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조직에 잠입한 비밀경찰과 경찰에 숨어든 조직폭력배. 뭐 생각나는 게 없는가. 그렇다. 지난 2002년 홍콩 느와르의 부활을 알린 ‘무간도’의 스토리 라인이다. ‘무간도’는 할리우드에까지 이야기가 팔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디파티드(2006년)’로 만들어졌다. ‘무관의 제왕’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게 첫 오스카 트로피를 안기며 아카데미 4관왕에 오른 ‘디파티드’는 그해 최고의 영화로 떠올랐다.
모방과 리메이크가 문화산업의 가장 중요한 전략의 하나로 채택되고 있는 지금, 이야기를 빌려오고 아이디어를 차용하는 것까지 뭐라고 할 이유는 없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도발적 발언이 아니더라도 현대사회는 오리지널과 카피본이 모자이크처럼 어지럽게 뒤섞여 있는 ‘모방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어디선가 가져온 이야기와 아이디어를 해체하고 재구성해 전혀 새로운 작품을 창조해내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몫이 됐다는 얘기다.
정준호·정웅인·정운택 등 ‘조폭 코미디의 달인’들이 다시 뭉쳐 만든 ‘유감스러운 도시(감독 김동원)’는 대놓고 ‘무간도’를 베낀다. 영화의 큰 틀은 할리우드로도 그 이야기가 팔려나간 ‘무간도’ 그대로다.
그러나 영화 속 자질구레한 에피소드들은 ‘무간도’가 아니라 한국식 조폭 코미디의 대명사인 ‘두사부일체’에 젖줄을 대고 있다. 출연진도 ‘두사부일체’ 1·2편에 나왔던 그대로여서 마치 ‘두사부일체’ 시리즈 중 한 편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유감스러운 도시’가 ‘두사부일체’ 시리즈에 상당 부분 빚지고 있다는 사실은 ‘조폭의 경찰 되기’라는 설정에서도 증명된다. ‘두사부일체’가 ‘학교에 간 조폭’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면 ‘유감스러운 도시’는 ‘경찰이 된 조폭’이라는 기존 시리즈의 또다른 변주라는 점에서 그렇다. 여기에 ‘조폭과 경찰의 역할 바꾸기’라는 ‘무간도’의 설정이 뒤얽힌 형국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유감스러운 도시’에는 새로움이 전혀 없다. 기존의 익숙한 것들을 가져왔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통해 ‘또다른 무엇’을 재창조해내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는 얘기다.
비유하자면 ‘유감스러운 도시’는 일종의 ‘정크푸드’다. 현대인의 비극은 정크푸드의 유혹에 늘 노출돼 있다는 사실이다. 열량은 높지만 영양가는 낮은 정크푸드가 몸에 좋을 리 만무하지만 정크푸드 소비는 줄지 않는다. 간혹 그것이 맛있다고 열변을 토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유감스러운 도시’의 만듦새에 관해서는 배우들도 인정하는 바가 있다. 지난 12일 서울 용산 CGV에서 열린 기자시사회에서 출연진 중 한 명은 “아주 잘 만들어서 1∼2명이 보는 영화보다는 조금 아쉬워도 7∼8명이 재미있게 보는 영화가 필요한 시기”라면서 “이번 작품이 재미있는 웃음과 활력을 느낄 수 있는 영화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올해 개봉하는 첫 한국 영화이자 설 연휴 극장가에 내걸리는 유일한 한국 영화인 ‘유감스러운 도시’의 흥행성적이 문득 궁금해진다. 15세 이상 관람가. 22일 개봉.
/jsm64@fnnews.com 정순민기자
■사진설명=‘유감스러운 도시’ 출연진 정웅인 정운택 정준호(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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