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그데이즈' 윤여정 "버티세요..유머감각은 힘든 삶의 증표"

      2024.01.29 11:23   수정 : 2024.01.29 11:23기사원문

“찰리 채플린 명언에 ‘모든 것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하잖아요. 내게 유머감각이 있다면, 그건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나온 농담이에요. 여러분도 사직서 품고 회사 다니지 않아요? 즐겁자고 하는 겁니다.”

76세 나이가 무색하게 쿨한 배우 윤여정에게 MZ세대도 사로잡은 솔직함과 유머감각을 얻게 된 비결을 묻자 이같이 답했다. 영화 ‘미나리’(2021)로 한국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고 애플TV+ 드라마 ‘파친코’(2022)에 출연하는 등 글로벌 무대서 활약하는 배우 윤여정이 3년 만에 한국 영화로 돌아왔다.

설 영화 ‘도그데이즈’ 개봉을 앞두고 만난 윤여정은 “난 쭉 솔직했다”며 “근데 솔직함은 상대에게 무례가 될 수도 있어 어떻게 경계선을 잘 탈지, 품위 있게 늙고 싶어서 고민 중”이라고 부연했다.


■손자뻘 배우와 첫 연기 "전우애로 출연"

‘도그데이즈’는 반려견을 매개로 서로 연결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다양한 인물이 나오는 이 영화에서 윤여정은 으리으리한 집에 반려견 ‘완다’와 둘이 살면서 배달음식을 시켜먹는 세계적인 건축가 ‘민서’를 연기했다. 출연 제의 당시 캐릭터 이름이 아예 '윤여정'이었을 정도로 실제 윤여정과 닮은꼴 캐릭터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2018)으로 인연이 된 김덕만 감독이 윤여정을 마음에 두고 쓴 인물로, 윤여정은 앞서 “김 감독에 대한 전우애”를 출연 이유로 꼽았다.

그는 “조감독 생활을 19년이나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세상살이가 힘들구나, 그동안 (과거의 나처럼) 개취급을 당하며 살았겠구나, 언젠가 입봉하면 출연하리라 다짐했고 그 약속을 지킨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상 탄 것만 기억하는데, 그건 잠깐이다. 그전엔 (나도) 힘들었죠. 출세한지 얼마 안됐고. 그래도 불평 없이 살았다. 사는 게 그렇지 뭐. 그리고 내가 힘들다고 당당하지 않을 이유는 없어요.”

극중 윤여정은 일견 까칠한 꼰대처럼 보이지만 20대 배달원 진우(탕준상)에게 깊이 공감하는 멋진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 탕준상은 올해 21살로 윤여정과 55살 나이 차가 난다. 그는 “탕준상 아버지가 내 아들과 동갑이더라. 손자뻘과 연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웃었다. 민서의 직설적 화법에 대해서는 “(시나리오를 봤을 때) ‘내가 할 만한 말을 대사로 써놨네’라는 생각은 들었다”고 회고했다. “내가 바꾼 대사는 없어요. 구세대 배우라서 작가들이 피땀 흘려 쓴 글을 내입에 붙지 않는다고 바꾸는 것은 싫어. 난 애드립도 싫어해요.” '마르고 닳도록 대본을 외운다'는 그는 “대사를 보고 또 보고 하면서 그 인물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도 매일 3~4시간씩 연습을 한다는데, 꾸준한 연습은 아무도 못당하는 것 같아. 내가 조성진한테 ‘그 긴 악보를 어떻게 다 외우냐’고 했더니 ‘선생님은 대사를 다 외우지 않느냐’고 하더라.”


■인생의 좌우명? “여러분, 버티세요”

윤여정은 이날 인터뷰에서도 직설적인 화법을 유감없이 펼쳤다. 자신을 향한 칭찬에 기분 좋게 웃으면서도 “(윤여정의 매력이 뭐냐는 물음에) 자기 입으로 매력이 뭐라고 말하는 건 좀 이상하지 않나”라고 했고, ‘목소리가 호소력이 있다’는 지적에는 “내가 한때 목소리 때문에 거부감 1위 배우였다. 역시 세상은 오래 살아야 한다”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반려동물을 키울 생각은 없냐는 물음에 그는 반려견을 키우다 잃어버린 아픔을 언급하며 “이젠 자식(반려동물) 키울 나이가 못된다. 그냥 외롭게 살다가 가겠다”고 했다. 또 할리우드 진출을 앞둔 후배들에게 조언을 구하자 “그건 공자나 하는 것이지, 난 할리우드도 잘 모른다”며 “그냥 내꺼 하다보면 세계적인 게 될 수도 있다고 보는데, 인생이 계획대로 되냐”고 되물었다.

인생을 관통하는 좌우명을 묻자 “그냥, 버티세요. 인생은 버티는 것”이라고 답했다. 자신의 화양연화가 언제였냐는 물음에는 “죽을 때 생각나겠죠”라고 했다. “23살 데뷔작 ‘화녀’로 여우주연상을 받았을 때 세상을 다 가졌구나 생각했다. 그때가 참 좋고 아름다운 시절이라고 생각하겠죠. (아카데미 수상은?) 그건 행복한 사고로 정리했다. 상의 허망함과 의미없음을 안 뒤에 상을 받았기에, 감사하고 기뻤으나 그저 기쁜 사고라 생각해요.” 그는 “박찬욱 감독이 ‘자다가도 할 수 있는 연기로 상주냐, 딴것도 많은데’라고 했다”면서 “봉준호 감독이 문을 두드렸고 그즈음 모든 게 맞아떨어져 내가 불가사의하게 그 상을 받았다”고 부연했다.

올해 바람을 묻으니 그저 소탈했다. “병이 안 나고, 약속한 작품 무사히 끝내는 것”이라며 “돌아볼 것밖에 없고 내다볼 건 없는 나이인데, 시나리오가 좋아서든 감독이 좋아서든 일할 수 있단 게 얼마나 다행이에요. 덕분에 가끔 화장도 하고”라며 정상적인 일상을 누리는 현재에 감사했다.


마지막 우리 영화계를 위해 개선점을 말해 달라는 요청에 “욕먹으면 어떡해”라고 한 뒤 곧바로 “작은 영화가 더 많이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손익분기점 넘으면 성공한 거 아니냐. 5000만 인구에 천만 영화 나오는 게 더 기이한 현상이다.
다양성 있는 영화가 나오길 바란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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