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역사작가 정진오가 소개하는 '대장간 이야기'

      2024.04.18 11:12   수정 : 2024.04.18 11:12기사원문

세계 각국이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마스·이스라엘 전쟁도 그렇지만,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두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한반도에까지 커다란 파장을 끼치고 있다.

남북의 무기가 그 전장에서 대결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끊이지 않는다.

무기 개발의 역사를 따라 올라가면 주요 무기 탄생의 순간마다 대장장이가 있었다.
인류는 사람끼리 싸우기 전에 먼저 짐승들과 싸웠을 것이다. 사람들은 동물을 잡아 식량으로 삼아야 했고, 짐승 역시 인간을 먹잇감으로 여겼다. 둘 사이의 먹고 먹히는 전쟁은 불가피했다. 인간은 맨손으로 짐승을 감당하기 어려우니 손에 들고 싸울 무기를 고안해야 했다.

최초의 무기는 아마도 나무 꼬챙이나 돌멩이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나무를 꺾어 창을 만들고, 돌칼이나 돌도끼를 다듬어 좀 더 세련된 공격 무기를 손에 쥐었다. 짐승과의 생존 싸움에서 인간이 우위에 섰을 때, 이제는 인간들끼리 서로 더 차지하기 위한 전쟁을 벌였다. 전쟁의 승패는 신무기 보유 여부에 달렸다.

금속을 발굴하고 추출하게 된 뒤로는 청동검이나 철검을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더 나아가 대량 살상이 가능한 치명적 무기인 총과 대포를 생산하는 데도 성공했다. 나무에서 돌로, 돌에서 청동으로, 청동에서 철로. 첨단 무기 제조를 가능케 하는 기술 습득은 문명 발달을 이끄는 비등점이 되었다. 그 한가운데에 대장장이가 있었다.

첨단 무기, 첨단 기술이라고 할 때의 ‘첨(尖)’이라는 글자는 뾰족하다는 뜻으로도, 날카롭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뾰족하면서 단단한 창, 날카로우면서 무르지 않은 칼을 만드는 부류가 대장장이이다. 그들의 일터인 대장간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금속 소재 산업체라고 할 수 있다.

경기도 구리시에서 서울 광진구 쪽으로 달리다 보면 오른편에 그리 높지 않은 아차산이 있다. 이곳에 아주 특별한 고구려 유적지가 자리한다. 도로변에 ‘고구려 대장간 마을’이라는 표지판을 커다랗게 세워 놓아 외지인들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백제와 겨루던 고구려 군대의 전초 기지인 아차산 보루(堡壘)들이 바로 여기 있다. 남한 땅에 흔치 않은 고구려 군사 유적이라서 특별한 것도 있겠지만, 산꼭대기 보루에 딸린 대장간 흔적이 발굴되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큰 관심을 끌었다. 산속 군사기지에 대장간이라니 좀 생경하다. 보루 부설 대장간은 그 전초에 근무하는 병사들의 무기를 손보고 무뎌진 창이나 칼날을 벼리던 시설이다.

현대전에서도 탱크나 장갑차 등 첨단 장비가 많은 기계화 부대의 경우 정비부대는 사단 직할대로 삼아 각 단위 부대마다 따로 배속시켜 놓고 있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추어 빠르게 대응토록 하기 위해서다. 이는 전투 현장에서 고장이 난 장비를 즉시 조치할 수 있도록 하는 최상의 시스템이다. 고구려 아차산의 보루 대장간이 바로 이 현장 조치를 위한 정비창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과거의 대장장이가 그랬듯, 현대까지 그들의 혼은 여전히 남아 인류의 역사를 바꿔가고 있다.

'대장간 이야기'는 우리가 하찮게 여기고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대장간을 좀 더 깊고 폭넓게 들여다보자는 차원에서 꾸몄다. 대장간과 관련한 거라면 분야를 가리지 않고 최대한 많이 실으려고 노력했다. 대장간의 인문학적 향기를 다양한 관점에서 드러내고자 애썼다. 우선은 대장간의 현장을 찾아 거기서 일하는 대장장이들을 만나 얘기를 들었다.

대장간에서 만들어낸 연장들을 사용하는 우리 삶의 현장 속으로도 가보았다. 또한 역사 속에서 대장장이들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대장간이나 대장장이는 우리의 문화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도 살펴보았다.

책을 써 내려가며 도시마다 그 지역에 어울리는 대장간 한 두 곳 쯤은 보존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그 고장의 기술 원점을 지켜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더 나은 기술을 창출해내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성의라고 생각한다.
나름으로는 힘을 들여 쓴 이 책이 우리 첨단 기술의 원점인 대장간을 알아가는 데 아주 작은 쓰임새라도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정진오 인문역사작가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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