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자수전서 빛난 박정례 작품.."한땀 한땀 예술을 수놓다"

      2024.05.23 16:20   수정 : 2024.05.23 16:20기사원문

"저의 작품 소재는 여행이나 나들이 중 아름답게 느껴진 풍경이 수(繡) 화폭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자수로 한 폭의 그림을 선보이는 박정례 작가(67)의 작품들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빛을 보고 있다.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여행 중 얻은 사진 속 이야기들을 작품 속에 풀어낸 덕분에 관람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오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오는 8월 4일까지 현재 박 작가 작품 3점(전시 기간 내 총 8점 전시)을 비롯해 근현대 자수와 회화, 자수본 170여점, 아카이브 50여점을 전시하는 '한국 근현대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전을 덕수궁관에서 개최 중이다.

이번 전시는 19세기 말 이후 동시대에 이르기까지 급변하는 시대 상황과 미술계의 흐름 속에서 역동적으로 변화해 온 한국 자수의 다양한 면모를 소개한다는 취지로 기획됐다.


기획전에 초청된 박 작가는 이번 작품들을 통해 자연이 멀리 바라본 풍경이 아닌,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친근감 있는 소재들을 화폭에 담았다.

그는 "제가 하고자 하는 작품의 크기에 맞춰 잘려진 자연의 풍경이 소재로 표현되기도 한다"면서 "대부분의 풍경 작업들은 수가 놓아진 풍경에 저의 가족이나 친구들을 그대로 옮겨 놓을 수 있는 기억 속에 한 장면이 되는 게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박 작가의 작품 가운데 '제주도'는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기념 자수전에 출품했던 작품으로, 그림 속 풍경은 그가 남편과 여행했던 제주도 성산일출봉의 억새 풀밭이다. 자수로 제작했지만 실제 억새 풀밭의 모습을 선보이며, 억새마다 바람에 흔들리는 디테일을 강조했다.


'용인의 봄'이라는 제목의 작품도 이번 전시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 작품은 어느 봄날 그의 친구들과 용인민속촌에 나들이를 갔을 때 활짝 핀 개나리를 보고 떠올린 풍경 작품이다. 눈에 보였던 풍경을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 여러 겹의 수를 놓았다. 개나리 아랫부분의 돌멩이 표현이 미흡하게 느껴져 아쉬움이 남았다고 박 작가는 밝혔지만, 봄의 산천초목을 표현한 화려한 색감이 눈에 띈다.


또 다른 대표작인 '장미 정원'은 그가 아이들과 함께 미국 오리건주에 있는 장미 정원에 갔을 때 본 형형색색의 장미를 떠올리며 작업한 작품이다. 작은 형태의 장미꽃들이지만 각각 다른 크기와 색상을 한송이씩 표현하기 위해 실의 꼬임과 굵기를 송이마다 다르게 표현했다고 박 작가는 설명했다. 그림의 바탕은 전통적인 '평수기법'을 썼으며 장미꽃의 표현을 위해서는 현대 자수기법을 사용했다.


이밖에 '가을'은 그가 친구들과 여행을 했던 경북 어느 산길에서 얻은 이야기다. 단풍이 시작된 길녘은 여름 끝자락의 짙은 초록잎과 단풍이 시작된 잎의 조화로운 색상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줬다. 조화롭게 섞여서 각자의 잎을 드러내는 표현을 위해 짧은 땀의 스티치(stitch)를 꼬임을 강하게 준 실을 사용해 현대 자수기법으로 반복해 수를 놓았다.

박 작가는 "제 풍경 작업의 바탕감은 옥양목을 주로 사용했다"며 "바탕감에 색연필로 실제 풍경을 도로잉 한 후, 비단실로 실의 두께와 꼬임 등의 질감을 조절해 가면서 수를 놓아 작업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기획전 작품들을 보면서 방대하고 귀한 자료를 발굴하고 준비한 기획자의 수고가 느껴져 감사한 마음으로 관람을 할 수 있었다"며 "특히 관람객 중 젊은층과 외국인이 많아 우리의 문화가 계승되고 발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박정례 작가는 1956년 부산 태생으로 1975년 이화여대 섬유예술학과 입학 후 같은 대학원 의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양여대 섬유패션디자인과 교수로 후학 양성에 힘써왔다.
1985년 제10회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에서 입선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대한민국명장(자수공예 부문) 심사위원, 국가기술자격 검정 출제위원, 국제 장애인 기능 올림픽 대회 심사위원, 한국섬유미술가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자수와 섬유·디자인 교육 및 행정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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