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브로드웨이산책] 한인 이민자 가족의 상처와 용서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06.24 12:20

수정 2009.06.24 11:47

‘아메리칸 환갑(American Hwangap)’이 공연되고 있는 뉴욕 이스트 빌리지의 소극장 ‘더 와일드 프로젝트’는 흔히 ‘멜팅 팟’(Melting Pot·인종의 용광로)으로 불리는 뉴욕의 축소판을 보는 듯했다. 90여석밖에 되지 않는 소극장에는 놀라울 정도로 절묘한 조합의 남녀노소, 다인종, 다국적의 관객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연극을 관람했다. 이렇듯 다양한 관객을 한 자리에 불러 앉힌 화제의 연극을 쓴 주인공은 젊은 한인 극작가 로이드 서. 한인 교포 가정을 소재로 한 ‘아메리칸 환갑’은 매일 밤 뉴욕 관객들의 마음에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며 진한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오프 브로드웨이 작품인 ‘아메리칸 환갑’은 비영리 극단인 더 플레이 컴퍼니와 마이 시어터 컴퍼니가 공동 제작한 연극. 더 플레이 컴퍼니는 국적을 불문한 다양한 작품을 뉴욕에 소개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지난 1999년부터 활동하고 있으며 마이 시어터 컴퍼니는 1989년부터 아시안 아메리칸들의 경험을 소재로 만든 새로운 연극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특히 ‘아메리칸 환갑’에서는 이민자 가정에서 겪을 수 있는 문화적·세대적 갈등을 잘 나타내기 위해 한국계 미국인, 일본계 미국인, 필리핀계 미국인 등 아시아 각국 출신의 이민자 배우들을 캐스팅해 작품의 현실감을 더해주었다.


직장을 잃음과 동시에 아버지로서의 자존감도 잃어버린 가장(家長) 전민석은 미국 텍사스 시골 동네에 부인과 세 아이들을 버리고 무작정 고향인 한국으로 떠나게 된다.
그런 그가 불현듯 15년만에 등졌던 가족들을 찾아 돌아온 것은 바로 자신의 환갑 잔치를 가족들과 함께 하기 위한 것.

다시 돌아온 남편이 밉다기 보다 오히려 놀라울 뿐인 아내와 이제는 장성해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가물가물해지려 하는 자식들. 미국식 사고방식을 배우고 자란 자식들은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떠났던 아버지의 갑작스런 출현이 당황스럽고 야속하기만 하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자신의 환갑 잔치를 즐기며 제2의 인생을 새롭게 출발해 보고자 하지만 미래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없이 여전히 무모한 행복만을 꿈꾸는 아버지. ‘아메리칸 환갑’은 아버지의 출현을 계기로 그동안 바쁜 삶에 치여 미처 생각해볼 겨를도 없었던 아버지라는 존재가 가족 구성원 개개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한다.


진부할 수도 있는 가족 드라마 소재에 한인 교포 가정이라는 양념을 버무려 식상함을 상쇄한 로이드 서의 스토리는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수년 전 미국으로 건너와 힘겨운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어느 한 가정의 실제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뉴욕=gohyohan@gmail.com한효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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