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무역장벽 넘기도 버거운데… 유럽서도 설자리 잃는 中
2024.05.12 18:15
수정 : 2024.05.12 19:26기사원문
■'양' 줄인 美, '질'로 격차 벌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중이던 지난 2018년 교역 상대국의 불공정 무역행위에 따른 보복을 허용하는 미 무역법 301조(슈퍼 301조)를 발동했다. 중국산 제품에 품목별로 각각 15%, 25%의 보복관세를 부과하며 무역 전쟁을 개시했다. 그는 2020년 중국과 무역합의를 통해 보복 범위를 줄이고 일부 15% 제품군의 관세를 7.5%로 줄였으나 퇴임까지 중국과 대립했다.
지난 2021년 취임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전임자 트럼프를 비방하면서도 그의 대(對) 중국 보복 관세는 대부분 유지했다. 바이든 정부는 취임 초기 코로나19 창궐 및 국제 공급망 손상으로 물가가 뛰자 중국산 수입 확대로 물가를 잡으려 했지만 최근 중국이 수출 확대로 미 기업들을 위협하자 방향을 바꿨다.
두 대통령의 공세 결과 미국이 중국에 수출한 상품과 서비스 총액은 2018년 1805억9600만달러에서 2023년 1947억4300만달러로 늘었다. 반면 같은기간 중국에서 수입한 금액은 5583억2400만달러에서 4481억1200만달러로 감소했다. 5년새 미국의 대중국 상품 및 서비스 무역 수지 적자규모가 32%나 급감한 것이다. 바이든은 대중국 무역 적자가 줄어들자 중국이 미국의 기술로 미국을 따라잡지 못하게 막았다. 그는 특히 중국의 반도체 산업을 옥죄기 위해 '수출규제 명단(Entity list)'을 확대했다.
바이든 정부는 2022년 10월 미 기업들이 중국에 첨단 반도체 및 관련 생산 장비를 팔지 못하게 막았으며 수십 곳의 중국 반도체 기업들을 수출규제 명단에 올렸다. 미 경제지 야후파이낸스에 따르면 바이든은 약 2년의 임기 동안 319개의 중국 기업 및 조직을 수출규제 명단에 추가했고 이는 트럼프가 4년 임기 내내 추가한 숫자(306개)를 넘어서는 규모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8일 하원 청문회에서 "우리는 중국과 경쟁에서 (중국을) 압도해야 한다"며 "중국이 첨단 기술을 확보하지 않도록 우리가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산 덤핑에 놀란 유럽
경기 침체 속 물가하락(디플레이션) 위기에 처한 중국은 미국과 무역 전쟁이 계속되면서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중국은 부동산 경기와 소비가 모두 가라앉자 정부 지원으로 일단 공장을 돌린 다음, 살 사람이 없는 생산품을 유럽과 아시아 및 남미 등에 저가로 수출하는 이른바 '디플레이션 수출'에 나섰다.
중국과 거래에서 미국만큼 무역 장벽을 쌓지 않았던 유럽연합(EU)은 밀려드는 중국산 저가 제품에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저렴한 중국산 전기차와 태양광 패널 등 친환경 관련 제품들은 친환경 경제 전환을 추진하는 유럽에서 시장을 석권했다.
FT는 지난 3월 비정부기구이자 범유럽 환경연구단체인 유럽운송환경연합(T&E) 보고서를 인용해 지난해 유럽에서 팔린 전기차 가운데 19.5%가 중국산이라고 전했다. 이 가운데 비야디(BYD)를 비롯한 중국 브랜드의 전기차는 8%였으며 나머지는 미국 테슬라, 프랑스 르노, 독일 BMW 등 다른 브랜드의 중국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이다.
전체 중국산 비중은 올해 25.3%로 증가할 전망이며 이 가운데 중국 브랜드 비중은 11%까지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019년 중국 브랜드 비중은 0.4%에 불과했다. 2027년에는 20%까지 늘어날 예정이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10월 중국산 순수 전기차 생산에 불법적인 정부 보조금이 투입되었는지 조사한다고 밝혔다.
미 컨설팅업체 로디움그룹은 EU가 중국산 전기차에 15~30%에 달하는 관세를 부과할 수 있지만 이 세율로도 중국 전기차를 저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EU가 실질적으로 성과를 거두려면 관세율을 40~50%까지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현재 중국 전기차에 27.5%의 관세를 적용한다.
EU의 압박은 다른 무역 관행으로 번지는 추세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달 24일 중국 내 공공기관 의료기기 조달 과정에서 중국산 제품이 우대받거나 EU 기업들이 차별을 받는다며 직권 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EU는 9개월~1년2개월의 조사를 마친 뒤 중국과 차별 관행 해소를 위한 협상을 진행한다. 협상이 결렬되면 EU 공공 입찰에서 중국 의료기기에 같은 불이익을 줄 수 있다.
또한 EU의 유럽 의회는 지난달 23일 강제노역으로 제작된 수입품의 EU 판매 금지 법안을 가결했다. 법안은 늦어도 2027년부터 시행될 전망이며 중국의 신장 위구르 지역 생산품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추정된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