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이 지나도 변치않는 메시지…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존재"

      2023.04.10 18:09   수정 : 2023.04.10 21:48기사원문
'오징어 게임' '수리남'에 잇따라 출연해 '넷플릭스 공무원'으로 통했던 박해수가 5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왔다. '지옥'에서 존재감을 발휘했던 원진아는 데뷔 후 처음으로 무대에 섰다. 괴테의 고전 '파우스트'를 통해서다.

원작의 1부만 담은 '파우스트'에서 박해수는 백발의 현자 파우스트에게 인생의 쾌락을 알려주는 대가로 그의 영혼을 요구하는 악마 메피스토로 분했다. 원진아는 마녀의 영약을 마시고 젊어진 파우스트와 사랑에 빠지는 순수한 처녀 그레첸을 연기했다.


■ 박해수 "메피스토 유혹의 말들 너무 익숙해 기분 묘했죠"

'코리올라누스', '햄릿' 등 고전에 대한 감각적인 해석으로 주목받은 연출가 양정웅은 이번에도 현대적인 무대미술과 연출로 시선을 모았다. 거대한 성모 마리아상과 동굴 등 약 170개의 무대 소품과 약 110벌이 넘는 의상은 뮤지컬에 버금가는 스케일을 자랑했고, 거대한 LED 배경을 이용한 총 26번의 영상 전환은 마녀와 파티를 벌이는 초현실적인 공간과 유럽의 뒷골목으로 관객을 초대하며 몰입감을 선사했다. 뭇 남성이 몰래 숨어든 그레첸의 방은 무대 뒤편 공간에서 영상을 통해 라이브로 송출돼 새로운 체험을 안겼다.

200년 된 고전은 우리사회가 얼마나 메피스토의 유혹에 가까워졌고, 파우스트의 고뇌와 그레첸의 양심과 멀어졌는지를 돌아보게 했다. 양정웅 연출은 "'파우스트'는 시대와 공간, 문화와 언어를 뛰어넘어 인간 본질을 다루는 작품"이라며 "메피스토의 대사 중 많은 부분이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우리의 내면과 닮아 놀랍고 섬뜩했다"고 말했다.

박해수도 "대본을 읽고 기분이 묘했다"고 공감했다. 그는 "메피스토가 하는 유혹의 말들은 우리 주변서 쉽게 들을 수 있다"며 "선과 악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세상에서 고전에서 그리는 선과 악의 시초가 궁금해졌다"고 말했다.

박해수는 이번 작품에서 마치 카리스마 넘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같이 손과 혀를 현란하게 움직이며 관객을 유혹한다. 그가 연기하는 메피스토는 쉽고 재미있고 매혹적이다. 파우스트와 처음 만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박해수는 "원래 대본에서는 학생인 양 위장하고 파우스트에 접근했다"며 "하지만 자신의 정체를 당당히 밝히고 거래를 제안하는 지금과 같이 바꿨다"고 말했다. "마치 매력적인 부자처럼 당당하게 활개치는 이 시대의 '악'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부연했다.

기괴한 웃음과 현란한 몸동작에 대해서는 "무대에서 신체 연기는 특히 중요하다"며 "이번 역할을 위해 맹수들이 먹잇감 주위를 배회하는 모습이나 190cm 넘는 청바지 차림의 유명 지휘자의 동작을 참조했다"고 답했다.

■원진아 "죄를 인정한 그레첸에 주목"

그레첸은 파우스트와 운명적 사랑에 빠지나 그로인해 가족과 자신 역시 위험에 빠뜨린다. 의도치 않게 죄를 짓는 그레첸은 시대의 희생양이기도 한 비운의 인물이다. 원진아는 그레첸에 대해 "솔직하고 순수한 인물"이라며 "파우스트에게 '제 생각 좀 해주실래요?'라고 말하는 대사를 좋아한다"고 했다. "가족의 건강한 사랑을 못받던 그레첸이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계기가 되는 대사로 자신에게 닥칠 절망의 끝을 모른 채 감정에 솔직한 그 순수함이 매우 좋았다"고 부연했다. 무엇보다 오늘날 우리사회를 돌아보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그레첸과 같은 인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그레첸이 죄를 짓고도 구원을 받은 것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반성했기 때문"이라며 "그레첸이 '사형장까지 왔네요'라고 하는데, 죗값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기에 무섭지 않더라"라고 부연했다.

생애 첫 연극무대에 오른 소감을 묻자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두려움이 최고조에 달랐다"고 답했다. 물론 도전의 대가는 달다. 그는 "어느 순간 연기가 늘지 않는 것 같아 고민이 컸다"며 "출연 제안을 받고 작품에 끼칠 민폐보다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앞섰다"고 돌이기며 "관객들의 박수도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무대서 객석이 너무 잘 보여서 깜짝 놀랐다. 내 눈에 안보이던 시청자는 때로 두려움의 대상이었는데 우리의 노력에 대해 따뜻한 박수를 쳐줘서 오히려 시청자와 관객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

두 배우는 극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로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존재다"를 꼽았다. 원진아는 "살면서 한번쯤은 흔들리는 순간이 오지만 그 순간 또한 성장을 하고 이는 꼭 겪어야 하는 과정 중에 하나"라고 말했다.
박해수는 "(신의) 큰 사랑이 느껴지는 대사"라고 말했다. 29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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