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산에서 통장 만들러 왔어요" 매주 일요일 200명 외국인 손님 포용한 하나은행 원곡동지점
2024.02.28 16:40
수정 : 2024.02.28 16:40기사원문
#. 지난주 일요일(25일) 오전 11시 30분. 경기 안산 하나은행 원곡동 지점 앞에서 아웅(가명)씨는 친구 네 명과 함께 군고구마를 먹으면서 줄을 서 있다. 이들은 은행 문이 열리기 한 시간 전인 9시부터 2시간 30분째 기다리고 있다. 미얀마 출신인 아웅씨는 지난해 10월 한국에 들어와 경기 시흥의 한 금속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다.
아웅씨는 "일요일이 그래도 한가하니까 오늘 일찍 왔다"면서 "전화번호를 바꿨는데 (바꾼 번호를 등록하고), 새 통장을 만들러 왔다"고 말했다. 옆에 함께 서 있는 친구들은 모두 미얀마 출신이다. 한 명은 대전에서 경기 안산 원곡동 지점까지 '은행 원정'을 왔다고 전했다.
[파이낸셜뉴스] 지하철 안산역 1번 출구에서 10분 거리, 다문화거리 시장 바로 옆에 위치한 하나은행 원곡동외국인센터는 매주 일요일 문을 연다. 일요일 영업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 센터 앞에는 "외국인 일요일 영업(Open Sundays for foreigners' convenience)"을 알리는 안내문이 영어·중국어·베트남어 등 각국 언어로 함께 번역돼 있다.
지난 25일 오전 10시 30분께 찾은 센터 앞은 이미 60명 가량의 대기 손님으로 북적였다. 1층 키오스크에서 안내된 대기고객만 38명. 1, 2층에는 각각 30여 명의 손님이 대기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2층 창구에서 만난 35세 남성 마티야(가명)씨는 "충남 서산에서 왔다. 오늘은 아침에 1시간 기다리고 바로 들어와서 좋다"며 "한국에 온 지 10년 정도 됐는데 은행 업무를 볼 때마다 서산에서 원곡동으로 온다"고 했다.
실제 하나은행 원곡동 지점은 하루 평균 150명 이상이 찾는 '핫플레이스'다. 조진훈 하나은행 원곡동외국인센터지점장은 "일요일 하루 150~200명 손님들이 업무를 보고 돌아간다. 오늘은 평소보다 숫자가 좀 적은 편"이라며 "지방에서 올라온 손님들은 새벽 6시부터 지점 앞에서 대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안산에 외국인 근로자 커뮤니티가 잘 형성돼 있기 때문에 토요일에 올라와서 친구들을 만나고 일요일에 업무를 보는 손님들도 있다. 이렇게 전국 각지에서 모인 외국인 고객들은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미얀마 △캄보디아 △스리랑카 등 동남아시아에서 온 외국인 근로자가 대다수다.
주요 고객이 외국인 근로자인 만큼 일반적인 은행 창구와 업무 특성이 완전히 다르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형광색 조끼를 입은 '통역 요원'이 상주하면서 외국인 고객와 한국인 은행원 간 소통을 돕는다는 점이다. 지점에서는 베트남어, 태국어, 인도네시아어 등 통역을 전담하는 직원을 채용했다. 손님들이 번호표를 뽑고 대기하고 있으면 통역 직원들이 어떤 업무를 보러 왔는지 확인하고 창구에 안내한다.
특히 일요일에도 손님 수요에 맞게 국가별로 통역 요원을 배치하고, 쓰는 언어 등에 따라 창구를 운영해 손님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은행 계좌개설에 필요한 제반 서류들도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미얀마, 스리랑카, 몽골, 방글라데시 등 10개국 언어로 정리돼 있다. 이 파일들에는 각 서류별로 완성본 예시가 들어 있어서 이를 참고해 편리하게 서류를 작성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 2003년 8월 일요일 영업 개시 이후 20년 간 쌓은 노하우로 업무 처리에도 효율성을 높였다. 1층 6개 창구에서는 주로 비밀번호·고객정보 변경과 분실물 신고 및 재발급 업무를 담당한다. 2층에서는 통장·급여계좌 개설과 인터넷뱅킹 신청, 체크카드 발급 등 상대적으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업무를 처리한다.
조 지점장은 "동남아 국가 중 계좌 개설률이 40% 안팎인 국가도 있다. 외화 송금이나 이체 뿐 아니라 통장·카드 분실, 비밀번호 변경 등 제사고 업무 비중이 타 영업점에 비해 높다"라고 설명했다. 일주일에 한 번 날을 잡고 오는 만큼 손님 한 명이 처리하는 업무도 여러가지다. 계좌 개설부터 전자금융·해외송금, 체크카드 등록까지 하는 경우가 많다. 직원들은 여러 업무를 봐야 해서 애로가 많으면서도 번호표를 받기만 해도 좋아하는 손님들의 표정을 보면서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다.
길 건너편에 위치한 하나은행 출장소도 손님들이 영업점 밖까지 줄을 서 있었다. 이 곳은 주로 중국과 러시아, 중앙아시아 손님들이 찾는 곳이다. 6개 창구에 직원 두 명은 외국인 직원들이다. 지점 특성을 고려해 일부러 외국인 직원을 고용했다.
하나은행이 전국 16곳에서 이같은 외국인 특화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수요를 충족하기에는 부족한 실정이다. 하나은행의 외국인 손님은 250~300만명에 달한다. 해외송금 등을 하는 활동 고객 수만 50~60만명에 달한다. 안산 원곡동 지점 및 출장소에서 지난해 해외에 돈을 보낸 고객 수는 1만2613명이다.
은행에서도 더 많은 외국인 손님들에게 편리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당장은 지점 직원, 통역 요원 충원부터 중·장기적으로는 비대면 금융거래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해외송금 전용 모바일 앱(Hana-EZ앱)이 대표적이다. 16개 국가 언어로 제공되는 EZ앱은 24시간 365일 해외 제휴은행으로 송금이 가능하다. 송금 전 계좌번호와 수취인 이름을 확인해 외국인 손님의 불편을 최소화한 게 특징이다.
해외송금 전용 계좌(easy-one)서비스는 창구에서 사전에 등록한 해외 계좌로 자금 송금되는 서비스다. 무료상해보험 가입이 가능하고 한 번 영업점을 방문해 계좌를 만들면 은행 방문 없이 해외로 돈을 보낼 수 있다. 이외에도 △외국인 근로자 대상 금융교육 △사망 근로자 시신 운구를 위한 장례비 지원 △외국인 근로자 전용보험 가입을 위한 통장 개선 등을 지원하고 있다. 조 지점장은 "마음 같아서는 오는 손님들의 업무를 다 처리해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안타까운 부분이 있다"라며 "기본적인 업무는 비대면으로 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열심히 홍보하고 있다"고 전했다.
dearname@fnnews.com 김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