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 "4년 걸쳐 각본 수정… 그제서야 우성씨도 캐스팅 수락"
2022.08.08 18:04
수정 : 2022.08.08 18:45기사원문
8일 오전 실시간 예매율 1위에 오른 '헌트'는 제작비 233억원이 투입된 첩보액션물로 '외계+인'(330억원), '한산:용의 출현'(280억원), '비상선언'(300억원) 못지않은 대작영화다. 앞서 칸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된 이 작품에 대해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첩보 장르에 필요한 스릴과 박력이 1980년대 한국 상황 속에 생생히 살아있다"고 평했다.
'헌트'는 이정재가 각본·연출하고 '절친' 정우성과 나란히 주연한 작품이다. 그는 개봉을 앞두고 만나 "연기자 출신의 입봉 감독이 이렇게 큰 프로젝트를 맡기란 쉽지 않다"며 "(투자자·제작진의) 위험부담을 낮추기 위해 4년에 걸쳐 각본을 수정하며 완성도를 끌어 올렸고, 배우 정우성도 친분이 아니라 그가 납득할만한 시나리오로 캐스팅했다"고 말했다.
이정재가 '헌트'의 원작 시나리오 '남산'의 판권을 구입한 것은 지난 2016년. 애초 원톱 액션영화였으나 격랑의 탄핵정국을 지나면서 메시지 짙은 투톱 첩보액션물로 방향이 달라졌다. 이정재는 주제와 이야기를 고칠 감독을 찾던 중 자신의 생각을 잘 전달하기 위해 짬짬이 각본을 썼다.
이정재는 "원래 연출에는 큰 뜻이 없었는데 판권 구매 후 시나리오를 잘 만들어줄 감독을 못 찾았다"고 말했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배우로 쌓은 명성에 금이 갈수도 있는 이 프로젝트를 끝까지 놓지 않은 이유는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주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 어릴 적을 빼면, 우리사회가 이렇게 양극단으로 치달아 분쟁한 적이 있나 싶었다"며 "왜 우리는 화합하지 못하나, 우리의 가치관·신념은 누구에 의해 생성됐나, 그런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영화의 주제를 잘 드러내줄 두 주인공을 설정했고, 시대적 배경 역시 이념적으로 대립하던 1980년대로 잡았다"고 부연했다.
'헌트'는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을 배경으로 허구의 이야기를 펼치나 스파이명 '동림'에서 연상되는 동백림 북한 공작단 사건부터 북한장교 이웅평 월남사건, 5·18광주화민주화운동, 아웅산 테러 사건 등 실제 사건을 적극적으로 차용해 현실감을 높인다.
영화는 1983년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에서 시작한다. 국가안전기획부 13년차 베테랑인 해외팀 차장 박평호(이정재 분)와 군 출신인 국내팀 차장 김정도(정우성)는 서로에 대한 견제가 만만찮다. 와중에 대북공작이 번번이 실패하자 새로 취임한 안기부장은 조직 내부 스파이 '동림'을 색출하라고 지시한다.
해외팀과 국내팀은 상대를 용의선상에 올려두고 조사에 박차를 가한다. 서로가 서로의 사냥개이자 사냥감이 된 가운데 둘은 '대한민국 1호 암살 작전'이라는 거대한 사건과 직면하게 된다.
'헌트'는 두 인물의 팽팽한 연기 대결이 관전 포인트다. 특히 '태양은 없다'(1988)이후 23년 만에 만난 이정재와 정우성, 두 1990년대 청춘스타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편의 영화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이정재는 "정우성과 나, 둘이 함께 출연한 것에 대한 관객들의 반가움이 큰 것 같다"며 반색했다. 이정재는 한 예능에서 "우성 씨를 캐스팅하기 위해 멋있는 신은 다 몰아줬다"라고 농을 했다. 정우성은 이에 "4년 동안 네 번 거절하면 그런 결과물이 나온다"라며 화답했다. 이어 정우성은 "세 번째 캐스팅 제의 때 (이정재가) 감독 도전할 결심을 했었는데 이건 또 다른 차원의 도전이지 않냐. 이왕 감독 도전할 마음을 먹었으면 온전히 그 무게를 견뎠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거절을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재는 정우성의 거절에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았냐는 물음에 "우리는 프로다"라고 답했다. "우성씨의 조언대로 연출도 처음이라 쉽지 않은데 둘이 나오는 영화까지 성공적으로 해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시나리오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더불어 사람들은 우리가 오랜 친구니까 서로의 영화에 흔쾌히 출연할 것이라고 생각하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부연했다.
"나 어릴 적만해도 연기자가 무슨 연출이야, 연출자가 무슨 제작이냐고 했다. 하지만 이젠 멀티시대가 됐다. 내가 잘나서, 잘할 수 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 당신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용기를 내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서로 격려하는 문화가 영화계 내에서 시작돼 우리사회에 확산되길 바란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으로 국제적 전성기를 구가 중인 그는 지난해부터 각종 수상 축하의 문자를 받으면 이렇게 답한다. "고마워, 이젠 당신 차례야."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