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〇〇을 탐하면 안된다
2024.02.24 06:00
수정 : 2024.02.25 01:06기사원문
옛날 송나라 선화왕(宣和王) 때 한 젊은 선비가 다리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병을 앓았다. 선비는 다리가 약해서 걷지도 못하면서 아파했고 음경이 발기가 되지 않아 부부관계도 할 수 없었다.
많은 의원들이 치료를 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선비의 가족은 백방으로 치료해 봤지만 선비의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선비의 집안은 넉넉한 편이었지만 병치레를 오래 한 통에 가세가 기울었다. 약값을 지불하기 위해 돈이 될 만한 것들은 모두 팔아버렸기 때문이다.
당시 하징(何澄)이라는 의원이 있었다. 하징은 명의로 소문이 나 있었다. 선비의 부인은 수소문 끝에 하징에게 왕진을 부탁하게 되었다. 집안에 가진 돈은 없었지만 어떻게든지 남편의 병을 고쳐주고자 했다.
하징은 환자가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라도 가리지 않았다. 하징은 진료의 청을 받고서는 곧바로 다음날 선비의 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갑자기 부인이 하징을 마중하더니, 하징의 팔을 잡아끌고서 으슥한 부엌으로 데리고 갔다.
부인은 하징에게 나지막하게 말하기를 “의원님, 사실 남편이 병을 앓은 지 오래되어 약값으로 돈을 모두 써 버렸고 저당 잡히고 팔 것도 거의 다 쓰였습니다. 이에 약의 값을 치르지 못하니 원컨대 몸으로써 갚고자 합니다. 저를 맘대로 탐하셔도 됩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하징은 깜짝 놀라며 정색을 했다. “부인은 어찌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저 마음 놓으십시오. 가진 돈이 없다고 해서 절대 이런 일로써 몸을 더럽히지 마십시오. 저 또한 의원된 도리로서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일입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사람의 벌이 있지 아니하더라도 반드시 귀신의 꾸짖음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부인은 약값으로 대신해서 자신의 몸을 허락한다고 했지만, 사실 부부관계를 하지 못해 마치 과부처럼 지내 수년 간 음욕(淫慾)이 쌓여 있었다. 그래서 이처럼 황당무계한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었다.
부인은 의원이 자신을 쉽게 탐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하징의 대답을 듣고서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이런 마음이 곧은 의원도 있구나.’하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줄을 몰라하며 물러났다.
하징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선비를 진찰하고 나서는 “진찰을 해 보니 남편분은 신허(腎虛)에 의한 하지무력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의원들이 각기(脚氣)나 풍증(風症)으로 보고 치료했기 때문에 차도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 처방을 복용하면 차도가 있을 터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라고 하면서 약방문을 적어줬다.
하징이 처방해 준 것은 바로 두충(杜沖)이었다. 하징은 두충을 술에 넣어 우린 후 두충주를 마시도록 했다. 그러자 며칠 만에 다리에 힘이 들어왔고, 한 달 정도 되니 걷게 되었다. 허리와 무릎이 아픈 증상도 모두 사라졌고, 발기불능도 사라졌다.
두충은 근골을 튼튼하게 하는 약재로 간(肝)과 신(腎)을 기운을 강하게 한다. 간은 근(筋)을 주관하고, 신은 뼈를 주관한다. 그래서 신이 충만하면 뼈가 강해지고, 간이 충만하면 근이 튼튼해진다. 발기불능 또한 간신허(肝腎虛)와 관련이 높기 때문에 근골이 강해지면서 자연스럽게 회복이 된 것이다. 하징이 두충을 술에 넣어 복용하게 한 것은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유효성분의 흡수를 높이며 보다 더 빠르게 효과를 보게 하고자 한 것이다.
선비의 부인이 몇 달 뒤 임신을 해서 아이도 갖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하징은 ‘참으로 잘 되었구나.’하고 생각했다.
하징은 무릇 부녀(婦女) 및 과부(寡婦), 여승(女僧) 등을 볼 때는 반드시 시중드는 사람이 곁에 있도록 한 후에 방에 들어가 진찰했고, 혹시 곁에 사람이 없으면 이들을 혼자서 진찰하지 않았다. 자칫 아녀자를 진찰하면서 성적으로 오해를 살 일을 만들지 않고자 했다. 아녀자의 음부 주위의 회음혈이나 장강혈에 침을 놓거나 뜸치료를 해야 할 상황이 생기면 더더욱 조심스러웠다.
하징은 기생과 같은 창기(娼妓)가 진료를 청할 때에 조차도 몸과 마음가짐을 단정하게 하고서 양가(良家)의 귀부인이나 규수를 진찰하듯이 했다. 그래서 진찰을 할 때는 음심을 품거나 희롱하듯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진료를 마치고 ‘약주라도 한잔 하고 가시라’ 하더라도 곧바로 돌아왔다. 그 후라도 일없이 방문해서 사음(邪淫)한 보답을 바라지 않았다.
얼마 후 하징은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다. 그는 꿈에서 신을 모시는 사당에 들어갔는데, 판관(判官)이 나타나서 하징에게 말했다.
“너는 의약에 공이 있고, 환자와 그 가족이 어렵다면 어디든지 달려갔고 아녀자가 조급한 마음에 미혹한 말을 꺼냈을지라도 색욕을 탐하지 않았으니 상제께서 너에게 돈 5만 관과 관직 한자리를 내려주라 하셨다.”라고 했다. 하징은 잠에서 깨어난 후 ‘희한한 꿈도 다 있구나.’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궁의 왕세자가 병에 걸렸다. 궁의 내의(內醫)들이 치료에 임했으나 왕세자의 병은 나아지질 않았다. 궁에서는 조서를 내려 초야의 의사를 찾았다. 그러나 아무도 나서지를 않았다. 만약 왕세자의 병 치료를 실패하면 창피를 당할 것이고 설령 부작용이라도 생기면 엄한 벌에 처해질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결국 하징이 조서에 응했다. 하징은 왕세자를 진찰하고서 약을 처방하자 왕세자의 병은 조금씩 회복이 되더니 아주 건강해졌다. 조정에서 이 답례로 하징에게 재물과 함께 관직을 하사했다.
하징은 ‘지난 번 꿈과 똑같구나. 마치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듯하다.’라고 내심 놀라워하며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더욱더 진실되고 정성을 다하여 진료했다.
의사의 성윤리는 그 어떤 직업보다도 더욱더 고귀하게 지켜져야 한다. 환자가 아픈 몸과 마음을 모두 의사에게 허물없이 드러내고 맡기는 것은 의사를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녀를 불문하고 성적으로 민감한 부위를 진찰하거나 치료를 할 때, 환자의 정신건강이 불안정할 때, 수술시 마취로 인해 의식이 없을 때라도 진료에 신중해야 한다. 한의사들 또한 복진과 촉진, 침치료시 혈자리를 찾을 때나 추나요법 시 환자와의 신체적 접촉이 빈번하게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옛말에 ‘군자는 신독(愼獨)하라’고 했다. 홀로 있음을 삼가라는 것이다. <중용>에는 ‘군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경계하고 삼가며 들리지 않는 곳에서도 두려워한다. 숨은 것보다 잘 드러나는 것이 없으며, 미세한 것보다 잘 나타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홀로 있을 때에도 삼가는 것이다.’라고 했다.
의사는 군자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남들이 모두 훤히 들여다 보고 있는 것처럼 모든 면에서 삼가야 한다. 환자를 진료할 때는 자신의 뒤에서 120명이 지켜보고 있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의사는 군자처럼 처신해야 한다.
* 제목의 ○○은 ‘여색(女色)’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명의잡저>醫不貪色. 宣和間, 有一士人抱病纏年, 百治不瘥. 有何澄者善醫, 其妻請到, 引入密室, 告之曰 ‘妾以良人抱疾日久, 典賣殆盡, 無以供醫藥, 願以身酬.’ 澄正色曰 ‘子何爲出此言! 但放心, 當爲調治取效, 切毋以此相污. 不有人誅, 必有鬼神譴責.’ 未幾, 良人疾愈. 何澄一夜夢入神祠, 判官語之曰 ‘汝醫藥有功, 不於艱急之際, 以色欲爲貪, 上帝令賜錢五萬貫, 官一員.’ 未幾月, 東宮疾, 國醫不能治, 有詔召草澤醫, 澄應詔進劑而愈, 朝廷賜官賜錢一如夢.(의사는 여색을 탐하지 않는다. 선화 때에 어떤 선비가 병을 앓은 지 여러 해 되었는데, 백방으로 치료해도 낫지 않았다. 하징이라는 자가 의술에 뛰어났으므로 선비의 아내가 그를 초청하였는데, 도착하자 이끌고 밀실로 들어가서 그에게 말하였다. ‘저는 남편이 병을 앓은 지 오래되어 저당 잡히고 팔 것도 거의 다 없어져서, 의약의 값을 치르지 못하니 원컨대 몸으로써 갚고자 합니다.’ 하징은 정색하며 ‘어찌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저 마음 놓으십시오. 마땅히 조치하여 효과를 볼 것이니, 절대 이런 일로써 서로를 더럽히지 마십시오. 사람의 벌이 있지 아니하다면 반드시 귀신의 꾸짖음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의 병이 나았다. 하징이 어느 날 밤 꿈에 신의 사당에 들어갔는데, 판관이 그에게 말하기를 ‘너는 의약에 공이 있고, 어렵고 급한 때에 색욕을 탐하지 않았으니, 상제께서 돈 5만 관과 관직 한자리를 내려주라 하셨다.’라고 하였다. 몇 달 지나지 않아 동궁이 병에 걸렸으나 국의가 치료하지 못하므로 조서를 내려 초야의 의사를 불렀는데, 하징이 조서에 응하여 약을 바쳐서 나았으며, 조정에서 관직을 주고 돈을 하사함이 꿈과 똑같았다.)
<본초강목>按龐元英談藪, 一少年新娶, 後得脚軟病, 且疼甚. 醫作脚氣治不效. 路鈐孫琳診之. 用杜仲一味, 寸斷片拆. 每以一兩, 用半酒ㆍ半水一大盞煎服. 三日能行, 又三日全愈. 琳曰, 此乃腎虛, 非脚氣也. 杜仲能治腰膝痛, 以酒行之, 則爲效容易矣. (방원영의 담수에서는 “어떤 소년이 장가를 들었는데, 후에 다리가 약해지는 병에 걸렸고, 또 매우 아파하였다. 의원이 각기로 진단하여 치료하였지만 효과가 나지 않았다. 노검 손림이 진찰하고는, 두충 한 가지만 한 치[寸] 길이의 조각으로 잘라서 매번 1냥씩 술과 물 각각 1큰잔씩 넣고 달여 복용하게 하였다. 복용한 지 사흘이 되자 걸을 수 있었고, 다시 사흘이 지나자 완전히 나았다. 손림은 ‘이것은 바로 신이 허하기 때문이지 각기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두충은 허리와 무릎이 아픈 증상을 치료할 수 있으니, 술로 운행하게 한다면 효과가 쉽게 나타난다.” 하였다.)
<외과정종(外科正宗)>醫家五戒十要. ○ 二戒:凡視婦女及孀婦尼僧人等, 必候侍者在傍, 然後入房診視, 倘傍無伴, 不可自看. 假有不便之患, 更宜真誠窺覩, 雖對內人不可談, 此因閨閫故也. (의가오계십요. 둘째 계율. 무릇 부녀 및 과부, 여승 등을 볼 때는 반드시 시중드는 사람이 곁에 있도록 한 후에 방에 들어가 진찰하며, 혹시 곁에 사람이 없으면 혼자 보아서는 안 된다. 만약 익숙하지 않은 질환이 있으면 더욱 정성스럽게 살펴야 하며, 비록 내인을 대하더라도 이야기해서는 안 되니, 이는 규방의 일이기 때문이다.)
○ 五戒:凡娼妓及私伙家請看, 亦當正己視如良家子女, 不可他意見戲, 以取不正, 視畢便回. 貧窘者藥金可璧, 看回只可與藥, 不可再去, 以希邪淫之報. (다섯째 계율. 무릇 창기 및 개인적으로 일을 부리는 집에서 보아 주기를 청하거든 또한 마땅히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양가의 자녀 보듯이 할 것이요, 다른 마음을 품고 희롱하듯 보며 부정함을 취해서는 안 되며, 진료가 끝나면 곧 돌아온다. 빈곤한 자의 약값은 되돌려주는 것이 좋으며, 진료하고 돌아올 때 단지 약을 주기만 해야 하고, 다시 가서 사음한 보답을 바라서는 안 된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