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시대, 꼬리가 몸통 흔드는 '공급망 신(新)법칙'

      2023.04.15 09:38   수정 : 2023.04.16 13:45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100년만에 찾아온 균(菌)이 만든 3가지 대변혁

1918년 5000만명의 인구를 사망에 이르게 했던 스페인 독감이후 100년만에 다시 나타난 코로나 19 균(菌)은 총, 칼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다. 2020년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 19로 230개국에서 681만여명이 사망했다. 스페인독감에 비해 사망자는 적었지만 공포감은 극도에 달해 진정 천하대란(天下大亂)이었다.

전쟁에서는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구분이 되지만 코로나시대에는 누가 나를 죽일 줄 모르고 내가 누구를 죽일 줄 모르는 피아의 구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100년 만의 인류최대의 재앙 코로나는 인류에 엄청난 고통을 주었지만 인류에게 새로운 거대한 변화와 기회를 주었다.
인류를 4차산업혁명의 문턱으로 순식간에 끌어당겼고 세계의 경제모델에 파격의 변화를 가져왔고 그간 미국중심 자본주의가 만든 스마일커브의 세계를 통째로 뒤엎는 새로운 법칙을 탄생시켰다.

첫째, 코로나19는 그간의 인류의 관념과 행동 법칙을 모조리 뒤엎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것이 그간의 전쟁의 법칙이었지만 코로나시대에는 "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죽었다". 그간 세계는 자본주의 경제(Capital Economy)가 최고의 지선(至善)이었지만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거대 핀테크 플래폼 기업체들이 등장해 공유경제(Sharing Economy)가 대세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코로나는 이를 싹 무시하고 언택경제(Untact Economy), 나홀로 경제(Alone Economy)를 만들어 냈다.

시장경제시대에는 사과 10개를 팔려고 1개를 공짜로 맛보기로 주는 모델이었다면 언택경제(Untact Economy), 나홀로 경제(Alone Economy)시대에는 사과 10개를 모두 공짜로 주는 공짜경제시대의 도래를 만들었다. 세상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생명으로 삼는 '공자(孔子)의 시대'가 아니라 모든 것이 무료인 '공짜(free economy)의 시대'를 만들었다. 사과 10개(atom)를 공짜로 주지만 대신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사과를 먹었는 지의 정보(bit)를 달라는 것이다.

고객의 공짜 정보(bit)를 가지고 무한대의 광고모델, 프리미엄 모델로 떼돈을 번 것이 플랫폼 기업이었고 폭주하는 데이터 량에 서버는 터져나갔고 코로나 19가 터졌지만 반도체업체는 유례없는 초호황을 누렸다.

둘째, 코로나 19는 4차산업혁명을 단박에 이끌어냈다. 2016년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4차산업혁명을 얘기한 이후 전세계의 모든 지도자, 경영자들이 4차산업혁명을 노래 불렀고 응답이 그저 그랬지만 코로나19는 3년만에 온 인류를 삽시간에 4차산업혁명으로 몰아넣었다. 사회적 동물 인류에게 '컨택(Contact)이면 죽고 언택(Untact)이면 살아남는 신법칙'이 등장하는 바람에 인류생활의 모든 것을 온라인으로 전환시켰고 거대한 빅데이타를 만들어냈다.

셋째, 반도체 수요폭발을 가져왔다. 사람, 자동차, 전통적인 상품의 유통경로가 모두 제한되는 상황에서 온라인을 통해 사람과의 접촉없이 소비생활, 문화생활, 경제생활을 하는 기묘한 경제메카니즘인 거대한 '나홀로 경제(Alone Econmy)'는 반도체의 수요폭발을 가져왔다. 모든 애널리스트와 반도체전문가들이 그간 40여년간 지겹도록 겪어온 4년주기의 실리콘사이클이 없어지고 슈퍼사이클에 들어섰다고 오판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아이러니지만 코로나19가 안정되자 분노의 소비와 오프라인이 다시 활성화되자 반도체는 생산, 유통, 소비 단계의 모든 분야에서 지독한 공급과잉에 봉착했고 돈을 주체를 못했던 반도체회사들은 바로 영업적자를 걱정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자료: WSTS자료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꼬리가 몸통 흔드는 “공급망 신(新)법칙”

그간 미국의 첨단기술이 세상을 지배했지만 코로나19는 기술이 모든 것을 장악했던 시대에서 '기술은 공장을 못이기고 공장은 원자재를 못 이긴다'는 '공급망 신(新)법칙'을 만들어 냈다. 코로나로 인한 생산차질, 공급중단이 미국을 선두로 공급망(SCM)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각성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간 단 한 대의 애플폰도 미국에서 만들지 않고 중국에서 주문자생산방식(OEM)으로 세계 최고의 수익률을 자랑하던 'Apple Model'이 근본적으로 흔들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애플의 중국 정저우 OEM공장의 직원이탈이 바로 애플의 매출감소를 초래했다. 애플은 부랴부랴 중국 OEM공장을 인도로 옮기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공장은 이전할 수 있을 지 몰라도 20여년간 형성된 세계 최강 중국의 핸드폰산업의 생태계는 1~2년만에 인도로 옮겨 갈수 없다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반도체산업에서도 기술->생산->장비->원료가 전통의 순위였다면 지금은 원료->장비->생산->기술로 완전히 순서가 뒤집혔다. 미국이 대만과 한국에 반도체 생산을 저자세로 보조금 주고 세금 깎아주면서 유치하고, 유럽의 작은 나라 네덜란드의 ASML에 세계 정상의 반도체회사의 회장들이 을의 입장으로 고개를 숙인다. 반도체 소부장전쟁에서 죽었던 일본이 소재라는 작은 꼬리 하나로 한국의 반도체회사의 머리를 흔들었다

여기에 미중의 패권전쟁이 가세하면서 미국이 공급망에 국가안보를 도입하고 중국봉쇄의 수단으로 공급망 동맹을 강조하면서 반도체, 배터리, 의약품, 희토류에서 공급망(SCM)전쟁이 벌어졌다. 선진국은 연구·개발(R/D)과 제품기획만 하고 생산은 중국과 아시아에 맡기고 선진국은 판매와 유통만을 장악해 떼돈을 버는, 월가가 최애(最愛)하는 자기자본이익률(ROE) 극대화 전략인 고정비 없는 '스마일 커브 경영'모델이 뿌리 채 흔들리고 있다.

[미중의 GVC 변화]

자료: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세계의 명차들이 반도체를 못 구해 소비자의 차량 구매 대기줄이 6개월은 기본이고 1년도 걸리는 일도 벌어졌다. 러시아의 우크라 전쟁을 계기로 선진국과 중진국의 봉(鳳)이었던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의 독재정권이 장악한 원자재 공급국들이 원자재 무기화와 국유화를 선언하면서 국제원자재의 공급망에 문제가 생겼고 가격이 고공행진 하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기술외교, 중국은 자원외교?

코로나이후 미중의 경제전쟁은 극명하게 차별화되고 있다. 첨단기술은 모두 미국에서 태어나 일본, 한국, 대만을 거쳐 중국에 도달했다. 미국은 기술의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기술로 중국을 봉쇄하는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를 시작으로 넘쳐나는 수출로 벌어들인 외환보유고를 자원확보에 쏟았다. 자원부국은 대부분 독재국가 개발도상국가이기 때문에 중국식 돈 퍼 주기와 자원개발을 맞바꾸는 전략이 궁합이 잘 맞았다. 배터리의 핵심 소재는 지금 중국이 전세계시장의 60~90%를 장악했다

미국은 QUAD(미국, 일본, 인도, 호주의 4자간 안보협의체), chip4(미국 주도의 한국, 일본, 대만 등 반도체 협력 체제), IPEF(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확대를 억제하기 위해 미국이 주도하는 다자 경제협력체)등의 동맹을 통해 중국의 공급망을 차단하려고 하지만 어느 하나도 제대로 완성된 것이 없는 미완의 프로젝트다. 중국은 코로나 3년이 끝나자 시진핑의 자원외교를 가속화하고 있다. 시진핑의 국민방문은 2022년9월 카자흐스탄, 12월 사우디, 2023년3월 러시아를 방문했고 4월에는 브라질 대통령이 방중했다. 모두 자원 부국들이다.

<바이든의 4대 핵심품목 지역별 공급비중>

자료: 백악관,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지금 세계는 주먹이 부르면 마지못해 참석하지만 돈이 부르면 득달같이 달려가는 판이다. 2021년 자동차용 반도체 공급부족사태가 나자 미 상무부가 반도체회사들을 회의에 소집하자 모두들 떨떠름하게 참석했다. 하지만 2023년 중국 국무원이 전세계 100대기업 CEO들을 고위발전포럼에 부르자 미국의 애플, 인텔, 퀄컴사 회장들이 모두 달려갔고 세계1위 반도체회사인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도 참석했다.

더 묘한 것은 테슬라의 엘런 머스크다. 미국이 조 바이든 대통령부터 나서 첨단기술의 중국진출 금지와 중국에서 공장빼는 탈중국을 하라는데 머스크는 들은 척도 않고 상해전기차 공장을 증설했고 이번에 전기저장장치 공장을 중국에 건설할 계획이다. 미국은 미국기업의 중국 진출은 손 못 대고 만만한 한국과 대만기업의 중국진출만 잡고 있다.

미국의 나토(NATO)동맹 유럽은 한술 더 뜬다. 2022년 6월 나토는 중국을 '구조적 도전'(systemic challenge)'로 정의하고 중국을 봉쇄해야 한다고 해 놓고 말과 행동이 완전 딴판이다. 2022년 11월 독일 슐츠총리가 시진핑 3기집권 첫 손님으로 중국을 방문해 경협을 논의했고, 2023년 3월 스페인총리가 4월에는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과 유럽연합(EU)집행위원장이 같이 중국을 방문해 경제협력을 논의했다 마크롱의 방문에 중국은 에어버스 160대를 사주는 선물을 바로 안겨주었다. 상반기내에 이탈리아 멜로니 총리도 방중할 계획이다.

미국은 기술이지만 중국은 지금 시장과 자원이다.

전세계 반도체회사 회장들, 유럽의 4대 강국 그리고 엘런 머스크가 중국으로 달려가는 이유는 단 하나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경기하강에 시장과 돈이 있는 중국을 곁눈질하는 것이다.

중국은 지금 핸드폰과 전기자동차의 세계 최대 생산국이자 소비국이다. 배터리는 모든 전자기기의 심장이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가지고 난리치지만 미국의 전기차시장은 2022년 99만대로 중국의 689만대의 14%에 불과하고 스마트폰 사용자는 중국의 27%에 불과하다. 리튬이온 배터리시장에서 미국은 중국의 8%수준에 그치고 있다.

기술은 시장을 이기기 어렵다. 경제는 감정으로 접근하면 실수한다. 한국은 사드와 코로나에 따른 반중정서에다 대중국 수출감소와 대중적자로 중국을 이미 끝난 나라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한국제품의 경쟁력 약화로 인한 수출감소와 중국 시장의 잠재력은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자료: 각 기관자료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대중적자 확대, 대미흑자 확대는 반도체와 전기차배터리가 주범이다. 반도체는 수량이 아니라 가격이 하락해서 대중 흑자가 줄어든 것이고 배터리 원자재의 80%이상을 중국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대미전기차와 배터리수출이 늘어날수록 대중 배터리소재 적자는 커지는 형국이다.

기술이 아니라 자원이 갑질하는 '공급망의 신법칙'이 적용되는 시대가 왔다. 희토류와 배터리소재의 대중국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 중국을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미국 한편만 보는 기술외교가 아닌 미중 양편을 모두 보는 자원외교도 하지 않으면 안된다.

문제는 중국이 미국의 반도체 봉쇄에 희토류의 무기화를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미 중국과 요소수 사태에서 경험했지만 중국 내부수요를 핑계로 배터리 원자재 수출을 통제한다면 한국의 배터리업계는 바로 악 소리가 날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전병서 필자 주요 이력

​△푸단대 박사/칭화대 석사 △대우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반도체IT Analyst 17년 △경희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

haeneni@fnnews.com 정인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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