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적 대법원장' 견제 사법행정자문회의 존폐 결정 미루고 대안 연구
2024.04.08 20:32
수정 : 2024.04.08 20:42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법원행정처가 ‘사법농단 사태’ 이후 대법원장이 독점한 사법행정권을 분산·견제한다는 취지로 도입된 사법행정자문회의 존폐 여부를 당장 결정하기 않기로 했다. 다만 대안책 연구에 들어가기로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폐지수순으로 해석된다.
법원행정처는 8일 열린 상반기 정기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법관들의 설명 요청사항에 대해 이 같은 취지로 답변했다.
법원행정처 "폐지 절차가 진행되고 있지는 않다"
우선 법원행정처는 “사법행정자문회의의 경우 2023년 4·4분기부터 회의가 열리지 않고 있다”면서 “사법행정 관련 소통 방안을 고민하고 있으며, 현재 대법원규칙인 ‘사법행정자문회의 규칙’의 폐지 절차가 진행되고 있지는 않다”고 밝혔다.
사법행정자문회의는 배형원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 5일 코트넷 공지사항에 ‘계속 유지하는 것이 적절한지,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기구는 무엇인지 등에 대한 연구 검토를 지시했다’는 글을 올리면서 논란을 촉발시켰다. 출범 목적이 분명한 기구인 만큼 이를 폐지하면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로 회귀할 수 있다는 우려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사법행정자문위원회는 이용훈·양승태 전 대법원장 때 1~2기가 운영됐으며, 구성원 7명 모두 외부 위원들로 채워졌다.
법원행정처는 사법행정자문회의 대신 대법원장이 임의로 소집할 수 있는 비상설 기구인 사법정책자문위원회를 유력한 대안으로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행정처는 “‘사법행정 자문기구’에 관해 (대표회의 산하) 사법행정제도 및 기획예산 분과위원회에서 연구와 논의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대표회의의 분과위는 8명 이상~25명 이하로 구성된다. 법관대표회의 구성원은 2명 이상 분과위 위원이 될 수 있으며, 분과위는 법원 내·외부의 전문위원도 둘 수 있다.
또 법원행정처는 ‘오후 6시 이후 재판 자제’ 등 내용을 담은 정책추진서를 공무원노조와 체결한 것이 불법이라는 논란에 대해서는 향후 이러한 형태의 협의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법원행정처는 “시정명령에 이의하기로 했다는 식으로 알려진 것은 사실과 다르다”면서 “이의할 것인지를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으나, 행정소송으로 다투더라도 처음부터 구속력을 주지 않으려 정책추진서 형식을 취한 것이어서 다투는 의미가 있는지 의문을 가지고 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법원행정처는 형사전자소송의 경우 수사기관 등과 시스템 연동 및 협의에 어려움이 있어 당초 시행이 예상됐던 올해 10월보다 더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고 피력했다. 차세대 전자소송 시스템 역시 연내 개통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전국법관대표회의 신임 의장에 김예영 부장판사
같은 날 전국법관대표회의 신임 의장으로 선출된 김예영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사법연수원 30기)는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어떤 외부 권력이나 내부 조직이기주의에도 휘둘리지 않고, 각급 법원 판사들의 의견을 충실히 수렴하고, 공동의 지혜와 용기를 모아 정당성 있는 의견의 형성과 표명을 실기하지 않고 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 취임 이후 처음 열린 대표회의에서 소견문을 통해 “국민을 직접 대면하는 재판에서 사회구성원 중 누구보다 지혜롭고 공정하며 신중할 것을 직업적으로 요구받는, 법관들이 토론을 거쳐 형성한 법관독립이나 사법행정에 관한 의견은 충분히 반영되고 존중돼야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이처럼 밝혔다.
대표회의는 각급 법원 내부판사회가 선출한 대표들로 구성된다. 2017년 김명수 전 대법원장 체제에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따른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로 결성됐기 때문에 사법행정과 법관독립에 관한 안건을 주로 다룬다.
의장과 부의장을 두고 있지만 법원 내부에서 수평적인 토론과 다수결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유일한 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의사결정권한이나 집행권한은 없어도, 현행 법령상 의견을 표명하고 건의할 수는 있다.
의장과 부의장은 무기명 투표로 선출되고, 출석 인원 과반수(온라인 포함)를 득표하면 당선된다. 올해는 구성원 124명 중 109명 재적 상황에서 105명이 투표에 참여해 102명이 김 의장 선출에 찬성했다. 신임 부의장이 된 이호철 부산지법 부장판사(33기)는 재적인원 108명 가운데 104명이 찬성해 당선됐다.
조 대법원장은 인사말에서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이라는 본연의 업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며 “사법부를 둘러싼 상황이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구성원 모두가 재판받는 국민의 고충을 헤아려 신속하고 공정한 사건 처리에 최선을 다한다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해 12월 취임한 이래 김 전 대법원장 재임 시기에 시행된 제도들의 존폐를 검토해왔으나 전국법관대표회의는 그대로 유지할 방침으로 전해졌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