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까기인형의 계절

      2023.12.03 19:14   수정 : 2023.12.03 19:14기사원문

12월은 발레 호두까기인형의 계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세기에 만들어진 발레가 2세기가 넘게 지속적으로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는 동화적 분위기와 이해하기 쉬운 줄거리, 언제 들어도 귀에 감기는 차이콥스키의 환상적인 음악 그리고 아이들이 많이 출연하고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 무대라 가족이 즐기기 적합한 공연이기 때문일 것이다. 발레 공연에 관심 없는 나의 지인조차도 호두까기인형은 볼만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발레' 하면 이해하기 '힘든 예술'이란 편견을 깨고 이해하기 쉽고 대중적으로 예술성과 상업성을 모두 갖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초연은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한다. 발레 하면 생각나는 '백조의 호수' 초연도 혹평을 받았다고 하니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인 듯하다.
에른스트 호프만의 동화 호두까기인형과 생쥐 대왕을 모델로 발레 호두까기인형은 이반 브세볼로즈스키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여 마리우스 프티파 대본, 표트르 차이콥스키 작곡, 레프 이바노프 안무로 1892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극장에서 최초로 무대에 올려졌다. 초연은 엉성한 무대 연출과 내용 전개, 아이들의 춤과 마임의 비중이 높았고, 무용수들의 춤의 볼거리 부족으로 실패하게 된다. 이후 1934년 소비에트사회주의 이념과 정치적·사실적·민중적 가치를 반영하면서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안무에 가장 잘 표현한 바실리 바이노넨 버전이 러시아에서 흥행에 성공했고 1954년 미국의 조지 발란신은 이전의 귀족적·권위적 스타일을 19세기 유럽풍으로 바꾸면서 중산층의 가족 중심 생활상을 반영하고 어린 무용수와 성인 무용수의 적절한 조화를 이루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현재 각국 발레단에서 안무가들의 특색에 맞게 다양한 버전으로 공연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주로 러시아의 안무가 유리 그리고로비치 버전이나 바실리 바이노넨 버전으로 공연을 하고 있는데 매년 티켓이 매진되는 엄청난 인기를 지속해오고 있다. 20년 넘게 여러 버전의 호두까기인형 주역으로 춤을 췄는데, 한국에서 가장 많이 무대에 섰던 유리 그리고로비치 버전은 1막의 어린 마리 역할부터 2막 왕자와 춤을 추고 잠에서 깨어나는 마지막 장면까지 하는데 감정의 흐름이 매우 자연스럽게 이어져 춤의 몰입도가 높고 무용수들의 개인기가 돋보이는 안무가 주를 이루는 매우 인상 깊은 버전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의 여주인공이 클라라 혹은 마리인 버전이 있는데 이름 변천 과정을 살펴보면 원작의 마리헨이 뒤마의 번역본에서 마리가 되었고, 프티파는 주인공을 클라라(호프만 원작에서 마리헨의 인형 이름)로 하였으며 소비에트 버전에는 마리헨과 유사한 러시아식 이름 마샤(마리아)로, 이후 발란신의 미국 버전에서는 클라라가 되었다. 1막에서 아이들의 역할을 아이들이 하는 경우도 있고 어른들이 하는 버전도 있는데 아이들의 춤은 특유의 천진함이 있어서 가족적이고 크리스마스적 분위기를 훨씬 더 잘 살려준다고 생각한다.

호두까기인형 발레곡은 발레 공연을 보지 않은 사람들도 들으면 알 수 있는 대중적으로 알려진 음악이 많은데, 특히 1막에서 생쥐 대왕과 생쥐 군단과의 전투 이후 마리의 도움을 받은 호두까기인형이 멋진 왕자로 깨어나는 음악은 개인적으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음악이다. 작곡 당시 차이콥스키가 여동생의 죽음으로 슬퍼했다는데 슬픔이 아름다움으로 승화되는 느낌이다.
그리고 2막의 하이라이트인 사탕요정의 춤은 1886년에 발명된 건반 악기인 첼레스타라는 건반 악기로 연주하는데, 굉장히 신비롭고 몽환적 분위기와 어울리는 음악이며 공연을 할 때마다 차이콥스키의 작품 전체를 이끌어나가는 탁월한 작곡 능력과 천재적 곡 해석 능력을 느낀다. 2세기 동안 호두까기인형은 계속 변화와 시대에 맞는 발전을 통해 성탄절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로 장식된 대형 상점과 거리 그리고 연말의 들뜬 분위기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선물 같은 작품을 즐기길 바라본다.

경희대 무용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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