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한지 보존해야"..현직공무원 한지서적 출간 '눈길'
2023.05.23 05:00
수정 : 2023.05.23 05:00기사원문
현직 공무원이 7년간 발로 뛰어 연구한 박사논문을 토대로 소멸위기에 놓인 전통 한지와 관련된 전문서적을 발간해 눈길을 끌고 있다.
박후근 경상북도인재개발원 원장은 23일 '세계 최고의 종이, 한지: 정책이 필요하다'(선출판사)라는 책자를 발간하고 전통 방식으로 생산하는 우리나라 한지 보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박 원장은 이 책을 통해 한지에 관한 개별법이 없는 상황에서 정의마저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점 등 문제점을 지적했다. 또한 전통한지의 ‘품질표준화’와 ‘공공부문 사용의무화’등 전통한지 진흥 정책대안을 제시했다.
박 원장은 “한지의 정의를 새로 정립하고, 정책을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고려지·조선지 수준 이상으로 품질을 높여 명실공히 한지가 세계 최고의 종이로 자리매김 했으면 좋겠다”며 책을 쓰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과학적인 데이터 분석 결과, 현재 제조한 최고 품질의 한지는 200년 이상 보존된 정조 친필편지에 사용된 한지 보다 품질이 현저히 떨어진다.
하지만 현재 실생활에서 전통한지를 찾아보기 어렵다. 사실상 전통한지는 역사와 박물관에서만 존재한다. 산림청 등 관련부처에서는 한지의 재료인 닥나무의 섬유 특성에 관한 의미 있는 연구도 아직 없다. 국내 지류문화재 수리용 한지의 품질규정도 없다.
박 원장은 전통한지 보존을 위한 정책적 대안도 서적에서 제시했다. 그는 "한지의 주원료를 ‘국내산 닥’으로 하고, 제조기술은 ‘손으로 만든 것’으로 한정해야 한다"면서 "전통한지 품질의 표준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전했다.
박 원장은 이어 공공부문에서의 전통한지 사용 의무화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지 품질개선을 위해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기록용·서화용으로 한지 사용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국고보조금 집행액 중 일정 부분(10% 이상) 만이라도 전통한지 소비 진작에 사용돼야 한다. 전통한지 진흥을 위해 부처별 노력과 범정부적인 협업을 촉구했다.
충남대 국가정책대학원 배관표 교수는 “저자가 소명의식을 갖고 이 한 권의 책에 한지 정책의 모든 것을 담은 만큼, 한지를 살리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전통한지의 역사와 제조기술, 닥나무 연구 등 40년 이상 한지를 연구한 김호석 화백도 박 원장의 해법에 동조했다.
김 화백은 “박 원장은 현장에서 답을 구했고 문화 발전을 저해하는 문제점을 정확하게 파악했으며 해법 또한 매우 구체적”이라면서 “연구 성과가 현실화되어 한국문화가 진일보하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한편, 전통 한지업체의 폐업은 지속돼 업체 수가 지난 1996년 64개에서 2021년 19개로 감소했다. 또 전주시·의령군·안동시에서는 전통한지와 지역 한지를 다르게 정의해 '수입산 닥 사용’ 및 ‘기계장치를 이용해 만든 종이도, 한지에 포함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지난 2021년 정부의 한지 실태조사에서는 국내산 닥이 아닌 수입산 닥, 목재펄프를 주원료로 하여 만든 것까지도 한지에 포함했다.
KS(한국산업규격)의 한지품질규격은 부실한데다 2006년 이후 등록업체가 한 군데도 없다. 창덕궁을 비롯한 4대궁궐 창호지에 한지를 일부만 사용했다. 공공부문의 한지 사용은 행정안전부의 정부 포상 증서를 비롯한 일부 외에는 찾기 어렵다.
2017년 1월부터 2021년 6월까지 총 341억 원의 국고보조금, 지방비가 한지에 집행됐지만 전국 19개 한지 업체에 지원된 금액은 7억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rainman@fnnews.com 김경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