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를 지우며 고요함을 채우다
2024.07.01 18:09
수정 : 2024.07.01 18:09기사원문
서라벌예대(현 중앙대) 미대를 졸업하고 대구로 내려간 최병소는 1974년 대구에서 최초로 열린 현대미술제인 '대구현대미술제'를 고 박현기, 이강소 등과 창단해 활동했고, 1975년에는 전위미술단체 '35/128'을 만드는 등 실험 미술의 선봉에 있었다.
작가가 신문지를 선택한 것은 1970년대 초부터다. 당시 30대였던 최병소는 유신 체제 속에서 제구실을 하지 못하던 언론에 분노하고 이에 항변하기 위해 신문기사를 볼펜으로 지우기 시작했다.
평소 신문을 즐겨 보던 그는, 언론 탄압으로 그가 경험했던 삶의 고통과 분노, 좌절감으로 신문지를 덮었다. 이렇게 항변으로 덮인 신문지가 군데군데 찢어질 때까지 작업을 지속했다.
1980년대 들어 신문 작업에 싫증이 난 최병소는 회화 작업을 시작했지만, 1990년대에 다시 신문 작업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1990년대 작업은 앞면만 지웠던 이전 작업과 달리, 앞뒤 양면을 다 긋고 지우는데, 이는 신문지가 두꺼워졌기 때문이다.
최병소의 작업은 몸으로 하는 노동이나 다름없다. 하루에 10시간 이상 긋고 지우고 채워가는 과정을 반복하면 고민과 상념, 분노는 사라지고, 고요함이 스며든다. 잠잠해진 그의 내면과 같이 신문지 위에 텍스트로 남아있던 복잡다단한 세상사는 제거된다. 케이옥션 6월 경매에 출품됐던 가로 세로 12×17㎝의 소품 '무제'는 800만원에 낙찰됐다.
손이천 케이옥션 수석경매사·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