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중재 나서야..중동에 적이 없는 유일한 나라”
2024.08.08 21:00
수정 : 2024.08.08 21: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가자지구를 전장 삼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충돌로 격화됐던 중동 지역 전쟁위기가 이스라엘과 이란의 정면 대결로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하마스의 최고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지난달 31일 이란의 신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자리에서 암살당하면서다.
하니예 암살을 계기로 이란은 이스라엘을 향해 ‘피의 보복’을 천명했고, 이스라엘은 이란을 상대로 ‘실존적 전쟁’에 돌입하겠다고 맞섰다.
양측 모두 전면전을 불사하겠다는 기세이지만, 실상은 확전에 대한 부담을 안고 있다. 전쟁을 이어가려는 실질적인 동기는 각기 내부에서의 정치적 이익일 뿐이고, 각자의 배후인 미국과 중국·러시아도 경제적 타격을 막으려 적극 중재에 나서고 있어서다.
화석연료 등 에너지 수입과 수출·입 바닷길을 중동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또한 중동전쟁이 커지면 직격탄을 맞게 된다. 이에 파이낸셜뉴스는 8일 중동전쟁 위기를 주제로 특별대담을 마련했다. 본지 노동일 주필과 이희수 성공회대 석좌교수 겸 이슬람문화연구소장이 나서 중동전쟁 위기가 우리나라에 끼칠 영향, 또 대응 방향에 대해 논했다.
다음은 노 주필과 이 교수의 일문일답.
―이스라엘과 이란, 또 하마스·헤즈볼라·후티반군 등 여러 적대세력들 사이에 전면전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우리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10월 하마스가 전격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한 것을 시작으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이스라엘 정권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11개월째 전쟁을 하고 있다. 하마스의 공격은 명백한 테러행위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지만, 그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4만명에 가까운 민간인 희생자가 나오자 국제여론이 오히려 반(反) 이스라엘 쪽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에 네타냐후 정권은 전쟁을 빨리 끝내야 하는 상황이 됐지만, 하니예 암살로 전혀 새로운 국면에 도달했다.
―말씀하신 대로 국제여론이 이스라엘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더구나 휴전협상이 진행 중이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왜 2000km나 떨어진 이란으로 간 하니예를 암살하는 강경책을 쓴 것인가. 전쟁을 더 끌고 가려는 의도라고 보나.
▲전쟁을 더 끌려는 게 1차적인 목표 같다. 네타냐후 총리는 극우 연립내각으로 집권 중인 상태로 지지율이 20%대밖에 되지 않고 부패스캔들로 사법리스크까지 걸려있다. 그런 상황에서 지난해 10월 본토가 공격당해 1200명의 무고한 민간인들이 희생돼 안보 책임론까지 불거졌다. 하지만 전쟁 중에는 장수를 바꾸지 않지 않나. 네타냐후 정권은 전쟁이 종식되면 정치적 생명이 끝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전쟁을 오래 끌고 싶을 것이다. 개인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국가 전체의 이익을 손상시키는 나쁜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이란으로선 정말 체면을 구겼다. 수도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 그것도 혁명수비대 사령부의 안가라 불리는 건물이 폭파되며 하니예 암살이 이뤄졌다. 아무리 국제사회의 비난, 아랍 국가들의 만류가 있어도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순 없는 상황인 것 같다.
▲이란 대통령보다 상위인 율법의 책임자인 최고지도자가 이스라엘 본토 공격을 명령했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공격하지 않을 순 없을 것 같다. 다만 이란과 이스라엘, 또 미국까지 어느 나라도 지금 이 시점에서의 확전을 원하진 않는다. 그래서 이란의 고민은 확전은 피하면서 명분은 세워 국내 비난여론을 잠재울 카드이다. 또 다른 고민은 혁명수비대가 직접 관장하는 안가에 있던 외국의 지도자가 암살당했다는 건 이란의 보안이 이스라엘에 의해 뚫렸다는 의미라 정보시스템 변화와 책임자 처벌에 따른 내부의 큰 소용돌이일 것.
―일각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이란에서 미국과 협상해보겠다는 온건파인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나오고 하니예는 휴전협상을 주도하다 보니, 이스라엘이 이런 상황을 무산시키고 이란의 내부갈등을 부추기려는 목적으로 암살했다는 추측이다.
▲하니예가 암살되기 일주일 정도 전에 팔레스타인 내에서 갈등을 빚던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맞서는 단일대오를 형성했었다. 시민들이 죽어나가는데 우리끼리 정치싸움을 할 때가 아니라면서 중국의 중재로 베이징에서 획기적인 연합을 했다. 서안지구 예산의 40%를 대주면서 이간질을 시켜왔던 이스라엘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인 것이다. 그래서 이를 깨버리려는 게 하니예 암살의 목적 중 하나였을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말씀하신 대로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이란이 미국과 협상해 45년째 고통 받는 경제제재를 해소하겠고 하니, 이스라엘로선 정말 견딜 수 없는 시나리오이다. 그래서 하니예 암살을 통해 혁명수비대와 최고지도부, 기업, 대통령 사이에 정치적 갈등을 유발한 것.
―그렇게 이스라엘을 향한 공격을 앞두고 있는 이란이 이슬람협력기구(OIC) 긴급회의를 요청했다. 하지만 아랍 국가들이 모두 이란을 지지하는 건 아니지 않나. 종교적 정파도 다르고, 사우디아라비아 등 왕정 국가들은 이란의 혁명으로 자신들에게 불똥이 튈까봐 경계한다고 한다. 일치된 목소리가 나올 수가 있나.
▲일치된 목소리가 나오긴 어렵지만,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학살을 두고 이슬람권 전체가 불편해하고 있다는 점이 있다. 주목되는 건 이란이 이스라엘을 공격할 때 중동 국가들이 보일 대응이다. 앞서 지난 4월 이스라엘이 2000km 떨어진 시리아에 있는 이란 영사관을 폭격할 수 있었던 건 문제는 이번에 이란이 이스라엘에 미사일을 쏜다고 했을 때이다. 사우디와 요르단은 당연히 용납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란이 동의를 받지 않고 미사일을 쏠 경우 사우디와 요르단이 격추까지 나설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이다.
―이란이 직접 공격하지 않더라도 레바논의 헤즈볼라나 예멘의 후티 반군 등을 동원해서 대리전을 할 수 있지 않나.
▲말씀하신 대로 후티 반군, 헤즈볼라, 또 시리아에 있는 이란 민병대 등 세력들이 이란의 군사적 후원 하에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공격을 할 수도 있다. 헤즈볼라는 수십만개의 미사일을 보유한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군 조직 중 하나인 만큼, 헤즈볼라를 중심으로 후티 반군과 민병대까지 동시다발적인 공격을 해 이스라엘의 ‘아이언돔’ 방어 시스템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문제는 공격 수위이다. 우선 모욕을 당한 이란의 국민들의 분노를 잠재워야 해서 상징적인 공격에 그치지 않고 강력한 공격을 해야 한다. 이스라엘 본토와 전력의 40%를 차지하는 핵심 전략시설인 지중해 가스·유전 시설을 폭격하는 시나리오가 나온다. 그러나 동시에 이스라엘을 지나치게 자극해 전면전을 유발하지는 않아야 해서 쉽지 않다. 미국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도 전면전을 막으려 본격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특히 미국 입장에선 11월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쟁이 커지면 현 민주당 정부가 어려워질 수 있다.
―말씀하신 미 대선이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네타냐후 총리가 하니예 암살 며칠 전에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을 만났음에도 귀띔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네타냐후 총리가 ‘하니예 암살이 휴전 협상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니 바이든 대통령이 ‘헛소리 좀 그만하라’며 정상 간의 대화에선 있을 수 없는 용어가 나올 만큼 분노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확전이 대선에서 민주당을 불리하게 만들 것이라고 느끼는 것이지 않나.
▲전쟁이 일어나면 민주당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중동 전쟁까지 일어난다면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에 치명상을 입게 된다. 더구나 휴전 협상안은 미국이 낸 것이었다. 협상 상대인 하니예를 제거한 건 미국으로선 이스라엘에게 뒷통수를 맞은 격이다. 결국 중동 전쟁에서 미국이 거의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라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 실패라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네타냐후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을 바란 것이 아닐까. 바이든 대통령과 또 민주당 대선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의 일방적인 행동을 비판하는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우호적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을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설명하자면 미국은 현재 중동 석유를 한 방울도 수입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지난 50여년과 다르게 중동을 떠날 수 있다. 그러면 이스라엘 홀로 중동을 관리해야 하는데 힘이 든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기에 온건한 아랍 산유국과 이스라엘 간에 외교관계를 수립토록 해서 중동을 리모트 컨트롤을 하겠다는 마스터 플랜을 짰다. 그런데 바이든 정부로 넘어갔고, 사우디와의 수교 협상은 하마스와의 전쟁 탓에 유보됐으며, 미 대선도 변수가 생겨 해리스 부통령의 인기가 올라가고 있다. 특히 해리스 부통령이 당선되면 과거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타결했던 이란과의 핵 협상을 재개할 가능성이 있다. 이스라엘이 고립무원이 되는 것.
―중동 전쟁으로 인해 우리나라에 다가올 위험은 어떤 것이 있나.
▲중동에는 5000여개의 우리 기업이 진출해있고, 우리가 쓰는 에너지의 거의 대부분을 중동에서 수입해 의존하고 있으며, 호르무즈 해협과 수에즈 운하가 막히면 물류가 아프리카 쪽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기업들이 막대한 비용을 감당해야 해 직격탄을 맞는다. 거기다 최근 사우디를 중심으로 비전2030 사업으로 1350조원 규모 인류사 최대의 공사가 벌어지고 있는데, 전체 수주의 13% 정도를 우리 기업이 맡고 있어 산업의 원동력이다. 우리와 거리는 멀지만 ‘생존적 파트너’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중동 문제를 제3자 방관적인 입장에서 보지 말고 적극적으로 평화 중재자로 나서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로서 누구보다도 평화를 갈구하는 나라이다. 또 이스라엘과 이란 양측 모두와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 아랍 국가들과 관계를 가진 G20(주요 20개국) 국가들 중 거의 유일하게 적이 없는 나라가 우리나라이다. 때문에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방관자가 아닌 평화 중재자로서 이니셔티브를 갖고 적극적으로 중동 문제에 개입하는 전향적 외교가 필요하다. 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경제제재를 하는 건 국제적인 결의가 아니라 미국의 입장이다. 한미동맹의 틀은 유지하면서도 우리 국익에 맞는 독자적인 전략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이란과 공공외교와 문화·학계 교류를 해놓는다면,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개선됐을 때 8500만명 인구 이란의 어마어마한 시장으로 진출하는 하부 구조를 구축하게 된다.
정리=uknow@fnnews.com 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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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know@fnnews.com 김윤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