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윤봉길 그 사이 쌍권총의 사나이 '김상옥' 있었다

      2023.12.01 17:39   수정 : 2023.12.01 17:52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우리 역사는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사건을 기억한다. 또 우리 국민은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일제를 향해 수류탄을 던진 사건도 알고 있다. 하지만 안중근 의사의 민족혼을 이어 받고 윤봉길 의사에게 이어지는 평범한 한 독립운동가 '김상옥'은 잘 알지 못한다.

그는 지금부터 100년 전인 1923년 일본 경찰들과 총격전을 벌이다 순국했다.

윤홍근 제네시스BBQ 그룹 회장은 1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지난 100년 동안 조명이 이뤄지지 않은 김상옥 열사의 정신을 기리고 기억해 세계 10대 강국으로 발돋움한 대한민국이 세계 1등 국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특별전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2021년 12월 김상옥의사기념사업회 제12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개최한 '김상옥 의사 순국 100주년 기념 토크콘서트'와 '김상옥 의사 일 대 천 항일 서울시가전 승리 100주년 기념식'을 후원해 왔다.


이날 특별전 개막 행사에는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 회장이 참여했고 이종찬 광복회장, 강승규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 등이 참석했다.

사단법인 김상옥의사기념사업회와 전쟁기념사업회가 공동 개최하는 '김상옥, 겨레를 깨우다' 전시는 오는 12월 1일부터 내년 3월 10일까지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1층 원형 특별전시실에서 진행된다. 또한 이번 전시회는 제네시스BBQ 그룹과 국가보훈부가 후원한다.

개막식 행사 후 윤 회장을 비롯한 주요 참가자들은 실제로 전시장을 둘러봤다. 행사 안내를 맡은 큐레이터는 "김상옥은 가난한 집안의 누구보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비범한 영화 같은 삶을 살았다"며 "모든 방향의 독립운동을 경험한 의사"라고 설명했다.

김상옥 의사는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8살에는 가내 수공업을, 14살에는 말의 편자를 두드리던 청년이었다. 우연히 대장간 노인에게 한자를 배우고 배움의 기쁨을 익혀 교회 등을 나가며 수학한다. 이후 전국을 떠돌며 종자돈을 모아 철물점을 세우고 성공한 사업가가 된다. 하지만 사업가가 된 후에 더 큰 꿈인 독립을 염원하며 독립을 위한 지하신문을 발간하고, 암살단을 조직한다. 유명한 일화로 1919년 3·1운동 당시에 여학생을 위협하는 일본 헌병을 때려 눕힌 사건이 있다. 전시장에는 그가 일본 헌병을 때려 눕히고 노획한 일본도가 전시돼 있다.

김 의사는 이후 항일 투쟁을 이끌며 1923년 1월 12일에는 항일투사 고문으로 악명이 높았던 종로 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했다. 폭탁 투척 사건은 당시 민족지였던 동아일보 등에 보도되며 우리 민족의 독립혼을 고취시켰다. 이후 일본 경찰의 대대적인 수사 및 추격이 벌어지고 그는 그 과정에서 일본 경찰을 다수 사살하는 등 도피 생활을 한다. 지금부터 100년 전인 1923년 1월 22일에 일본 군경 1000명과 맞선 '일 대 천 전투' 중 34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 한다. 그는 서로 다른 두 정의 쌍권총을 사용했는데 그래서 후대에 '경성 피스톨', '쌍권총 사나이' 등으로 불린다.

그는 총격전을 벌이다 몸을 피해 숨은 뒤 마지막 남은 한 방의 총알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윤우 의병정신 선양 중앙회 회장은 "동대문 철물점의 홍길동, 비호장군, 혁신단 두몽, 이런 것들이 김상옥 의사께 붙은 별명같은 것인데 그런 소릴 들으면 친일파는 벌벌 떨고 심지어는 일본 경찰들 까지도 좌불안석이었어요"라고 영상 인터뷰를 남겼다.

전시장의 마지막 부분에는 김상옥 의사가 뒷짐을 지고 선체로 찍은 흑백 전신 사진이 걸려 있다.
사진의 옆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김 동지 왜 뒷짐을 지고 사진을 찍소?"
"나라를 빼앗기고 아무 것도 못 하고 가만히 있는 두 손이 부끄럽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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