상자산 통째로 뭇매..."근거없는 비하 말아야"

      2022.05.23 16:22   수정 : 2022.05.23 17:04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테라USD(UST)와 루나(LUNA) 시세 폭락으로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이 충격을 받은 가운데, 이번 사태가 한국 가상자산 산업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수단으로 잘못 활용되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바이낸스 등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에 상장돼 있는 테라와 루나를 '김치코인'이라고 비하하는가 하면, 한국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테라와 루나의 거래를 중단하지 않아 피해자를 양산했다는 근거없는 소문도 돌고 있다.

그러나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한 가상자산 전반을 규제할 수 있는 법률 기준 조차 없이 개별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시세 변동과 네트워크 상황에 맞춰 거래를 조정하는 한국 가상자산 산업의 현실을 감안하면 지나친 비난이라는게 업계의 하소연이다.



특히 해외 다수의 기관투자자들이 마치 루나 사태를 예견했다는 등 사태 직전 막대한 차익을 거두고 발을 뺀 것을 감안하면, 이번 사태를 한국 가상자산 산업에 대한 비난 도구로 쓰면 안된다는게 업계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한국-글로벌 거래소, 동일한 대응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 주 금융위원회는 각 가상자산 거래소들에게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거래 주의를 환기시키라고 지시했다.
이에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19~20일 일제히 가상자산 거래의 위험성을 알리는 공지를 홈페이지에 올렸다.

현재 국내에서는 가상자산 관련 규제의 유일한 법적 근거가 특정금융거래정보의보고및이용등에관한법률(특금법)이다. 이 마저도 자금세탁방지(AML)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수년 전부터 가상자산 거래와 관련한 기본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으며, 실제 국회에 여러 법안이 발의돼 있지만 언제 통과될 지 미지수다. 당국이 손을 놓는 사이 가상자산의 거래와 관련한 △상장 △투자유의 종목 지정 △입출금 중단 조치 △거래지원 종료 등에 대한 기준이 없어 거래소들은 개별적으로 정책을 만들어 놓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번 루나 사태에서도 입출금 조치가 거래소마다 달랐다. 특히 일각에서는 업비트가 조기에 루나에 대한 입출금을 막지 않아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업비트는 "자유로운 거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인위적인 입출금 중단 등 시장 개입을 지양하고 있다"며 "특정 거래소가 입출금을 중단하면, 다른 거래소들과 거래가 단절돼 독자적인 시세가 형성돼 가격이 왜곡되는 현상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인 만들었으나 글로벌 코인"
해외 유수의 언론은 물론 국내 언론들도 테라와 루나를 '김치코인'이라며 이번 사태를 김치코인의 한계라고 지적하고 있다.

김치코인이란 한국 가상자산 거래소에만 상장된 내수용 가상자산을 비하하는데 주로 사용된다. 그러나 테라와 루나는 글로벌 시가총액 10위권 가상자산으로, 한국 내 거래소는 물론 바이낸스 등 글로벌 거래소에도 상장돼 있다. 게다가 판테라캐피탈, 애링턴캐피탈, 코인베이스벤처스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벤처투자사들이 투자에 나선 글로벌 프로젝트다. 한국인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프로젝트를 주도했지만, 글로벌 프로젝트인 것이다.

국내 가상자산 업계 한 전문가는 "테라와 루나가 결국 수많은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안기는 결과를 낳고 있지만, 이를 한국인이 주도한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무리한 논리"라며 "그동안 수없이 실패한 가상자산 프로젝트가 있었지만, 창업자의 국적을 따져 비난하는 일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韓금융당국, 수년간 제도 마련에 미온적
금융당국은 사태 발생 후에야 동향점검에 들어갔다. 미국, 유럽연합(EU), 영국 등 주요국가에서 이미 스테이블코인 제도 마련에 대한 논의가 상당 부분 진행된 것과 상반되는 상황이다.

우리 금융당국은 가상자산은 금융상품이 아니라는 전제를 오랫동안 유지하며, 제도 마련에 미온적 입장을 보였다. 규제를 하려는 순간 금융상품이라는 '지위'가 부여된다는 것에 부담감을 느낀 것이다. 그러는 사이 지난 해 말 기준 국내에서 거래되는 가상자산 규모는 총 55조2000억원에 이르렀다.

특히 일부 해외 기관투자자들은 루나의 기술적 구조에 의심을 품고 일찌감치 자금을 빼내 막대한 수익을 창출했다. 이들 대부분은 초기에 루나의 기술적 구조를 칭송하며 투자한 뒤 일반 개인투자자들을 시장에 이끌었고, 이후에 발을 뺐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 거래소들이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은 결과론적인 것으로, 만약 국내 거래소들이 입출금을 막았을 때 루나가 급격하게 시세를 회복했다면 국내 투자자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피해를 양산했다는 지적이 나왔을 것"이라며 "특히 루나에 대한 투자유의를 당부한 뒤에도 차익실현을 위해 투자한 개인이 많았다는 점에 비춰볼 때 국내 투자자들이 자신의 투자 습관을 되돌아볼 계기가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ronia@fnnews.com 이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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