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도 커피도 욕심 부리면 오히려 독... 자신이 원하는 맛과 향에만 집중하세요"

      2024.04.26 04:00   수정 : 2024.04.26 04:00기사원문
평일 낮에는 동네 주민들이 삼삼오오 이야기 꽃을 피우고, 주말이면 젊은이들까지 모여드는 동네 사랑방 같은 카페. 서울 강서구 방화동은 물론 인근을 진한 커피향으로 매료시킨 커피집이 있다. 이 동네는 물론 인근 지역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는 '방화동커피볶는집' 이야기다. 갓 볶아낸 커피향을 닮은 이 곳 주인장은 마흔이 넘어 커피를 배운 늦깍이지만 드립 커피를 배우기 위해 일본 유명 전문가를 찾아갈 정도로 대단한 열정과 그에 걸맞는 커피 실력으로 정평이 났다.

원두 로스팅부터 드립커피를 내리고 서빙하는 손길 하나하나에 커피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 묻어난다. 최근에는 그렇게 힘들게 배운 지식과 기술을 고객과 동료 카페 사장에게 재능기부하는 방화동엔 없어선 안될 원두 선생님이기도 하다.


벚꽃이 한창이던 지난 9일, 서울 강서구 '방화동커피볶는집'을 운영하는 안남영 바리스타를 만났다. 커피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산미 원두'와 '고소한 원두'중 무엇을 선호하는지부터 묻는다. 늘 손님의 취향부터 파악하고 대화를 시작하는 그는 알맞게 간 원두 가루를 드리퍼에 받치더니 그 위로 한 줄기 물줄기를 내려 보냈다.

"커피는 그냥 내 자신이예요. 같은 원두를 사용하고, 같은 온도 조건에서 커피를 추출해도 내리는 순간의 감정에 따라 맛이 오묘하게 달라져요. 참 신기하죠?" 안 바리스타의 커피에 대한 자존감이 묻어나는 말이었다. 그는 "커피 맛도 손님이 많은 날과 적은 날이 다르고, 로스팅과 드립도 날마다 다르게 나온다"고 했다. 손님 입맛에는 늘 너무나 훌륭한 드립커피이지만, 커피에 진심인 그에게는 매일 매순간이 진지한 도전이고 설레는 즐거움인 것이다.

그는 마흔 셋 늦은 나이에 커피를 처음 배웠다. 2013년 서울 성수동에서 신맛이 강한 고급 커피를 처음 접한 순간, 커피에 대한 궁금증이 막 피어올랐다고 했다. 그 날 접한 커피는 그냥 쓰기만한 커피가 아니었다. 오묘한 산미가 연신 혼을 빼놓았다고 했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간호사로 생과 사를 가르는 치열한 현장에 있었고, 이후 출산과 육아를 거치면서 우울증으로 힘든 시기에 우연히 만나게 된 한 잔의 커피는 이후 그녀 인생을 바꿔놨다.

그는 곧장 방화동에 있는 한 커피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늦은 나이였지만 저녁에는 일을 하고 낮에는 커피 아카데미 등을 통해 커피에 대해 배웠다. 경기 성남 판교에 있는 한 커피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들으며 커피에 더욱 빠져들었다. 특히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된 일본 '고노 커피 세미나'는 그녀를 완전히 매료시켰다. 시간이 나면 일본으로 건너가 최고의 드립 비법을 경험하며 자신만의 드립 커피를 연구했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드립 커피 전문점과 자체 로스팅을 하는 카페는 시간이 날 때 마다 들러가며 눈여겨 봤어요. 또 아들이 유학하고 있는 홍콩에 가서도 유명한 드립 커피 전문점을 찾아가 노하우를 살펴보는 게 너무 재밌었어요"라며 자신만의 커피를 완성하던 과정을 설명했다.

그렇게 커피에 빠져 무려 6년 동안 배움과 연구를 거듭한 뒤 안 바리스타는 아르바이트를 했던 지금의 가게를 인수했다. 상호도 2019년 인수 당시 그때 그대로 '방화동커피볶는집 방화점'을 사용하고 있다. 가게 운영 초기에는 본인이 추구하는 '산미 강한 커피'를 주로 선보였다. 산미가 좋은 커피는 대부분 고급 커피로 통하지만 제대로 맛을 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드립 기술이 필요하다. 그러나 가게에서 원두를 사 집에서 직접 내려먹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이게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나 자신을 위한 생두를 선택하고 로스팅과 드립을 했어요. 그런데 원두 판매를 하기 시작한 뒤 어느 날 문득 의문이 생기더라구요. 좋아하는 커피를 로스팅하고, 손님에게 권하는 게 나만의 만족을 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산미가 좋은 섬세한 원두를 일반인이 드립으로 제대로 맛을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안 바리스타는 이후 손님의 눈높이에 맞춰 로스팅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원두를 사가는 손님에 한 잔씩 드립 커피를 내려주며 원포인트 개인교습도 병행하기 시작했다. 방화동 원두 선생님이라는 별명이 시작된 계기다. 그는 지금은 재능기부라고 불러야 할 정도의 가격, 커피 한 잔 정도의 값만 받고 커피 강좌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안 바리스타의 원두 커피 맛은 입소문이 많이 났다. 서울 강남은 물론 제주도, 캄보디아 등 이국에서도 원두를 찾는 손님이 늘고 있다. 커피 판매 수익 외에도 원두 판매 수익도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 원두 판매 원칙은 되도록 원두 판매와 함께 맛있는 커피를 내릴 수 있는 조언을 함께 해주는 것이다.

커피의 맛을 좌우하는 드립 중에 그는 무슨 생각을 할까. "아무 생각을 안해요. 생각(잡념)이 많으면 커피에 그 맛이 들어간다. 욕심을 부리고 커피를 잘 내려야지 하면 그 욕심이 커피에 들어간다. 힘을 빼고 중력으로 자연스럽게 물을 내린다. 한 번에 한 가지 맛과 향에 집중해야지 모든 맛을 다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더 맛이 망가진다."

맛있는 커피를 내리고 싶다면 과욕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드립의 마지막 과정에서 쓴 맛이 추출되는데 욕심을 부려 너무 길게 물을 내리면 쓴 맛이 따라 오기 때문이다.
본인의 노하우를 '안 드립'이라고 칭하는 그에게 '안 드립'의 맛은 어떤지 물었다. "첫 모금에는 진하게 들어오지만 천천히 향이 올라오면서 후미가 좋은 커피"라고 한다.


커피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커피의 생과 그의 생이 겹처 보인다. 커피를 만나기 전까지 그의 삶이 커피 원두를 로스팅 하는 전반부라면 커피를 만난 뒤의 그의 인생은 드립으로 원두의 맛을 뽑아내는 후반부라고나 할까.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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