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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 중국 까불지 마라” 박서보화백 베이징서 개인전 주목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7.09.22 13:59

수정 2014.11.04 23:55

【베이징=박현주기자】20일 중국 베이징 지우창. 우연히 들른 아라리오갤러리에서 뜻밖의 횡재(?)를 했다. 곳곳에 붙어있는 박서보화백 개인전 포스터. 혹시나 하고 들어선 전시장엔 박서보화백의 목소리가 쩡쩡 울렸다.

“몇㎝야. 2m10에다가 그걸 끊어 걸어. 그렇지.2m24가 되는 거야. 높이가. 조금 더 올려∼그래 그 정도. 1m 20이니까 2 m10에다 박으면 돼. 그게 9Cm거였거든. 내가 재봤어. 저 정도면 됐어. 너무 높으면 그림이 건방을 떨어. 편안해야지.”

반짝이는 민둥머리,하늘색 반팔티에 하얀 면바지를 입은 박화백. 전시에 앞서 그림을 손수 걸기 위해 지난 19일 베이징에 왔다고 했다. 아라리오갤러리 큐레이터, 그림을 거는 인부들을 진두지휘하며 뱅 둘러쌓인 그림속에서 행복해보였다.

중국에서 박화백의 첫 개인전이 22일∼11월 8일까지 개최된다.
이번전시는 2000년부터 시작한 핑크 라임 푸른색등 밝은 색상의 묘법 시리즈를 중심의 80∼90년대의 흑백묘법 작품도 함께 전시된다.‘묘법 시리즈’는 50년 동안 이루어낸 ‘수신과 치유의 예술관’ 이 결집된 전시이다.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의 전시를 앞두고 중국은 물론 세계각국의 언론이 주목하고 있다. 내년 4월엔 뉴욕아라리오갤러리에서 개인전도 앞두고 있다.

규칙적인 생활로 작업은 물론 건강도 문제없다는 그는 영락없는 피카소 같은 모습이다.

■이번 전시의 특징은 무엇인가.

-이번에 평생해온 묘법이 전부 등장한다. 그동안 묘법시대를 동시에 보인적이 없다.그런데 왜 중국에서 다 보여주는냐. 중국이 현대미술로 뜨고 있지만 중국은 70년대 현대미술을 전혀모른다. 이번에 소개하는 작품중에는 비엔나에서 전시한 75년작품도 있다.나는 중국의 블루칩작가들이 어릴때부터 현대미술을 해온 사람이다.중국인들 까불지 말라는 의미가 담겼다.89년에 블란서에서 전세계 24명을 초대한 혁명 200주년 기념전에 출품한 작품도 있다. 어디에도 발표 안한 것이다. 중국이 현대미술 걸음마도 안할때 나 이렇게 했다고 보여주는 것이다.하하하”

박화백은 1956년 한국 반아카데미즘의 선두에서 한국전쟁 전후의 뜨거운 추상미술을 주도하며 60∼70년대 ‘원형질’ ‘유전질’시리즈를 거쳐 80년대부터 현재까지 단색회화, 모노크롬의 ‘묘법’ 시리즈를 전개해 왔다 . ‘묘법’ 이란 불어로 ‘쓰기’ 를 의미하는 데 구체적인 형상없이 행위로써 자신을 수신하는 작가의 방대한 작품세계를 요약한다.

■요즘 다시 추상회화로 바람이 불고 있는 듯하다.국내에서 박화백그림을 다시 찾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내 작품찾는 사람이 그냥 많은 정도가 아니다. 수없이 연락이 온다. 하지만 나는 문을 닫았다.(작품을 안판다는 이야기다) 돈은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된다. 굶지 않을 정도로. 아라리오(7월4일 전속계약)요청이 아니라 내 스스로 그랬다. 이제 나는 세계시장을 무대로 뛰어야한다. 목표대로 이뤄지고 있다.내년 4월 열리는 뉴욕전람회는 내 일생일대의 최고의 전람회가 될 것이다. 화려하고 오묘한 색감이 나올 것이다.”

박화백이 팔을 보여줬다. 긁힌자국이 군데 군데 있다. 오묘한 색감을 내려다 나온 ‘영광의 상처’다.

“색을 개다보면 색이 온몸에 튄다. 작업이 끝나면 팔뚝에 말라비틀어진 물감이 덕지덕지 묻었다. 이건 그냥 안닦인다. 쇠수세미로 박박 문질러야 닦인다. 요즘 진짜 색이 환상적이다.20대들이 발상할수 있는 색을 이미 진행하고 있다.”

■핑크도 아니고 빨강도 아니다.원색이지만 거부감을 주지 않고 스며드는 밝은 색감이다.

-저기 있는 저 핑크색으로 보이는 것. 저 작품을 제일 나중에 그렸다.저 색감을 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전시에 내걸릴 최고 시간까지 연장해서 마무리한 것이다. 핑크도 그냥 핑크색이 아니다. 벗꽃색에 회색을 덮었다. 오묘하지 않은가. 저 색감을 만들려고 수없이 색을 개서 종이에 칠해봤다. 파레트에서 갠 색들이 종이엔 안나온다. 수성은 말라봐야 안다. 물에 있을때하고 틀리다. 그냥 컬러플하면 맛이 없다.자꾸 씹어보고 싶은 자꾸 음미하고 싶은 색감을 만들어낼 것이다.

■50여년간 반복의 묘법시리즈를 해왔다. 현대미술, 도대체 무엇인가.

-21세기 디지털 시대의 예술은 작가의 쏟아낸 개성으로부터 폭력을 당하는 예술이 아니며 , 이제 예술은 현대인의 받는 스트레스와 상처를 치유하는 예술이어야 한다. 현대미술이 무게를 가져선 안된다. 아날로그 시대엔 무게가 있었다. 표현이란 이름으로 쏟아내는 폭력이다.

21세기는 정보전환속도가 빠르다. 지쳐서 나가떨어지는 힘든 생활의 연속이다. 예술도 삶의 한 단계이지 않는가. 현실속에서 지쳐서 다 충격을 받고 있는데 거기다 또 충격을 줘?. 안된다. 무게감을 빼야한다. 우리말로 사뿐히 내려앉는것. 사뿐이라는 말로 모든게 변해야 한다. 아날로그 시대는 일방적으로 표현하는 것. 그림이 보는 사람에게 발신하는 것이 아니라 흡인지처럼 되어야 한다. 이제 현대미술은 보고 있으면 안정되고 불안한 심리상태가 편안하게 되어야 한다.

‘묘법시리즈’. 연필로 파여진 골, 밭이랑처럼 선이 그어져 있다. 긋고 또 긋고, 철저한 계산에서 반복된 되풀이 되는 행위를 통해 완성된다. 명상. 수행이다. 박화백은 이 완성의 시간동안 자신을 비워낸다. 이 수신 행위는 한국 고유의 종이 한지 위에서 완결되는데 , 한지는 몇 번의 삶기와 말리기의 과정을 거쳐 자체의 생명력을 발산하며 돌출된 선들에 생동감있는 리듬감을 주는 동시에 반복 행위로부터 오는 ‘시간’ 과 순환하는 ‘자연’과의 유기적 관계를 흡수해 준다.

■드로잉 80점 200호이상 500호 50점, 100호,120호 130호 10점, 25호 6점(시리즈)등 박화백의 전생애를 보여주는 전시다.기분이 어떤가.

-중국인들이 만만하게 안보일 것이다. 내그림을 보고 있으면 스윽 빨려들어간다고 하더라.이제 시작이다.세계를 무대로 놀것이다. 가능하다고 본다. 건강도 좋고 난 14시간 규칙적으로 생활한다. 점심은 아내가 싸준 도시락에 과일과 인절미 2개를 먹는다. 집에가서 저녁먹고 일기를 쓴다. 이후엔 또 에스키스를 한다. 묘법을 계속 변화시키고 있다.50여년간 그림을 그려오면서 이제야 나도 개념을 버렸다. 개념이라는 것이 예술의 있어서 지지대 역할을 하지만 지지대의 노예가 되면 안된다. 나는 요즘에 제일 좋다. 원하는 대로 그린다. 진짜 평생 변하가고 싶은대로 변하는데 잘되고 있다. 내 그림보면서 편안하다. 만족한다. 요즘 난 최고로 행복하다.”

■후배작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나는 절대로 노력하지 않으면 얻어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뭇 천재들을 봤지만 나는 부러워한적이 없다. 난 그들이 가진것을 다 갖고 있다. 전세계를 휘둘던 스텔라도 지금은 시들어있다. 노력하지 않으면 얻어지지 않는다.

작가가 자기를 파먹는다. 그러면서 자기를 심화한다고 한다. 변화만이 심화다. 지속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하지만 또 변화하면 추락한다. 야스퍼존스도 변화해서 추락한다.
하지만 스텔라처럼 또 변화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아니러니하지만 변화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그동안 내 그림을 관심있게 봐왔다면 내가 얼마큼 변해왔는지 알 것이다.

/hyun@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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