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정년연장 준비만 10년 이상...사회적대화 서둘러야
2023.11.21 16:01
수정 : 2023.11.21 16:01기사원문
【도쿄(일본)=김현철 기자】 일본은 60세, 65세 정년연장을 위해 노력 의무화 등 각각 10년 이상 기업 부담을 덜 만한 작업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노사정이 큰 불협화음 없이 정년연장을 연착륙시켰다.
하지만 한국은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이같은 과정을 진행하려 하고 있다.
특히 우리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공적연금 수금이 늦춰지고 있는 만큼 이를 정년연장과 연결해야한다는 지적이다.
미뤄지는 국민연금 수급...정년연장이 답?
슈쿠리 야키히로 일본 후생노동성 직업안정국 고령자고용대책과장은 지난 15일 고용노동부 취재기자단과 만나 "일본이 65세까지 고용확보 조치를 시행하게 된 것은 공적 연금인 후생연금 수령 연령이 계속 높아져서 소득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의무화 했다"며 "공적 연금의 수령 연령이 65세로 늦춰지는 건 2025년부터"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60세까지 법적 정년이 보장된다. 문제는 정년 이후의 계속고용·재고용 제도가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정년퇴직 이후 누구나 한번씩 해본다는 치킨집 등 자영업에 뛰어들거나 단기 공공일자리 등으로 떠밀린다.
반면 일본은 65세까지 계속고용, 정년 연장, 정년 폐지 등의 형태로 고용이 보장된다. 2021년 4월부터는 70세까지 취업 기회 확보가 '노력 의무화'됐다. 한번에 정년 연장을 의무화하면 기업의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노력 의무화라는 형태로 법적 권고를 한 것이다.
이같은 노력으로 일본의 2005년 60~64세 취업률은 52%에서 지난해 73%까지 올랐다.
마침 우리의 연금 수급개시연령은 현재 63세에서 5년 뒤인 2028년 64세, 2033년 65세로 높아진다.
이에 맞춰 한국도 소득 공백을 메우기 위한 정년연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슈쿠리 과장은 "다만 한국의 경우 대기업의 연공급 등 임금체계를 이유로 고령자 고용을 그냥 연장했을 경우 청년의 취업기회가 감소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세밀하고 효과적인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한국과 일본의 취업성향이 다른 것에서 기인한다. 한국은 취업자체가 힘들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기업에는 입사하기 힘들지만 100% 취업이 가능하다.
김명중 닛세이기초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일본의 고령자 고용 정책의 특징은 시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실시하는 점, 기업 부담이 발생하지 않게 다양한 옵션을 제공하는 점, 고용제도 뿐 아니라 사회보장제도 특히 연금제도와 맞춰서 같이 가는 점이 커다란 특징"이라고 했다.
기업이 정부 정책 맞추도록 '노력의무화'
기업의 반발을 줄이기 위한 일본 정부의 속도조절도 눈여겨 볼 만하다.
일본은 후생연금 수급개시 연령이 늦어지면서 발생하는 소득 공백을 메우기 위해 2000년 '고령자 고용안정법'을 개정했다.
정년을 55세에서 60세로 연장한 지 2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인 만큼 일본 정부는 속도 조절에 중점을 뒀다. 곧장 정년을 연장하기보다는 자발적으로 고령자 고용을 확보하라는 취지로 기업에 노력 의무를 부여했다. 노력 의무를 법적 의무로 전환하는 데는 6년이라는 시간을 줬다.
법적 의무에는 경과규정을 두고 연금 수급개시 연령 인상에 맞춰 3년에 1세씩 정년을 단계적으로 높였다.
계속고용, 정년 연장, 정년 폐지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정년을 연장할 수 있도록 기업에 선택권을 줬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지난해 기준 65세 고용확보 조치를 실시한 상시근로자 21인 이상 일본 기업은 23만5620곳으로 99.9%를 차지했다. 정년을 폐지한 기업이 3.9%, 정년을 연장한 기업이 25.5%, 계속고용을 도입한 기업이 70.6%이다.
슈쿠리 과장은 "노력의무라는 것은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제재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정책적으로 이러한 내용을 사업주에게 계몽, 주지시키고 이 노력 의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필요한 지원을 해 개별 기업이 자주적으로 70세까지 취업확보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사정이 머리 맞대 정책을...정부는 방향성만 제시
정년연장 과정에서 노사의 반발은 어떻게 해결했을까.
일본은 노동 관련 정책을 다룰 때 노사정으로 구성된 노동정책심의회에서 논의한다. 이 과정에서 노사정은 정년 연장 등 사회적 환경을 함께 공유하고 대화하면서 고령자 고용 확보의 기반을 만든다.
이번 기자단 출장에 동행한 오학수 일본 노동정책연수연구기구 특임연구위원은 "일본은 정부가 큰 역할을 하지 않는다. 방향성 제시는 법을 통해 하지만 개별 기업 노사가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놓는다"며 "노사 모두 큰틀에서 지향할 것이 정해지면 거기에 맞춰 서로 협의, 교섭하면서 그 길을 따라간다"고 설명했다.
오 특임연구위원은 "정년연장을 하기 싫어하는 대기업은 빠져나갈 구멍을 다 주고 있다"며 "급여수준이든 근로일수든 필요하면 60대 이전부터 출향(出鄕)이라는 형태로 자회사에 이동시키니깐 다양한 형태로 부담을 덜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형태로 인해 대기업에서 정년연장이 부담 된다는 것은 인사관리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자백하는 것이라 생각해 모든 기업에서 대응할 수 있는 상태로 고령자 고용정책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한국의 경우 출향은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 또는 부당내부거래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 출향은 원청 인력을 자회사에 파견시키는 것을 허용해 기업 부담을 완화하는 방법이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의 경우 60세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직장을 떠나는 노동자를 줄이기 위한 조치가 먼저라고 지적한다. 2023년 통계청의 고령층 부가 조사 결과를 보면 가장 오래 근무한 직장에서 정년퇴직한 비율은 8.5%에 불과했다.
양대노총은 이런 이유에서 계속고용보다는 입법을 통한 정년 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경영계는 기업의 부담 등을 이유로 퇴직 후 재고용을 주장한다. 정부도 정년 연장보다 재고용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임금체계 연공성을 완화해 인건비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일본에서는 보직을 내려놓으면 '직책급'이 사라져 50대부터 임금이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
야마다 마사히코 후생노동성 직업안정국장은 "많은 연구자들이 유럽이나 미국 고용모델을 따라가야 한다는 주장을 하지만 일본은 일본처럼 필요한 것을 만들어가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honestly82@fnnews.com 김현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