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타게 찾고 있죠. 온 가족이 어디 안가본 데가 없어요. 너무 오래 전 일이라 이제는 어떻게 자랐을까 몹시 궁금해요.”
큰 아들 정신문씨(26·1979년 7월10일생)를 찾고 있는 어머니 권우석씨(46)는 깊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위암으로 투병 중이라는 권씨는 신음이 섞인 목소리로 힘겹게 말을 이었다.
아들을 잃어버린건 신문이 3살 무렵, 걸음을 걷고 말을 하며 한창 ‘예쁜 짓’을 할 때였다. 지난 82년,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던 아버지 정대근씨(49세에 간경화로 사망)가 집을 나서는 길에 신문이 그 뒤를 따라나섰다. 대문앞에서 정씨는 아들에게 들어가라고 손짓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못한 채 급히 떠났다고 한다. 아이가 당연히 아빠와 함께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권씨는 저녁에 정씨가 혼자 돌아왔을 때에야 아들이 없어진 사실을 알았다.
“신문이가 아빠 뒤를 쫓아가더라고 옆집 아이가 얘기해줘서 나중에야 알았어요. 아빠 찾겠다고 멀리까지 걸어 나갔다가 길을 잃은 것이지요. 아이가 총명하고 말은 잘 했는데 너무 어려서 자기 이름도, 집도 기억하진 못했을 거예요.” 그날 일을 생각하면 권씨는 억장이 무너진다.
당시 살던 집은 경기도 동두천 어수동역 근처 였다고 한다. 당시 신문이의 친 할아버지인 정상식씨(86)는 연탄가게, 쌀가게, 품목가게 등 여러 큰 점포들을 운영하고 있어 동네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아이가 할아버지랑 똑같이 생겼다고 사람들이 신문이를 ‘작은 할아버지’라고 부를 정도였어요. 할아버지가 첫 손자라고 얼마나 예뻐했는지 맨날 옷 속에 넣고 다녔지요.” 자신을 꼭 닮았던 귀한 첫 손자를 잃어버린 후 할아버지의 상심은 컸다. 당시 파출소 소장을 지내고 있던 친구를 앞세워 손자를 찾으러 안다녀 본 곳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를 봤다는 사람도, 아이에 대한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그의 아버지인 정대근씨는 아들을 찾지 못하고 2002년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권씨도 위암이 이미 초기단계를 넘어섰지만 잡안 사정이 어려워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은 몸이 아픈 엄마를 대신해 신문이가 실종 된지 2년 후에 태어난 동생 진희씨(22)가 형을 찾고 있다. “엄마가 아프니까 형을 더 많이 그리워 하세요.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아파요.” 얼굴을 보기는커녕 세상에서 1초도 함께 숨쉬어 본 적 없지만 그는 하루라도 빨리 형을 찾고 싶단다. 형이 나타나면 엄마의 병이 기적처럼 나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신문이에게 기억할 만한 특징이 없느냐고 물었다. “사실 기억나는게 별로 없어요. 신문이가 잘못했을 때 제가 뜨게질 하던 대바늘로 때린 적이 있는데 혹시 그게 기억에 남아 있을지 몰라요. 다른 건 모르겠어요.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서.” 희미해진 기억이 안타까운지 권씨는 여러 번 시간을 탓했다. “어딘가 살아있겠죠? 더 아파지기 전에 우리 큰 아들 한번 봐야할텐데….” 앞으로 자신에게 남겨진 날이 얼만큼인지도 가늠할 수 없는 그는 흘러가는 하루하루가 그저 아쉽기만하다.
/ seilee@fnnews.com 이세경기자
■사진설명=당시 3세였던 신문이가 실종되기 얼마 전 강원도 외갓집을 찾았을 때, 인근 성당 앞마당에서 엄마 권우석씨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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