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자유화, 개방바람이 불기 훨씬 이전인 지난 1964년 2월 10일. 수입금지가 된 청어 2000상자가 부산세관에 들어왔다는 라디오뉴스가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이 뉴스는 곧 다가오는 설을 앞두고 대목을 노려 수입한 수산물로 오해를 주기에 충분한 데다 특히 연근해에 청어가 나지 않아 오랫동안 그 맛에 굶주린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관심거리였다.
그런데 며칠 후 느닷없이 “금지된 청어수입 배후에는 정치세력이 개입돼 있다”느니 “이미 통관돼 전북 전주에서 팔리고 있다”는 등 헛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지기 시작했다. 사안의 중요성을 인식한 부산세관장은 당장 소문을 종식시키기 위해 부산시경 국장의 현장 입회 아래 청어를 파악하기로 했다. 수차례에 걸쳐 숫자를 확인했으나 청어 2000상자는 아무 이상 없이 그대로 있었다.
이어 세관은 수입경위를 알아보고 화주를 통해 일본으로 반송조치를 하기 위해 행방불명된 실화주를 찾아 나섰다. 겨우 수입 대행업체를 통해 알아낸 정보는 실화주가 경남 마산에 산다고만 할 뿐 정확한 주소를 몰랐다. 결국 수사진을 급파해 수소문 끝에 화주를 마산 월영동에서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실화주는 60세를 넘긴 김씨란 성을 가진 여성이었다.
김씨의 본 남편은 일본으로 건너가서 자수성가한 재일동포였다. 그런데 남편이 3년 전에 돌아가면서 유언으로 마산의 본부인에게 당시 일본 돈으로 1300만엔의 유산을 물려줬다. 김씨는 즉시 남동생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다. 한국으로 유산을 가져갈 방법을 생각한 끝에 값싼 청어를 수입해 가면 일거양득이 될 것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일 한국대표부(당시는 일본과 국교수립이 되지 않았음)에 들러 유산에 대해 면담을 하던 중 담당자가 금지품목에 청어가 속해 있는 줄 모르고 수입이 가능하다고 이야기를 한 것이다. 이에 확신을 얻어 수입을 하게 됐다고 했다.
이 같은 수입경위를 파악한 세관은 그 전에도 청어가 목포항에 들어와서 통관이 되지 않은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그 전례에 따라 반송하려 했다. 그러나 김씨는 일본에 화물을 받을 사람이 없다며 극구 반대였다. 그리고는 남편의 유산만은 헛되이 할 수 없다며 백방으로 수입통관을 위해 부지런히 뛰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1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창고보관료만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다행히 이 딱한 소식을 들은 어느 제과회사에서 청어를 구입하겠다고 나섰다. 화주는 제과회사의 요청대로 먼저 머리와 뼈를 추리고서 청어살로 된 필레트(포를 떠서 척추골을 제거한 두 쪽의 육편)를 만드는 보세작업을 거쳐 결국 청어가 아닌 가공식품 원재료인 필레트로 통관됐다. 남편이 남긴 유산 덕에 재미는 창고업자가 보고 부인은 고생과 손해만 잔뜩 봤다는 청어수입 소동이었다.
/이용득 부산세관박물관장
■사진설명=최근 들어 우리나라 남해안에서 많이 잡히고 있는 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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