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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 시네마] 뻔뻔한 딕& 제인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8.02.20 15:40

수정 2014.11.07 12:34



IT기업 글로보다인에 근무하는 딕은 어느 날 갑자기 회사의 홍보담당 부사장으로 승진한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부사장으로 첫 출근한 그는 한 TV경제 프로그램에 출연해 건실한 줄로만 알았던 회사가 파산 직전에 있음을 알게 된다. 영문을 알 리 없는 딕이 글로보다인의 실적 부진과 경영실패의 원인을 묻는 사회자의 날카로운 질문에 진땀을 흘리는 사이 회사의 주가는 폭락하고 마침내 회사는 파산에 이른다. 결국 회사의 홍보담당 부사장으로서 딕이 ‘홍보’한 것은 회사 경영진의 무능뿐이었고, 그것이 그의 마지막 업무가 된 셈이다.

그런데 이는 모두 글로보다인의 회장 잭 맥컬리스터의 음모였다.
그는 그동안 부정 회계를 통해 회사 재산을 빼돌리고, 경영이 악화되자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모두 팔아 치운 후 회사를 파산시키려는 계획을 실행해 왔다. 순진한 딕을 홍보담당 부사장으로 승진시킨 이유도 딕으로 하여금 회사 파산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도록 함으로써 자신의 계획을 완성시키려는 것이었다. 잭의 이런 음모 때문에 딕을 비롯한 글로보다인의 사원들은 실직자 신세로 전락하고, 주주들은 큰 피해를 보게 된다.

딕은 새로운 일자리를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같은 회사에 다니던 동료들 역시 일자리를 잃고 구직에 몰리면서 취업의 문은 더더욱 좁아진다. 딕은 번듯한 직장 구하기를 포기하고 할인마트 판매원이나 일용직 노동자로 나서 보지만 그마저 여의치 않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딕은 급기야 아들의 물총을 들고 노상강도로 나서고, 남편을 말리기 위해 따라나선 아내 제인이 강도 행각에 합세하면서 이들 두 사람은 ‘부부강도단’이 되기에 이른다.

점점 대담해진 강도 행각을 벌이던 딕과 제인은 글로보다인 사의 옛 동료들이 마리화나 재배, 투계장 운영, 은행강도 등과 같은 범죄행위로 생계를 이어가는데 비해 회사를 파산시킨 장본인인 회장 잭은 여전히 여유로운 삶을 즐기고 있는 사실에 경악한다. 딕과 제인은 이런 부조리한 현실을 바로 잡기 위해 잭에 대한 복수를 결심하고 깜짝 놀랄 계획을 세운다.

우리 옛 속담에 ‘사흘 굶고 담 안 넘을 놈 없다’는 말이 있다. 생존의 문제 앞에서 법이나 도덕은 무력하다는 의미다. 비슷한 맥락에서 맹자는 “백성에게 항산(恒産:일정하고 안정된 생업)이 없으면 항심(恒心:늘 지니고 있는 올바른 마음)이 없고, 항심이 없으면 방탕하고 편벽되며, 사악하고 사치스러운 짓을 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죄악에 빠진 백성을 벌주는 것은 그물을 쳐 잡는 것과 같습니다. 인정(仁政)을 베풀고자 하는 임금이 어찌 그물을 쳐서 백성을 잡는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여기서 맹자가 말한 ‘그물을 쳐 잡는 것’의 의미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해 놓고 죄를 지은 사람을 처벌하는 것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것이다.

맹자는 백성에게 안정된 생업이 없을 경우 올바른 마음을 잃고, 죄를 저지르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항산을 잃어 죄를 지은 백성을 처벌하는 것은 어진 임금으로서 정당하지 못한 처사라고 충고하고 있다. 백성들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외면한 채 그들을 벌하는 것은 옳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맹자의 충고는 영화 속 딕의 처지를 적절하게 설명해준다. 정직하고 선량했던 딕이 강도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항산(안정된 직장)을 잃어 항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마리화나를 재배하고, 불법 투견장을 운영해 생계를 이어가는 그의 옛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사회 환경에 내몰린 사람들의 죄를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다. 따라서 우리는 이 영화로부터 개인이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사회 환경의 부당함과 그 해결책 모색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다.

개인을 범죄로 내모는 사회적 환경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문제의 원인이 사회적 환경에 있는 만큼 그 해결 역시 사회 환경의 개선에서 찾아야 한다. 영화의 결말은 그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딕과 제인은 철저한 준비 끝에 잭으로 하여금 글로보다인에서 빼돌린 재산을 실직자를 위한 연금기금으로 내놓도록 만든다. 즉 직장을 잃은 동료들이 안정된 삶 속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안전망’을 마련한 셈이다.

앞서 인용한 맹자의 말씀은 다음과 같은 구절로 이어진다. “명철한 군주는 백성들의 생업을 마련해주어 위로는 부모님을 섬길 수 있게 하고, 아래로는 처자들을 먹여 살리도록 해줍니다. 풍년이 들면 배불리 먹고 살며, 흉년이 들어도 굶어 죽지 않도록 해줍니다. 그런 뒤에야 그들을 이끌어 선한 길로 나아가게 합니다.”

평범한 시민들이 생활고에 못 이겨 범죄에 뛰어드는 것은 비단 영화 속 이야기뿐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생계형 범죄가 왕왕 발생하곤 한다.
심지어 생활고를 비관해 일가족이 동반자살하는 비극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우리 사회도 항산을 마련할 사회안전망이 시급하다.
우리사회의 항산을 위한 안전망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고민해 볼 때이다.

―박진성, ㈜엘림에듀 논술연구소

■본문의 ‘맹자’ 인용문과 관련된 논제는 동국대, 성균관대 2005년 수시1학기 논술고사를 참고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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