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재판소가 ‘관습헌법’ 개념을 도입해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 판결을 내린 이후, 특정 법률안에 대해 관습헌법임을 주장하는 헌법소원들이 줄을 이을 태세다.
최근 한 성매매업주 모임이 ‘성매매는 역사적으로 인정돼온 관습헌법’이라며 헌소를 제기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성균관도 ‘호주제는 고려시대부터의 고유한 전통’이라며 민법 개정안에 대해 헌소 검토의사를 밝힌 바 있다.
한나라당도 헌재의 위헌 판결의 탄력을 이용, 여당의 ‘4대 개혁법안’에 대해 헌소를 추진할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임태희 대변인이 뒤늦게 나서 부인했지만 박근혜 대표와 김덕룡 원내대표 등은 헌소 가능성을 강하게 흘리고 있어 여당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헌소 제기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게다가 위헌 판결을 이끌어낸 이석연 변호사도 사립학교법 개정안에 대해 헌소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바야흐로 한국에 헌재와 헌소 만능시대가 온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돈다.
이같은 현상 때문에 헌재가 ‘관습헌법’이라는 개념을 우리사회에 꺼낸 것이 판도라의 상자(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가 인간의 모든 죄악과 재앙을 넣어 판도라에게 준 상자)를 연 게 아닌가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헌재 만능주의’ 탓에 국회와 대통령을 비롯한 공권력을 경시하는 분위기가 확산되지 않을까 하는 위기의식도 커 보인다.
우리사회에서 ‘다소’ 생소한 ‘관습헌법’ 개념을 도입해 내린 판결이 ‘관습헌법’ 위반여부를 가려달라는 줄소송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걱정도 있다.
벌써부터 일부 네티즌은 법을 고쳐서 할 수 있는 일들인 태극기 변경, 영어공용화, 행정구역 개편, 장자상속제 변경 등 조차도 헌소를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전례가 없고 현재 법리적 공방이 치열한 것도 사실이고 헌재 판결로 참여정부가 심혈을 기울여온 정책들이 물거품이 돼 국가적 손실이 생겼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지만 헌법의 최후의 보루인 헌재의 판결은 그것대로 존중하는 게 민주사회 아닐까. 헌재가 우리사회에 다소 생소한 ‘관습헌법’의 개념을 도입했다고 해서 관습헌법을 들먹이는 소송을 제기하면 혼란만 가중하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 libero@fnnews.com 김영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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