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정쟁화에 얼룩진 분향소

      2023.02.07 16:21   수정 : 2023.02.07 16:21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이태원 참사 소식을 처음 들었던 밤은 수습기자 생활을 막 마친 뒤였다. 가짜뉴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보'가 아니라는 것을 무의식중에 알았다.

자리를 박차고 무작정 근처 병원을 찾아갔다.

이제 막 희생자들이 실려 오고 있었다.
감히 오열하는 유가족들에게 말을 걸기조차 어려웠다. 멀찍이 떨어져 있던 어느 50대 남성에게 조심스레 말문을 뗐다. 혹시 어떤 상황이고, 관계자시면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냐고. 기자의 질문을 들은 남성은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그는 "이게 내 딸이에요"라며 피 흘리고 죽은 희생자 사진을 보여줬다. 아직도 그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

참사 100일이 지났다. 유가족들은 물론 참사를 겪은 시민들의 진통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갈등은 커지고 감정의 골은 깊어지는 모양새다. 지난 6일 오후 유가족들은 서울 시청으로 진입하려다 경찰과 충돌을 빚었다. 당시 기자는 시청 안 로비에 있었다. 그들은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정문으로 달려왔다. 병원에서 보았던 아버지의 표정과 그들의 표정이 겹쳐 보였다.

누가 이들을 이토록 분노하게 했을까. 기자는 지난해 11월 참사를 만든 원인이 무엇인지 중점을 두고 취재했다. 세월호라는 거대한 상처를 겪고도 우리 사회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목격했다.

참사가 정쟁화될수록 추모의 본질은 흐려지는 모습 또한 같다. 시스템의 부재에 책임이 있는 이들은 '직접적 책임'이 아니라는 이유로 선뜻 나서 유가족들을 위로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정치권은 서로 '네 탓 공방'을 벌이며 추모는 뒷전으로 미루고 재발방지대책 논의가 설 자리조차 마련하지 않았다.

분향소는 분노와 혐오가 표출되는 상징적 공간이 돼버렸다. 녹사평 분향소에서 일부 보수단체는 유가족들과 조문객들을 도발하고 욕하며 후원을 유도했다. 서울광장 분향소 역시 똑같았다. 유가족들이 시청 정문 앞에서 처절한 몸싸움을 하고 있던 그 순간, 일부 진보 성향 지지자들은 뒤편에서 경찰과 공무원, 오세훈 서울시장에 막말을 내뱉고 낄낄대며 웃고 있었다.

이 모습에 넌덜머리가 나는 것은 시민들이다. 어제 서울 광장에서 만난 한 시민은 기자에게 "저렇게 유튜브로 생중계하고 있는데, 어떻게 조문해요"라고 말했다.
실제 광장 주변에는 기자들과 정치 단체 관련자들 100여명만 앉아있었다.

wongood@fnnews.com 주원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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