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예술 1화: AI가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면?
2022.08.06 06:00
수정 : 2022.08.06 06:00기사원문
인공지능(AI)이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면 어떨까. 수년 전 이 질문을 주제로 소설을 하나 쓰려고 했었다. 단편소설 절반쯤 되는 분량(원고지 50매)을 썼을 무렵, 무심코 열어 본 이메일 때문에 하필 노트북이 랜섬웨어에 감염됐다. 원고는 모두 사라졌고, 노트북은 폐기해야만 했다.
소설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미술계의 '얼굴 없는 화가' 뱅크시처럼 어느날 소설계에 얼굴 없는 작가가 혜성처럼 등장한다. 그 작가는 2054년부터 매년 6월 7일 00시에 온라인에 한 편의 장편 소설을 발표한다. 자동 번역시스템으로 인해 그가 발표하는 모든 책은 발표 당일 전세계의 독자들에게 실시간으로 판매된다. 얼굴 없는 작가의 장편 소설은 매년 전세계 대중과 평단의 엄청난 호평을 받으며 20년 가까이 부동의 베스트 셀러에 오른다.
그의 정체를 둘러싸고 다양한 추측들이 나오고, 마침내 20년간 독보적인 베스트 셀러를 써낸 작가의 정체가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문학계는 지구상에 있는 어떤 인간보다 더 나은 작품을 20년 동안 꾸준히 써낸 이 인공지능의 예술성을 인정할 것인가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인다. 콧대 높은 스웨덴 한림원은 2082년 마침내 인공지능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인정하며 예술계에 새로운 경쟁자이자 동업자가 출연했음을 선언한다.
소설의 줄거리를 단순하게 풀어서 별로 재미가 없게 느껴지지만 인간의 지능을 초월한 초인공지능의 출현은 재미있는 화두라고 생각했다. 당시 바둑계에서는 이미 인간은 절대로 AI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여 졌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세기의 결전이 열렸던 2016년 3월까지만 해도 인류는 인공지능이 바둑에서 인간을 이기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바둑의 경우의 수는 우주에 있는 모든 원자의 수를 합친 것보다도 많았기 때문이다. 다실 말해, 전 우주에 있는 모든 철과 물질을 사용해 지구보다 큰 컴퓨터를 만들어도 바둑의 경우의 수를 모두 계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인류는 기계와 달리 오랜 훈련과 연습을 통해 인간만이 가진 '인사이트', 지능과는 다른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알파고는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하지 않고 인간의 뇌를 흉내낸 학습을 통해 바둑에서 인류를 초월했다. 알파고는 입력된 바둑의 기보를 분석하고 스스로 가상의 대국을 진행하며 성장했다. 인류 최고의 바둑기사 이세돌을 이긴 AI는 '알파고 리(LEE)'라고 불렸다.
이후 구글은 '알파고 제로'를 새로 만든다. 알파고 제로는 어떤 바둑의 기보도 입력하지 않고 바둑의 규칙만을 입력받고 스스로 학습했다. 알파고 제로는 72시간 독학을 한 후 ‘알파고 리’와 대국한 결과 100전 100승을 기록했다.
인간은 바둑에 있어사 만큼은 인공지능에 완패했다. 하지만 아직 미술, 소설, 영화와 같은 예술 장르에서는 AI가 절대 인간을 따라 잡을 수 없다고 믿고 있다.
서두에 언급한 소설을 통해 당시 필자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고 믿어 온 특별한 예술적 감성도 어쩌면 인간보다 훨씬 더 복잡한 지능을 갖춘 존재가 볼 땐 단순한 알고리즘에 그치지 않을지도 모른다"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만약 정말로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인간이 느끼기에 예술적인 소설을 써내는 날이 온다면 인간 소설가는 인공지능보다 못한 소설을 계속 써야할 것인가 아니면 인공지능은 할 수 없는 다른 일을 찾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물론, 바둑의 경우 인간은 인공지능을 활용하며 인간의 바둑을 조금씩 성장시키고 있긴 하다.
2018년 1월 카이스트 서울캠퍼스에서 '인공지능과 창의성'을 주제로 한 학술 토론회에 청중으로 참여했던 적이 있다. 이날 강연에 참여했던 한 교수는 알고리즘이 만들어 낸 작품의 예술성이 높더라도 그것은 인간의 것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알고리즘이 생산한 예술적 결과물은 창작자의 의도가 없고, 사회와의 맥락이 없으므로 예술을 향유하는 사람들에게 예술적 느낌을 주더라도 예술이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소변기를 미술관에 전시하고 '샘'이라고 이름 붙인 마르셀 뒤샹이 현대 미술계에 획을 그은 것은 그의 창작적 의도와, 사회적인 컨텍스트 하에서 예술성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무한대에 가까운 시간 동안 원숭이가 랜덤하게 타자기를 두드려서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과 완전히 동일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도 그것을 예술이라 부리기는 힘들 것이다.
예를 들어 '넥스트 렘브란트'라는 인공지능은 딥러닝을 통해 렘브란트의 모든 작품을 학습했다. 이 AI에게 렘브란트 생전에는 없던 로켓트의 사진을 찍어 출력하면 렘브란트가 그린 것과 완벽하게 흡사한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그 결과물은 렘브란트가 물감을 손으로 묻혀 번지게 하는 효과, 캔버스 위에 뭉개진 그의 지문까지도 재현해 낼 정도로 정교하다. 실제 렘브란트의 작품과 AI의 작품을 나란히 놓고 구별하라고 하면 대부분의 일반인은 제대로 구별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넥스트 렘브란트'에 예술성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직까지 AI에게 창작의 의도와 사회적 컨텍스트를 이해하는 인간적인 지능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 강연에서 다른 견해를 냈던 교수도 있었다.
그는 "인간이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는 예술적 감성, 혹은 자유의지와 같은 특성들이 과연 정말로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 맞을까? 인간보다 고차원의 존재가 봤을 때 사실 인간이 믿고 있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어떤 특성들은 단순히 조금 더 복잡하고 정교한 알고리즘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라는 취지로 말했다.
2004년 개봉한 SF 영화 '아이로봇'의 한 장면에서 주인공이 인간형 로봇에게 이렇게 묻는 장면이 나온다.
윌 스미스는 AI 로봇에게 "너희들은 하얀 캔버스위에 멋진 예술 작품을 그릴 수도 없고, 마음을 움직이는 교향곡도 작곡하지 못하잖아"라고 말한다.
그러자 로봇이 단 두 글자의 영단어로 대답한다.
"너는?(can you?)"
윌 스미스는 로봇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일반화해 질문을 했고 로봇은 이미 인간의 영역에서 개별적 인격으로 답을 한 것이다. 인류 중에는 피카소도 있고 모차르트도 있지만 너(윌스미스)는 그렇지 못하다. 나도 그렇지 못하다. 너는 어떤데? 라고 질문한 것이다.
■'이환주의 아트살롱'은 회화, 조각, 음악, 공연, 영화 등 다양한 예술 영역의 전시, 시사회 등의 후기와 리뷰, 각종 문화 관련 칼럼을 쓰는 코너입니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