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달콤하지 않은 인생’에 대한 총질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5.03.30 12:48

수정 2014.11.07 19:50



‘조용한 가족’ ‘반칙왕’ ‘장화, 홍련’ 등을 선보였던 영화감독 김지운(41)이 네번째 장편영화 ‘달콤한 인생’(배급 CJ엔터테인먼트·제작 영화사 봄)을 통해 한껏 멋을 부렸다. ‘액션 느와르’라는 장르를 통해 ‘폼생폼사’의 진면목을 100% 구현하겠다는 듯 잔뜩 어깨에 힘을 준 그의 모습이, 그러나 보기 좋다.

한 남자의 돌이킬 수 없는 복수극을 핏빛 영상으로 담아낸 ‘달콤한 인생’은 두 개의 선문답으로 이야기를 열고 닫는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며 제자가 스승에게 묻는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제자의 우문에 대한 스승의 대답이 걸작이다.
“무릇 모든 움직임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영화의 처음을 장식하는 첫번째 선문답은 이번 영화를 독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의 하나를 제시한다. 바로 ‘흔들림’이다. ‘매혹’의 다른 이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말은 정확한 판단력과 냉정한 일 처리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조직의 ‘넘버 2’ 선우(이병헌)가 왜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몸을 내던지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사랑’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찰라의 만남이었지만 선우는 보스(김영철)의 젊은 여자 희수(신민아)를 보는 순간 마음이 심하게 흔들렸던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 아닐 수도 있지만 적어도 매혹의 범주 안에는 들어와 있는 감정 상태다.

남자들의 어두운 세계를 ‘폼나게’ 그리던 영화는 마지막 부분에 또하나의 선문답을 배치한다. 이번에는 스승이 먼저 말을 건다.

“좋지 않은 꿈을 꾼 모양이구나.”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너는 왜 울고 있느냐?”

이번엔 스승의 우문에 제자가 현답을 던진다.

“그 꿈이 이뤄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선문답 역시 이번 영화를 이해하는 또하나의 화두다. 그것은 바로 ‘달콤함’이라는 말이 주는 역설이다. 한국영화로서는 낯선 권총(38구경 리볼버)을 주요 이미지로 활용하며 남자들의 거친 싸움을 처절하고 아름답게 그려낸 ‘달콤한 인생’이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인생은 결코 달콤하지 않다’는 평범한 진리였던 셈이다. 영화감독 김지운은 이 역설적인 한마디를 하기 위해 관객을 향해 ‘세게’ 총질을 해댔다.


두번째 선문답이 끝난 뒤 감독은 뜬금없이 선우가 도심의 불빛을 배경으로 섀도 복싱을 하는 장면을 끼워넣는다. 자신의 얼굴을 응시하며 서너차례 앞으로 쭉쭉 내뻗는 두 주먹이 붉은 네온사인과 겹치며 빛난다.
그러나 그 헛손질이 우리들 인생처럼 그저 허망하기만 하다. 18세 이상 관람가. 4월1일 개봉.

/ jsm64@fnnews.com 정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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